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73) 러시아 모스크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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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73) 러시아 모스크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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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상인의 예술사랑, 국립미술관으로 꽃 펴

40여 년간 모은 작품 모스크바 시에 기증
러시아 고유한 미술 알리는 중심으로 성장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본관 전경.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는 크렘린(Klemlin) 궁전을 비롯한 유서 깊은 건물과 문화 기관이 많다. 특히 붉은 광장의 한쪽 끝에 있는 성 바실리오 성당은 독특한 외관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다. 또한 시내 곳곳에 있는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을 비롯한 여러 정교회 성당은 아름다운 이콘으로 장식돼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신심을 불러일으킨다.

모스크바에는 문화와 예술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처럼 여러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는데 그 안에 전시된 예술품은 사람들에게 러시아의 오랜 역사와 다양한 문화에 대해 속삭여준다. 그 가운데서 가장 주목할 만한 미술관은 모스크바 중심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 잡은 트레티야코프 미술관(Tretyakov Gallery)이다. 독특한 미술관의 명칭은 파벨 미하일로비치 트레티야코프(Pavel Mikhailovich Tretyakov, 1832~ 1898년) 상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는 러시아 예술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기 위해 40여 년 동안 갖가지 작품들을 수집했다. 이후에 2000여점의 소장품을 모스크바 시에 기증해 미술관 탄생의 기반을 만들었다. 현재 박물관 입구에 있는 트레티야코프 전신상은 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1856년에 문을 연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은 1892년에 모스크바 시의 정식 미술관이 됐고, 1918년에 러시아 국립 미술관으로 승격됐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예르미타시 박물관처럼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이곳에서 러시아 미술품의 진수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방문한다.
 

러시아 모스크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본관에 있는 이콘 전시실에서는 수준 높은 이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미술관에는 11세기부터 20세기까지 총 13만 점 이상의 작품이 소장돼 있으며, 그 가운데서 일부가 전시돼 관람자들을 맞이한다. 동방교회의 뛰어난 이콘 작품과 러시아 사실주의 회화의 거장 일리야 레핀(Ilya Repin, 1844~1930년)의 작품 등 러시아 출신 화가들, 20세기의 칸딘스키나 샤갈 등의 작품도 볼 수 있다.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은 두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본관 지역에는 상설 전시관, 특별 전시관 그리고 부속 정교회 성당이 있다. 그리고 본관에서 도보로 십 여분 떨어진 곳에 신관이 자리 잡고 있다. 본관이나 신관에 있는 모든 작품은 한결같이 러시아인의 삶과 역사, 문화와 정신을 잘 보여준다.

본관의 수많은 회화 작품 가운데서 주목할 것은 러시아에서 제작한 이콘이다.

별도의 이콘 전시실에는 12세기에 제작한 블라지미르의 성모를 비롯해 빼어난 이콘이 잘 전시돼 있다. 이콘 전시실에 있는 수십 점의 이콘 하나하나는 모두 수준이 높아, 보는 사람들을 감탄시키면서 신앙의 세계에 한걸음 더 가까이 나가도록 도와준다.

여러 이콘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작품은 안드레이 루블료프(Andrei Rublev, 1360~1430년경) 수도자가 그린 ‘구약성경의 삼위일체’(1411년경, 112x141cm)다. 비슷한 형상을 한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느님께서 식탁 주변에 앉아 고요한 가운데 사랑과 친교를 나누는 모습이다. 삼위이신 하느님께서 하나를 이루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우면서 거룩하게 표현됐다. 식탁 앞의 빈 공간은 이 성화를 보는 사람들을 위해 미리 마련해 둔 자리처럼 보인다.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구약성경의 삼위일체’.

이 이콘은 우리가 이미 작은 상본을 통해 많이 보았기 때문에 친숙하지만 실제로 미술관에서 원작품을 보면 생각했던 것 보다는 훨씬 커서 감동도 더욱 깊어진다. ‘구약성경의 삼위일체’에 계시는 하느님과 눈을 마주치면 우리의 혼탁한 마음은 다시 정화되어 주님을 바라보며 그분을 향하게 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루블료프가 표현한 ‘구약성경의 삼위일체’는 다른 이콘 화가들이 그린 ‘신약성경의 삼위일체’와는 차이가 많다. 신약 이후에 화가들은 삼위일체 하느님을 표현할 때 대부분 성부를 노인으로, 성자를 젊은이로 그리고 성령을 비둘기로 표현했다.

트레티야코프가 기증한 작품을 토대로 만들어진 이 박물관은 그 후에도 꾸준히 러시아 작품들을 수집하고 부속 건물을 지으며 큰 박물관으로 성장했다. 1985년에는 본관에서 조금 떨어진 고리키 공원 내에 현대식으로 신관을 건립했다. 신관 외부에는 러시아의 많은 조각상을 전시하고 있으며 내부에는 20세기의 회화 작품이 잘 전시돼 있다. 종교성를 지닌 작품 보다는 러시아의 근 현대사를 담은 작품들과 사회성 그리고 사람들의 일상을 담은 작품이 많다.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은 예술을 사랑한 개인의 꿈이 실현된 것이다. 트레티야코프는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받는 러시아 고유의 미술관에 대한 꿈을 꾸었고 평생 동안 수집한 작품을 모스크바 시에 기증했다. 또한 시 정부도 힘을 보태 아름다운 미술관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 한 사람이 가진 소박한 꿈과 기증을 통해 이루어진 이 미술관은 오늘날 많은 사람을 내적으로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요즈음 우리나라에도 여러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새롭게 개관하고 있다. 이런 문화기관 중에는 예술을 아끼고 사랑한 사람의 꿈을 바탕으로 해서 건립된 경우가 적지 않다. 한 사람이 가진 꿈을 여러 사람이 함께 꾸면 그 꿈은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문화와 예술에 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이제 이런 관심을 하나로 모아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교회의 문화기관을 운영하고 만들 수 있을 지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 교구나 주교회의에서 문화기관을 건립해 주길 바라는 자세만으로 교회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탄생되는 것은 아니다. 전체 교회가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기 이전에 먼저 우리 자신이나 단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인이면서 예술을 사랑했던 파벨 미하일로비치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관한 꿈을 갖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한평생 작품을 구입하고 그것을 모두 기증한 그의 숭고한 삶을 살펴보고 본받을 필요가 있다.
 

정웅모 신부 (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유물 담당)
가톨릭대를 졸업하고 1987년 사제품을 받았다. 홍익대와 영국 뉴캐슬대에서 미술사·박물관학을 전공했다. 서울대교구 홍보실장과 성미술 감독, 종로본당 주임, 장안동본당 주임 등을 역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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