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42)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산티아고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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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42)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산티아고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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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42)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산티아고 순례길

 

자신과 이웃 돌아보는 회개의 순례길

 

발행일2017-10-29 [제3067호, 13면]

 

사람들이 집을 나서서 첫 번째로 만나는 것은 언제나 길이다. 길을 통해 직장이나 성당 등 우리가 원하는 곳에 다다를 수 있다. 길은 언제나 사람들이 다닐 수 있도록 자신을 낮추며 누워 있다. 세상의 수많은 길 가운데서 가장 유명한 곳이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이다. 이 길을 걸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지만 길의 이름은 널리 알려져 우리에게 친숙하다.

 

중세 때부터 산티아고는 예루살렘, 로마와 더불어 3대 순례지 가운데 한 곳이었다. 열심한 신자들은 평생에 한 번이라도 이 성지들을 순례하고자 염원했다. 그들의 공통된 바람은 순례 기간의 고행과 회개를 통해 하느님 안에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산티아고에는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였던 야고보 사도의 유해가 있는데 그 위에 대성당이 우뚝 솟아 있다. 산티아고는 성 야고보의 스페인 발음이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스페인 북부 갈리시아까지 가서 선교를 하다가 예루살렘에 돌아왔으나 헤롯 아그리파 왕에 의해 44년에 순교했다. 제자들은 그의 유해를 수습해 스페인으로 향했지만 풍랑 때문에 배가 난파돼 유해를 잃어버렸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814년 펠라지우스 수도자가 갈라시아 지방의 벌판에서 한밤중에 별빛이 강렬하게 비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사람들과 함께 그곳에 가서 야고보 성인의 유해를 발굴했는데 그 장소를 콤포스텔라(Compostela)라고 불렀다. ‘별이 비추는 들판’이란 뜻이다.

 

829년과 899년 콤포스텔라에는 초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작은 성당이 건립돼 순례 장소가 됐지만 이슬람교도의 침략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현재의 산티아고 대성당(Santiago de Compostela Cathedral)은 1075년에 디에고 페라에스 주교가 공사를 시작해 136년이 지난 1211년에 완성됐다. 라틴십자가 형태의 바실리카 건축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이며 후에 부분적으로 고딕과 바로크 양식이 추가됐다. 성당의 길이는 100m, 폭 70m, 높이 75m로써 스페인에서 가장 큰 로마네스크 건축물이다. 이 대성당을 중심으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라는 도시가 만들어졌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전경. 최인석씨 제공

 

순례의 마지막 발길이 닿는 곳에 오랜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산티아고 대성당이 있다. 대성당 서쪽 출입구 ‘영광의 문’ 기둥에는 성 야고보 조각상이 새겨져 있다. 이 문은 조각가 마스테르 마태오가 1168년부터 1188년까지 만든 것이다. 성당의 제단도 황금빛으로 화려하게 장식돼 있으며 제단에도 만든 야고보 사도의 좌상이 있다. 성당 지하에는 야고보 사도의 유해가 있는데 이곳을 참배함으로써 산티아고 순례길의 대단원을 마무리 짓는다.

 

이 성당에는 1851년에 조세 로사다가 제작한 초대형 향로 보타푸메이로(Botafumeiro)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이 향로의 무게는 80㎏이며 높이는 1.6m에 이른다. 붉은 옷을 입은 8명이 힘껏 줄을 당겨 향로를 크게 움직이며 향을 치는데 이때 향로의 속도는 80㎞에 이른다고 한다. 사람들은 미사와 분향 예식에 참여하면서 내적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체험을 하게 된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서 봉헌하는 순례자들을 위한 미사 중 대향로에서 분향을 하고 있다. 

 

성 야고보 사도의 문장은 가리비이다. 전설에 의하면 사람들이 배를 이용해 성인의 시신을 스페인으로 옮길 때 전복 사고가 일어나 바다에 빠뜨리게 되었다. 며칠 동안 수색해 시신을 건져보니 가리비가 성인의 몸을 덮어 유해가 상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가리비는 성인과 관련된 주요한 지물이 됐는데 성인의 겉옷 등에 장식돼 나타난다.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 곳곳에서는 방향을 표시하는 노란색 가리비를 볼 수 있다.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프랑스 길’, ‘포르투갈 길’, ‘아라곤 길’ 등 여러 길을 이용할 수 있다. 그중 프랑스 국경에서 들어가는 프랑스 길이 가장 유명한데 길이는 약 800㎞이다. 이 순례길 곳곳에서는 평화로운 자연과 풍경, 농촌과 도시, 유적지와 박물관, 유물과 조각들을 볼 수 있다.

 

 

순례 도중 오르게 되는 페르돈 고개 정상에는 순례자 조각상이 자리하고 있다. 

 

예전에 산티아고에 이르기 위해 사람들은 길 위에서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을 머물렀을 것이다. 이 순례의 길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참 모습을 조금씩 발견하고 여러 나라에서 온 길동무와 마을 사람들을 만나며 삶의 지평을 더욱 넓혔으리라. 이런 소중한 만남을 통해 자신과 이웃, 세상을 지어내신 하느님의 현존을 좀 더 깊이 깨달았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바쁜 현대 사회에 살다 보면 순례는 고사하고 걷는 것조차도 쉬운 일이 아니다. 걷는다는 것은 다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수행과 같은 것이다. 길을 걸으면서 비로소 자신과 이웃을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순례는 창조주이신 하느님 안에서 자신의 참모습을 찾아 떠나는 거룩한 여행이다. 이 여행의 끝 지점에서는 자신뿐 아니라 생명을 주신 창조주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 많은 사람이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산티아고의 순례의 길을 걷지만 자아를 찾는 길은 그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걸으면서 참된 자신을 만날 수 있는 길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런 길을 우리 가까이에 있는 ‘작은 산티아고 순례길’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정웅모 신부 (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유물 담당)

가톨릭대를 졸업하고 1987년 사제품을 받았다. 홍익대와 영국 뉴캐슬대에서 미술사·박물관학을 전공했다. 서울대교구 홍보실장과 성미술 감독, 종로본당 주임, 장안동본당 주임 등을 역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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