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38) 영국 런던의 ‘프랑스 노트르담 성당’
[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38) 영국 런던의 ‘프랑스 노트르담 성당’
언제나 모든 이를 차별없이 품어주는 성당
발행일2017-09-24 [제3063호, 13면]
문화의 도시 런던의 중심에는 레체스터 광장이 있는데 그 주변에 국립 미술관이나 극장과 같은 문화와 상업 시설이 밀집해 있다. 그래서 광장은 언제나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또한 이곳의 오래된 건물과 새 건물 사이에는 작지만 유서 깊은 성당들이 함께 자리 잡고 있다.
서울의 명동 같은 런던 한복판의 소호 거리에도 규모가 작은 성당이 서 있다. 이 성당은 런던 중심가에 살던 프랑스 신자 공동체를 위해 건립됐기 때문에 ‘프랑스 노트르담 성당’(Notre Dame de France)이라고 불린다. 원래 이곳에는 문화와 공연을 위해 다양하게 사용되던 원형 건물이 있었다. 1865년에 그 건물을 구입한 교회는 프랑스 출신의 건축가 루이-오귀스트 브알로(Louis-Auguste Boileau, 1812-1896년)에게 의뢰해 옛 건물의 일부 흔적을 살리며 새로 설계해 1868년에 성당을 완성했다. 이 성당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런던에서 철제 주조로 만들어진 첫 번째 성당으로 꼽힌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중 런던이 폭격을 당했을 때 이 성당도 크게 파손됐다. 그러자 교회는 1953년부터 1960년까지 성당의 원형을 살리며 재건축을 했고, 뛰어난 예술가들에게 의뢰해 성당 내부 장식도 아름답게 꾸몄다.
‘프랑스 노트르담 성당’의 출입구 모습. 직선으로 나란하게 지어진 다른 건물들과 달리 팔을 벌려 모든 사람을 끌어안는 듯이 부드러운 곡면으로 되어 있다.
‘프랑스 노트르담 성당’은 도심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지만 성당이라는 것을 알리는 십자가와 같은 표지가 없어서 그냥 지나치기 쉽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건물을 바라보면 이곳이 성당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상업 건물들은 거리와 병행해 직선으로 나란하게 지어졌지만, 이 성당의 입구 벽면은 팔을 벌려 모든 사람을 끌어안는 듯이 부드러운 곡면으로 되어 있다. 그 위에 부조로 장식된 성모 마리아도 아기 예수를 가슴에 안고 당신의 망토를 넓게 펼쳐 많은 사람을 품어 주고 있다. 반월형 아치 아래에 있는 출입구의 두 기둥도 성모님의 생애와 관련된 부조로 장식돼 이 성당이 성모 마리아께 봉헌됐음을 알 수 있다.
‘프랑스 노트르담 성당’의 제단과 내부. 반월형 아치와 기둥으로 장식돼 있고, 태피스트리로 꾸며진 중앙 제단화에서는 낙원 한가운데 서 계시는 성모 마리아를 볼 수 있다.
출입구를 통해 안으로 올라가면 원형으로 건립된 아름다운 성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성당 내부 둘레도 주입구처럼 반월형 아치와 기둥으로 장식돼 있고, 천장에서 쏟아지는 따뜻한 햇살은 기도하는 사람들의 어깨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단아한 제단 주변도 그리스도교를 상징하는 십자가 문양 등이 동일한 패턴으로 장식돼 통일감을 준다. 태피스트리로 꾸며진 중앙 제단화에서는 낙원 한가운데 서 계시는 성모 마리아를 볼 수 있다.
주 제단의 왼쪽에는 성모님께 봉헌된 작은 ‘마리아 경당’이 있다. 이곳의 벽화와 제대의 모자이크는 예술계의 팔방미인 장 콕토(Jean Cocteaue, 1889~1963년)가 1960년에 만든 작품이다. 프랑스 출신인 그는 극작가와 연출가, 소설가와 시인 그리고 화가로서 거의 모든 예술방면에서 다재다능한 예술가였다.
경당의 좌측에는 ‘성모영보’ 벽화가 있고, 우측에는 ‘성모 승천’ 벽화가 있다. 정면은 ‘예수 수난’ 벽화로 꾸며졌는데 십자가 아래에서 눈물을 흘리며 비통해하는 성모님과 요한 사도, 로마 병사들이 선으로 묘사돼 있다. 제대의 정면 모자이크에서는 갓 태어난 아기예수를 구유에 눕히는 성모님의 겸손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마리아 경당의 ‘예수 수난’ 벽화와 갓 태어난 아기 예수를 구유에 눕히는 성모님 모습을 표현한 제대 모자이크.
원래 이 성당은 인근에 거주하는 프랑스 신자들을 위해 건립됐지만, 오늘날에는 그들뿐 아니라 이곳을 오가는 많은 사람들을 품어 준다.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이주민이나 외국인 노동자들까지도 차별 없이 안아 주고 있다. 성당 옆에는 상담소가 있어 힘든 사람들을 위로해 주고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보살펴 준다. 또한 물질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한 사랑의 실천도 활발하게 펼친다. 성당의 문도 항상 열려 있어 피곤에 지친 사람들이 잠시 쉬어가거나 기도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성당 건물이나 그 안에 있는 성상과 예술품도 사람들에게 성스러움과 마음의 위로를 선사한다.
각박하고 메마른 사회에서 오늘날 교회가 어떤 모습을 갖추어야 하는지, ‘프랑스 노트르담 성당’은 말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든 것을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셨듯이 이 성당도 오가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내어 주며 성체성사 같은 모습을 잘 보여준다. 눈을 들어 살펴보면 우리 주변에도 이 같은 역할을 하는 성당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자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지친 사람들을 아무 조건 없이 품어 주는 교회야말로 참다운 그리스도의 교회일 것이다. 삭막한 도시 한가운데서 언제나 사람들을 안아 주는 프랑스 노트르담 교회 같은 성당을 우리 주변에서 더욱 많이 찾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정웅모 신부(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유물 담당)
가톨릭대를 졸업하고 1987년 사제품을 받았다. 홍익대와 영국 뉴캐슬대에서 미술사·박물관학을 전공했다. 서울대교구 홍보실장과 성미술 감독, 종로본당 주임, 장안동본당 주임 등을 역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