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숨은 이야기] 56. 무지개 다리는 끊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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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7 21:10
이승훈이 아버지와 친척들 앞에서 읊은 ‘벽이시’에 담긴 뜻은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56. 무지개 다리는 끊기고
2021.06.20발행 [1618호]
▲ 이기경의 「벽위편」에 수록된 이승훈의 벽이시 관련 기사. |
저문 골짝의 무지개 다리
1785년 3월, 을사추조 적발 직후 이동욱은 집안 친척들을 다 모아놓고 아들 이승훈이 앉은 자리에서 한 해 전 연행에서 구해온 서학 서적을 마당에 쌓은 뒤 불을 질렀다. 이어 서사(西士)에게서 선물로 받아온 각종 의기(儀器)들도 모두 박살 내버렸다. 한때는 자랑과 긍지의 표징이었던 물건들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친척들 앞에서 앞서 살핀 「벽이문」을 지어 낭독하게 하고 신앙을 버릴 것을 맹세하게 했다. 서학책이 불타 재가 되자 이승훈은 다시 ‘벽이시’ 즉 이단을 배척하는 시 한 수를 지었다. 시는 이렇다.
하늘과 땅 경계 져서 서쪽 동쪽 구분하니
天經地紀限西東
무덤 골짝 무지개 다리 안개 속에 어둑하다.
墓壑虹橋靄中
한 심지 심향(心香)을 책과 함께 불태우고
一炷心香書共火
멀리 조묘(潮廟) 바라보며 문공께 제사하리.
遙瞻潮廟祭文公
하늘과 땅을 씨줄과 날줄로 걸어 구획을 짓자 동과 서의 분간이 생겼다. 이쪽과 저쪽의 사이에는 건너기 힘든 깊은 골짜기가 놓여있다. 그 아래로는 ‘묘학(墓壑)’ 즉 무덤들의 깊은 계곡이 있다. 그 죽음의 골짜기 위로 동과 서를 연결하는 홍교(虹橋), 곧 무지개 다리가 걸렸다. 하지만 자옥한 안개와 구름 속에 잠겨있어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다. 간절한 마음을 담아 한 심지의 향을 사르며 서학책을 불에 함께 태웠다. 이제 나는 신앙을 버려 바른 도리로 돌아오겠다. 이제껏 동양과 서양이 서로 건널 수 없는 골짜기인 줄을 잘 몰랐다. 그 사이로 드높게 걸렸던 무지개 다리는 끊어진 채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구름 안개 속에 잠겼다. 그 다리를 더는 건너려 하지 않겠다.
4구의 조묘(潮廟)는 조주(潮州) 땅에 있는 당나라 한유(韓愈)의 사당이다. 한유가 누구인가? 일찍이 「불골표(佛骨表)」를 지어 이단인 불교의 허위를 낱낱이 밝히고 정학인 유학의 기치를 높이 세웠던 인물이다. 이제 나는 조묘를 멀리 우러르며 불교의 폐해를 막자고 「불골표」를 지었던 한유의 마음으로 이단인 서학을 배척하는 깃발을 높이 들겠다. 그 정신을 기려 문공(文公) 즉 한유를 위한 제사를 올리겠다. 이것이 이승훈의 「벽이시」에 담긴 뜻이다.
서토(西土)를 그리는 마음
이기경은 「벽위편」에 이 시를 수록했다. 그런데 두 글자가 바뀌었다. 먼저 1구의 ‘천경(天經)’을 ‘천이(天彛)’로 고쳤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1구의 ‘천경지기(天經地紀)’는 천지의 떳떳한 도리를 나타내는 투식적 표현이다. 「벽위편」의 ‘천이지기(天彛地紀)’의 ‘이기(彛紀)’도 ‘윤기(倫紀)’와 같아서 두 가지 표현의 의미 차이는 없다. 또 하나, ‘묘학(墓壑)’ 즉 무덤 골짜기가 「벽위편」에서 ‘모학(暮壑)’ 곧 저문 골짜기로 글자가 교체되었다. 묘학을 사망의 그늘진 골짜기로 볼 수 있으나 일반적 표현은 아니다. 대신 역대 한시에서 모학이란 표현은 수도 없이 많이 나오니, 이기경이 고친 것이 맞다고 본다. 고친 글자에 충실하여 다시 옮기면 이렇다.
하늘과 땅의 윤리 서쪽 동쪽 구분하니
天彛地紀限西東
저문 골짝 무지개 다리 안개 속에 어둑하다.
暮壑虹橋靄中
한 심지 심향(心香)을 책과 함께 불태우고
一炷心香書共火
멀리 조묘(潮廟) 바라보며 문공께 제사하리.
遙瞻潮廟祭文公
동서의 윤리와 기강은 본질적으로 같지가 않다. 날은 저물고, 무지개 다리는 안개 속에 잠겼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끊긴 길 앞에서 나는 향을 피우고 간절하게 서학서를 불 지른다.
그런데 이기경은 「벽위편」에서 앞쪽 세 구절 끝에 작은 글자로 “이 세 구절을 살펴보니, 바로 서토(西土)를 우러러 생각하는 뜻이다(按此三句, 卽瞻想西土之意也)”라는 풀이를 달아 놓았다. 제 말로는 이단을 배척하는 시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서방을 우러러 그리는 마음을 담고 있다는 얘기다. 사실 시 속에는 단호한 배격이라기보다는 무언가를 향한 강한 아쉬움이 배어있다. 동과 서를 가로지르는 홍교를 건너려 했는데, 그래서 동서를 잇는 자가 되려 했는데, 캄캄한 박해의 어둠이 앞을 막고, 한 치 앞을 못 보는 안개가 자옥해서 자기 의지를 꺾고 책을 마지못해 불태운 것이 아니냐는 것이 이기경이 하고 싶었던 얘기다. 4구의 의미는 너무도 명백하니 이것까지 시비 걸 수는 없어 앞쪽 3구에다 태클을 걸었다. 이기경은 이 메모로 어떻게든 이승훈을 끝까지 해코지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끊겨버린 홍교(虹橋)의 소식
한편 제2구의 저문 골짝의 무지개 다리는 그저 나온 말이 아니다. 주자(朱子)가 「무이도가(武夷櫂歌)」에서 말한 “홍교 한번 끊긴 뒤로 소식이 아예 없고, 일만 골짝 일천 바위 푸른 안개 잠겼구나(虹橋一斷無消息, 萬壑千巖鎖翠煙)”에 근원을 둔다. 진시황(秦始皇) 때 위자건(魏子)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무이산(武夷山) 꼭대기에 승진관(昇眞觀)이란 도관을 짓고 무지개 다리를 걸어 그곳을 오가며 잔치를 열곤 했다. 그가 승진(昇眞), 즉 진인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자 홍교마저 끊어져서 다시는 그의 소식을 알 수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주차집보(朱箚輯補)」 권 9에 나온다. 일반적으로는 도학의 전승이 끊어지고 말았다는 뜻으로 쓴다.
주자의 이 구절을 염두에 두고 위 시의 제2구를 읽으면 날 저문 골짝에 홍교는 이미 끊어졌고, 구름 안개만 한 치 앞을 볼 수 없게 자옥하더란 얘기가 된다. 다산 정약용도 주자의 이 구절을 즐겨 애용했다. 다산은 「윤외심에게 보내다」에서 주자의 이 구절을 인용한 뒤 변동(變動)의 법이 어두워진 때로부터 「주역」의 맥이 끊겨, 어디서도 「주역」에 대해 물을 수가 없게 되었다는 뜻이라고 풀이했고, 「김덕수에게 답하다」에서는 “본래 도맥(道脈)이 중단되었다는 뜻으로 쓰였다”고 설명한 바 있다.
또 1828년 5월 5일에 쓴 「단오일에 육방옹의 초하한거시 8수를 차운하여 송옹에게 부치다(端午日次韻陸放翁初夏閒居八首 寄淞翁)」란 시에서는 “한나라 적 경전 얘기 실제를 빠뜨렸고, 송유(宋儒)는 이치 통해 뒤쫓아 탐색했네. 홍교가 한번 끊겨 바위 안개 푸르르니, 어떤 이가 이 이치를 강론함이 있을런가(漢代談經遺實際, 宋儒通理欲追呼. 虹橋一斷巖煙翠, 亦有何人講此無)”라고 노래했다. 이렇게 보면 이승훈의 「벽이시」 제2구는 홍교가 끊긴 데다 날마저 저물어 더 이상 서학에 가닿을 수 없게 된 상태에서 서학서를 태우고 정도(正道)로 전향하겠다는 뜻을 피력한 것이 된다. 이승훈은 1791년 의금부에 올린 공초에서 「벽이문」과 「벽이시」를 두고, 이단을 배척한 명백한 증거가 아니냐며 자신의 결백을 거듭 주장했다.
과연 그런가?
이 시에 대한 주재용 신부의 해석은 사뭇 다르다. 그가 「한국 가톨릭사의 옹위」(한국천주교 중앙협의회, 1970) 83쪽에 쓴 이 시의 분석 내용을 살펴보겠다. 주 신부는 “이 시 역시 결코 이단, 즉 천주교를 벽파한다기보다는 차라리 그것을 사모하고 못 잊어 생각하는 글”이라며, “천주교를 동경하고 그 교회 서적을 불태운 것을 한없이 마음 아파하는 뜻을 이 시에서까지 읊고 있다”고 보았다. 이기경과 마찬가지로 앞쪽 세 구절에 남는 여운을 보다 적극적으로 풀이한 것이다.
더 나아가 “이 시귀에 ‘천이지기한서동(天彛地紀限西東)’이란 ‘그대와 나 사는 곳이 서와 동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뜻이고, ‘저무는 구렁’은 환난과 심란 속에 파묻힌 당신 자신을 말함이요, ‘무지개 마을’은 찬란한 진리의 광명 속에 사는 선교사들을 뜻하고, ‘타오르는 한 가닥 마음의 향불’은 선생의 마음속에 타오르는 신앙의 향불일 것이니, 그것이 교회 서적이 불타는 바람에 일렁거린다고 애통하게 여겨서 멀리 조묘나 바라보고 문공에게 제사를 드려 볼까 하였는데, 조묘는 중국 조주에 있는 한유의 사당을 말함이다. 선생이 유독 이분에게다 제사한다는 것은, 이분의 정신을 특별히 ‘위로한다’는 뜻일 것이다”라는 자세한 풀이를 보탰다.
앞쪽의 내용은 그런대로 동의할 수 있지만, 뒤쪽의 구절 풀이는 방향이 많이 어긋났다. 홍교를 ‘무지개 마을’로 푼 것부터 이상하다. 무엇보다 이 구절이 주자의 「무이도가」에서 연원한 것인 줄 몰랐다. 한유의 사당에 제사 지내는 행위에 대한 해석도, 뒤쪽의 설명에서는 이승훈이 한유를 자신과 같이 평생 불우한 사람으로 보아, 그에 대한 위로라고만 여겨 문맥을 억지로 비틀어 읽었다.
이승훈의 이 시는 친척들 앞에서 배교를 공개 선언하며, 그 구체적 증명으로 지은 시이니 이것은 일종의 전향선언문이지 신앙의 간증으로 읽을 수는 없다. 주재용 신부의 독법대로라면 그가 이 시를 어떻게 이단 배척의 이름을 내걸고 발표할 수 있었겠는가? 기껏해서 이기경처럼 입으로 배교를 한다면서도 실제로는 멈칫대는 기미가 있다는 정도로 말할 수는 있겠지만, 주재용 신부처럼 “이 얼마나 천주교를 동경하고 사모하는 심정인가? 이 시를 지은 선생을 뉘 있어 감히 배교자라 하겠는가?”라고까지 말하는 것은 나가도 너무 나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