정웅모 신부의 아름다운 성화 아름다운 인생 (5) 사제는 자신의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일을 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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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9 15:33
정웅모 신부의 아름다운 성화 아름다운 인생 (5) 사제는 자신의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일을 하는 사람
인류 구원 위한 고난의 길 따릅니다
예수님의 수난 여정 상징
알파-오메가 새긴 제대
처음이자 끝인 주님 표현
발행일 2011-06-05 [제2749호, 15면]
▲ 바실 스펜스(Basil Spence)의 가시관, 스티븐 시키스(Steven Sykes)의 벽화, 겟세마니의 그리스도 경당, 코번트리 대성당, 코번트리, 영국.
새로 건립된 코번트리 대성당(1956~1962년)에는 작은 경당이 몇 개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열 명 정도 신자가 들어갈 수 있는 ‘겟세마니의 그리스도 경당’이다. 대성당의 중심 제단 가까이 자리 잡은 이 경당 입구 부분은 주물로 제작된 커다란 가시관으로 장식돼 있다. 제대 뒤 벽은 대리석과 채색 벽돌, 유리 등으로 아름답게 꾸며졌는데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제대 뒷면 벽에는 고난의 잔을 든 천사가 커다란 날개를 펼치고 있다. 제대 옆 작은 벽에는 잠들어 있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티(T)자 형태로 만들어진 대리석 제단에는 알파와 오메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길을 걷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니에 가셔서 피땀을 흘리시며 간절히 기도하셨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그때에 천사가 하늘에서 나타나 그분의 기운을 북돋아 드렸다”(루카 22,42∼43). 이 작은 경당에는 올리브 산 겟세마니에서 있었던 일들 가운데서 힘을 북돋아 주기 위해 나타난 천사와 잠자는 제자들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경당 입구의 커다란 가시관과 티자 형태의 제대는 예수님께서 인류 구원을 위해 고난의 길을 걸으시고 십자가에 희생된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 경당에는 겟세마니에서 간절한 기도를 바치셨던 주인공인 예수님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지 않다. 왜 작가는 ‘겟세마니의 그리스도 경당’을 꾸미면서 예수님의 형상을 남겨두지 않았을까? 커다란 천사와 잠자는 제자들의 벽화 사이에 있는 작은 제대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인 미사가 봉헌되는 제대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상징한다. 작가는 이 제대에 알파와 오메가 글자를 새겨 넣어 예수님께서 모든 것의 시작이요 마침이라는 신앙 고백을 하고 있다. 따라서 굳이 예수님의 형상을 천사나 잠든 제자들 사이에 그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사제는 일찍이 예수님께서 봉헌하신 희생 제사를 그분을 상징하는 제대에서 봉헌한다. 마침 이 경당을 방문했을 때 한 사제가 단 한 명의 신자와 함께 조촐한 미사를 봉헌하고 있었다. 미사 후 그 신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곳에서 미사를 지낼 때면 제 자신이 항상 겟세마니의 작은 동산에 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니에서 인류 구원을 위해 고난의 잔을 잡은 것처럼, 저 역시 이곳에서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성작을 잡고 미사를 봉헌합니다.” 사제는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그분께서 하셨던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작지만 성스러운 이 경당에서 새삼 깨닫게 되었다.
▲ 겟세마니의 그리스도 경당에서 미사 봉헌하는 모습.
▲ 겟세마니 그리스도 경당에 있는 천사의 얼굴(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