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59) 프랑스 노르망디의 ‘몽 생 미셀 수도원’
[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59) 프랑스 노르망디의 ‘몽 생 미셀 수도원’
바닷길따라 걷다보면 아득히 다가오는 ‘천상 예루살렘’
바다 한가운데 바위산에 세워진 성당. 성 미카엘 대천사 기념하기 위해 지어
현재까지 베네딕도 수도원으로 사용돼. 전시에는 요새 혹은 감옥 역할 하기도
가난한 이와 순례객 위한 공간도 존재. 지금은 다리로 연결돼 걸어갈 수 있어
발행일2018-04-29 [제3092호, 13면]
프랑스 곳곳에는 성당이나 수도원과 관련된 유적지들이 많이 있다. 이런 문화 유적지들은 지난 날 번성했던 신앙과 예술, 문화와 역사를 보여주며 세계 도처의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그 가운데서 가장 유명한 곳이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Normandie) 지역의 ‘몽 생 미셀 수도원’(Mont Saint
Michel)이다. 바다 한가운데 성처럼 우뚝 솟아있는 이 수도원은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풍경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오늘날에도 매년 300여만 명의 사람들이 순례나 관광 목적으로 몽 생 미셀 수도원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몽 생 미셀 수도원의 역사는 13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708년 오베르(Aubert) 주교가 육지에서 약 1㎞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 있던 몽 통브(Mont Tombe) 해발 96m의 정상에 생 미셀, 즉 성 미카엘 대천사를 기리는 성당을 세웠다. 이
섬의 둘레는 불과 960m 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작아 인구도 몇 명 되지 않았다. 10세기에는 베네딕도 수도원이 세워졌으며
바위산의 아래에는 어부와 농부들이 사는 작은 마을이 형성됐다.
몽 생 미셀 수도원에 대해 조금씩 알려지자 프랑스 각지에서 순례자들이
찾아오면서 순례코스 중의 한 곳으로 자리 잡았다. 수도원에서는 순례자들을 위해 더 큰 성당을 만들었고 마을 사람들은 그들에게
숙식을 제공했다. 썰물이 되면 넓은 갯벌이 드러나고 사람들은 걸어서 수도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몽 생 미셀 수도원은 때로는 안개 속에서 하늘에 떠 있는 듯이 신비로운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는데, 그 때 어떤 사람들은 이곳을 ‘천상 예루살렘이 지상에 재현된 장소’로 여겼다고 한다.
영국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이 섬은 오래전부터 요새 역할을 했다. 프랑스와 영국 간의 백년전쟁(1337~1453년) 땐 영국군이
대대적으로 공격해 오자 외부 전체에 튼튼한 성벽과 감시탑을 세웠다. 그 덕분에 더욱 견고해진 수도원이 함락되지 않자, 이곳은
프랑스 민족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장소처럼 부각됐다.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으로 수도원이 해산되자 1863년까지 73년 동안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 후 대대적인 보수와 복원
공사가 이뤄졌으며 197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오늘날에 몽 생 미셀 수도원은 국립 박물관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지만 동시에 베네딕도 수도자들이 머물고 기도하는 수도원의 역할도 하고 있다.
멀리서 보면 바다 한가운데 삼각형 피라미드 형태를 한 몽 생 미셀 수도원은 3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꼭대기에 자리 잡은 성당부터 아래층까지 내려오는 계단이나 길은 수도원 곳곳을 탐방하는 미로 같아 보인다.
가장 위층에는 1000년경에 건립된 수도원 성당이 있다. 원래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립된 성당의 일부가 무너지자 백년전쟁이 끝난
후에 고딕 양식으로 재건됐다. 그래서 현재 성당의 내부는 성물이 거의 없어 소박한 모습을 보이지만, 성당 안에는 초기에 성당을
장식했던 몇몇 성물이 전시돼 있다.
성당 바로 옆에는 수도자들이 기도와 묵상을 하던 공간인 회랑이 있다. 그리고 수도자들의 식당이 자리 잡고 있다. 성당 지붕의 가장
꼭대기에는 1897년 조각가 엠마뉴엘 프레미에(Emmanuel Frémiet)가 제작한 대천사 성 미카엘 상이 우뚝 서 있다.
지하 1층에는 기사실과 왕이나 귀족을 맞이하였던 손님 접대실, 수도원장의 숙소, 성모 마리아 경당, 수도자들의 유골 안치소 등이
있다. 또 지하 2층에는 포도주 저장고, 수도자 숙소, 불우한 사람과 순례자들을 맞이했던 방,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음식 분배소
등이 있다.
몽 생 미셀 수도원은 바다 한가운데 있지만, 오늘날에는 편리하게 방문할 수 있다. 2014년에 육지와 수도원을 연결하는 다리를
놓아 셔틀 버스나 마차가 운행되는 덕분이다. 사람들은 육지의 공용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버스를 이용해서 수도원에 가거나 30분
정도 걸어서 도착할 수 있다.
순례자들이 머물던 수도원 아래의 마을 집들은 대부분 음식점이나 기념품 가게로 변경돼 사람들을 맞이한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수도원의 환경도 많이 변했지만 그래도 옛 모습을 복원하고 보수해 수도원의 전체 분위기를 보존하고 있다.
어떤 사물이든지 그 대상을 가장 잘 살펴볼 수 있는 거리가 있다. 몽
생 미셀 수도원은 가까이 보다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바라볼 때 더욱 잘 보인다. 수도자들이 거닐며 묵상하고 기도했던 회랑처럼
수도원 내부 곳곳에도 아름다운 곳이 많이 있지만 멀리서 바라보는 수도원 모습과는 비교할 수 없다.
멀리서 몽 생 미셀 수도원을 향해 걷다 보면 어느새 수도원이 사람들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는다. 그곳을 둘러보며 머무는 시간은 불과 한두 시간에 지나지 않지만 마음속에 품은 수도원 모습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는다.
특히 몽 생 미셀 수도원이 아름다운 것은 주변과의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바위산 위에 지었으면서도 원래 바위산의 형태를 크게 훼손하지 않고 지형을 살려 건축한 것이 전체를 돋보이게 한다.
오늘날 성당이나 수도원, 혹은 교회 건물을 지을 때 불가피하게 자연 지형을 바꾸게 된다. 어떻게 주어진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건물을 지을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둘이 조화를 이루면 사람들에게 아름답고 평화로운 건물로 비쳐질 수 있다. 그런
건물은 사람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미감을 자극하고 때로는 상처 입은 마음을 감싸주며 위로해 준다.
우리 주변의 성당이나 교회 건물이 내적으로 뿐 아니라 외적으로도 아름답고 평화롭고 모습이 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몽 생
미셀 수도원처럼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위안을 주는 성당을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성당을 만들고 꾸미기 위해서는 우리 곁에 있는 건축가와 예술가 그리고 많은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가톨릭대를 졸업하고 1987년 사제품을 받았다. 홍익대와 영국 뉴캐슬대에서 미술사·박물관학을 전공했다. 서울대교구 홍보실장과 성미술 감독, 종로본당 주임, 장안동본당 주임 등을 역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