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숨은 이야기] (93) 「성교요지」와 「상자쌍천(常字雙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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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숨은 이야기] (93) 「성교요지」와 「상자쌍천(常字雙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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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93) 「성교요지」와 「상자쌍천(常字雙千)」

“마틴 목사의 책 베낀 「성교요지」는 이벽의 저작일 수 없다”

 

 

윌리엄 마틴 목사의 「상자쌍천」 원본의 원문과 영문 번역 부분, 그리고 베드로의 둘째 서간을 ‘피득 후서’로 표기한 부분과 숭실대본 「성교요지」의 같은 대목을 비교하였다. 「상자쌍천」은 한자 습득을 위한 교재여서 매 낱글자에 대한 분석과 발음이 적혀있다.

 

 

서양 명사 및 인물 지명 표기에서 잡힌 발목

 

「성교요지(聖敎要旨)」는 이벽(李檗, 1754~ 1785)의 저술로 알려져 왔다. 초기 교회사의 어떤 기록에도 없던 이 책은 1967년 김양선 목사가 공개한 「만천유고」 속에 섞인 필사본으로 처음 알려졌다. 이벽이 세상을 뜬 지 무려 182년 뒤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앞서 본대로 「성교요지」가 수록된 「만천유고」는 이 책 저 책을 베껴 짜깁기한 조잡한 서적이었다. 다만 「성교요지」마저 가짜라고 단정할 근거가 명확지 않았다. 내용 또한 4언체의 한시 형식이어서 수준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윤민구 신부는 「성교요지」 속의 성경 용어나 인물 및 지명 표기가 거의 예외 없이 개신교 성경의 표기법에 바탕을 두고 있는 점에 의심을 품어, 「초기 한국천주교회사의 쟁점 연구」(국학자료원, 2014)에서 「성교요지」가 개신교 쪽에서 지은 책이 분명하여 이벽의 저술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의 견해는 「성교요지」를 천주교 주요 문헌으로 믿어온 측의 큰 반발을 불러, 명백하고 타당한 논의였음에도 이후 끝없는 비방과 음해에 시달려야 했다.

 

예를 들어 「성교요지」 제4장의 주석 중에 “위 단락은 아래의 글을 총괄하는 이 장의 강령이다. 피득(彼得) 후서(後書)에 나온다.(右節總冒下文, 此章之綱領也. 見彼得後書)”라 한 대목이 있다. 여기 나오는 피득 후서는 신약성경 중 베드로의 둘째 서간을 가리킨다. 천주교에서는 베드로를 백다록(伯多祿)으로 적지, 피득이라고는 표기하지 않는다. 피득은 베드로를 영어식으로 ‘피터’라 읽을 때 적을 수 있는 표기다.

 

실제로 오늘날 중국에서 통용되는 성경에서 베드로의 첫째, 둘째 서간은 가톨릭 성경에서 지금도 ‘백다록 전후서’로 되어 있고, 개신교 성경에는 여전히 ‘피득(彼得) 전후서’로 나온다. 이것은 바오로를 ‘폴’이라 하고, 안드레아를 ‘앤드류’, 마태오를 ‘매튜’로 읽는 차이가 중국어 표기에 반영되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성경 편명으로 영어식 표기를 딴 ‘피득 후서’로 적는 것은 천주교에서는 결코 쓸 수 없는 표기다. 더구나 제대로 된 번역 성경을 본 적도 없는 이벽이었다면 말할 것도 없다.

 

 

윌리엄 마틴 목사의 「상자쌍천」과 「성교요지」

 

정작 「성교요지」가 이벽의 저작이 아니라는 결정적 한 방은 개신교 쪽에서 터져 나왔다. 2019년 5월, 김현우, 김석주 두 사람이 공동으로 발표한 「소위 이벽의 「성교요지」로 잘못 알려진 W.A.P. Martin(丁良)의 「The Analytical Reader(認字新法 常字雙千)」에 대한 연구 서설」이란 논문이 그것이다.

 

두 사람은 이 글에서 「성교요지」가 미국 장로교 선교사 윌리엄 마틴(William A. P. Martin, 1827∼1916) 목사가 1863년 중국 선교사들에게 효율적 한자 교육을 위한 교재로 개발하여 간행한 「인자신법(認字新法) 상자쌍천(常字雙千)」이란 책을 주석까지 통째로 그대로 베낀 것임을 처음으로 밝혔다. 책 제목은, 상용한자 2천 자를 가지고 쓴 한자를 인식하는 새로운 방법이라는 뜻이다.

 

마틴 목사는 1854년, 개신교 선교사의 저작 중 가장 많은 독자와 만났던 「천도소원(天道溯源)」을 저술한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 이후 1862년 상하이에서 선교사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중국어 교육에 관심을 가져, 1863년에 이 책을 출간했다. 그는 중국어 단어의 사용 빈도를 꼼꼼히 계산해서 뽑은 윌리엄 갬블의 6000자의 상용한자 중에서 특별히 사용 빈도가 더 높은 2,016자를 뽑아, 4언체의 천자문 양식을 빌어 한 글자도 중복하지 않고 운자로 배열한 2천자문을 최종 완성했다. 당시 그는 남경의 학사(學士) 하사맹(何師孟)이란 중국인을 고용해 그의 도움을 받아 본문을 완성했다.(이에 관한 논의는 계명대 황재범 교수가 쓴 ‘「성교요지」의 원본 마틴 선교사의 「쌍천자문」 연구’(「신학사상」 190집(2020 가을)에 자세하다.)

 

본문은 4언체 한시가 소제목 아래 단락별로 나오고, 옆면에 영문 대역(對譯)을 실었다. 그런데 2천 자를 단 한 번의 중복을 허용하지 않은 채 엮다 보니, 구문이 비틀리고 억지로 채워 넣은 글자가 적지 않다. 중간중간 주석을 넣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오독과 무지

 

「성교요지」는 「만천유고」 본과 「당시초선」이란 표제로 된 책자에 필사된 「당시초선」본, 이와 별도로 한글본 「성교요지」 세 가지가 전한다. 모두 숭실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하성래와 김동원의 번역은 마틴 목사의 영어 번역을 못 본 채 한문본만 보고 번역한 결과 숱한 오역이 발생하였다.

 

지면 관계상, 한두 가지 예만 들어본다. 제3장 「강구(降救)」 중에 “냉가성읍(冷迦城邑), 파미도로(巴米道路). 유태국야(猶太國也), 서내산호(西乃山乎)”의 대목이 있다. 한글본은 이 대목을 “냉가국 셩읍과 파미로 가는 길이 이르면 유태국이라 하나니, 셔내산이라 이르나니”로 풀었고, 하성래는 “냉가성읍과 파미 도로와 유태국과 시내산에서”로, 또 김동원은 “예루살렘 성읍에서, 파미도로 거쳐 가니, 온 유대를 다니시며, 시나이산 이르렀네”로 옮겼다. 영어 번역은 “Jerusalem and Capernaum, a city and town, To Babylon and Media were ways and roads, Judea was a kingdom, Sinai a mountain”이다. 이를 우리말로 옮기면 이렇다. “도시인 예루살렘과 시골 카파르나움엔, 바빌론과 메디아로 가는 길과 도로 있었네. 유다는 왕국이었고, 시나이는 산이었지.” 결국 원문의 ‘냉(冷)’은 예루살렘, ‘가(迦)’는 카파르나움을 가리키고, ‘파(巴)’는 바빌론(Babylon)을, ‘미(米)’는 메디아(Media: 옛 성서에서는 메대)를 나타내는 약호였다. 유태(猶太)는 유다 지방을 가리키는 개신교의 표기이고, 천주교 문헌과 안정복의 「천학문답」에는 여덕아(如德亞)로 나온다. 시나이 산은 시내(西乃)로 적었다. 한국어 번역에서는 냉가와 파미가 각각 고대 도시 지명을 한 글자만 따서 축약한 것인 줄을 미처 알지 못했다.

 

또 제10장 「시훈(施訓)」 조의 “학별파지(學別派支) 애전허치(埃田許置)”의 ‘애전(埃田)’은 번역본들이 풀이한 속세나 세상의 뜻이 아니라, 에덴의 음차이다. 「성경직해」에서는 에덴을 그냥 낙원으로 옮겼다. 고유 명사나 특수 용어를 일반적 사전 의미로 풀이한 데서 발생한 오역이다. 이밖에 세부적으로 원서의 영어 번역문과 대비해 보면, 현재 통용 번역에는 맥락을 놓친 오역이 상당히 많다.

 

표기법만 두고 볼 때, 예루살렘을 야로살냉(耶路撒冷), 카파르나움을 가백농(迦百農), 바빌론은 파비륜(巴比倫), 메대는 미태(米太), 유대를 유태(猶太), 시내를 서내(西乃), 에덴을 애전(埃田), 아벨을 아백(亞伯)이라고 동시에 표기한 것은 1854년에 중국에서 간행된 개신교의 이른바 위판역본(委辦譯本) 성경이 유일하다. 1635년에 알레니(艾儒略)가 펴낸 「천주강생언행기략(天主降生言行紀略)」이 예루살렘을 협로살릉(協露撒)으로, 카파르나움을 갈발옹(葛發翁)으로 적고 있는 것과 다르다. 이벽이 예루살렘과 카파르나움의 약호를 썼다면 ‘냉가(冷迦)’가 아닌 ‘릉갈(葛)’이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위판역본 성경은 그리스도교의 포교 활동이 공식 허용되기에 앞서, 개신교 선교사들이 성경번역위원회를 조직해 집체 작업으로 함께 번역한 것이다. 이후 개신교의 성경 속 명사 표기는 이 책의 표기로 통일되었다. 1863년에 「상자쌍천」을 펴낸 윌리엄 마틴 목사가 이 성경의 명사 표기를 따른 것은 당연하다. 「성교요지」 속 모든 고유명사 표기는 전적으로 1854년 위판역본, 즉 개신교 성경번역위원회가 마련한 번역본과 일치한다. 그러니 전체 성경, 특히 구약 성경의 온전한 번역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점에 살았던 이벽이, 그가 사망한 지 78년 뒤에 간행된 위판역본 성경의 표기체계를 그대로 받아 모든 명사 표기를 여기에 일치시킨다는 것은 애초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론은 이렇다. 「만천유고」에 수록된 「성교요지」는 절대로 이벽의 저작일 수 없다. 사실 이 점은 대부분의 교회사가들이 모두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시성시복 자료집에서조차 「성교요지」 관련 사실을 뺀 것이 그 분명한 증거다. 이 책은 1863년 윌리엄 마틴 목사가 쓴 「인자신법 상자쌍천」을 베낀 것에 불과하다. 황재범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그마저도 1863년 초판본이 아닌 1897년 재판본을 베꼈다. 나란히 실린 「만천시고」가 1893년에 나온 양헌수의 「하거집」의 시 23수를 베낀 것으로 보아, 이 책 전체는 20세기 이후에 누군가가 불순한 의도로 베껴 쓴 것이 명백하고 확실하다.

 

이렇게 「성교요지」가 마틴 목사의 책으로 밝혀지자 최근 일각에서 다시 해괴한 주장이 나오기 시작한다. 「당시초선」 본 「성교요지」에 손을 다쳐 왼손으로 이 글을 필사했다고 적혀 있는 김대건 신부가 1845년 중국 강남에 들어갈 때 이벽의 책을 베껴 가져갔고, 이것이 유통되다 마틴 목사에게 채집되어 「상자쌍천」이 되었다는 희한하고 놀라운 논리다. 기존의 잘못을 더 큰 거짓으로 덮으려는 궁여지책에서 나온 논리요 행동이다. 모르고 한 잘못은 인정하면 그뿐인데, 가짜 책 「성교요지」를 지키겠다고 진짜 저자인 윌리암 마틴 목사까지 도둑으로 내몰려 한다. 언어도단이다. 이는 천주교계를 위해서도 이벽을 위해서도 결코 득 될 일이 아니다.

 

「성교요지」는 이벽의 저술이 아니다. 차고 넘치는 증거를 외면하고, 독선의 외고집을 부리는 것은 한국 천주교회사의 정상적 흐름을 저해하는 최악의 선택이다.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이벽의 위상은 가짜 책 「성교요지」가 아니래도 우뚝하다. 이 책을 둘러싼 소모적 논쟁이 재연되는 것을 교회가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 된다. 최근 교구의 인준을 받아 간행된 김동원 신부의 「한국의 천학과 영성」이란 책자에서 「성교요지」가 변함없이 한국 천학 영성 자료의 첫머리에 놓인 것을 보고 나는 실로 경악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2년 4월 3일,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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