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9) 피에트로 아니고니의 ‘성 베네딕토의 영광’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9) 피에트로 아니고니의 ‘성 베네딕토의 영광’
‘서방 수도회의 아버지’ 베네딕토 찬란한 천상에서 성인들과 함께
- 피에트로 아니고니, '성 베네딕토의 영광', 프레스코화, 1979, 몬테 카시노 대수도원 성당, 이탈리아.
서로마 제국이 멸망(476년)하는 그즈음 480년경, 이탈리아 움브리아(Umbria) 주(州)의 노르챠 지방에서 혼돈의 서방 교회를 밝힐 성인 한 분이 태어났다. 바로 베네딕토이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이란성 쌍둥이 여동생 스콜라스티카(Scholastica, 2월 10일)와 함께.
움브리아 주는 이탈리아 장화 반도에서 유일하게 바다를 접하고 있지 않은 주다. 외부와의 접촉이 항상 뒤늦게 있었고, 그 덕에 가장 이탈리아적인 문화전통을 고수하고 있는 지방이 되었다. 이 지방 출신의 성인이 많은데, 소위 ‘이탈리아적’인 성인들이다. 베네딕토를 포함하여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와 성 클라라, 카시아의 리타 성녀 등이다. 모두 순교자가 아닐뿐더러, 영성의 대가들로 불린다.
수도 생활 공동 규범 세운 성인
베네딕토는 이른 나이에 사제가 되려는 꿈을 안고 로마로 갔다. 그러나 혼란의 시대에 그가 바라본 제국의 수도는 전혀 이상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하느님을 찾아 은수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아니에네(Aniene) 강이 흐르는 수비아코의 ‘거룩한 동굴(Sacro Speco)’로 들어갔다.
그는 3년간의 은수 생활을 통해 각종 유혹에 맞서는 법을 터득했고, 자기를 극복함으로써 수도자의 자질을 연마했다. 근처에서 수도 생활을 하던 형제들의 요청으로 그들이 만든 공동체의 원장이 되어 경험한 것은 수도 생활에서 규범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엄격한 베네딕토 원장을 죽이려는 음모까지 나오자, 그곳을 떠나기로 했다. 일생 함께할 몇몇 형제들과 수도 생활의 양식을 결정하고, 시기와 질투가 없는 새로운 곳, 카시노(Cassino) 지방으로 갔다. 로마에서 100㎞ 정도 떨어진 곳이다. 서기 529년경이었다.
카시노 지방은 여전히 에투르리아 민족의 전통이 남아 있었고, 산 정상에는 아폴로 신전도 있었다. 베네딕토는 그곳을 그리스도교의 성당으로 바꾸고 대수도원을 지었다. ‘몬테카시노 대수도원’은 이렇게 탄생했다. ‘몬테(monte)’가 ‘산’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카시노의 산에 세워진 대수도원’이라는 말이다. 대수도원이 지어지던 530년경부터 지금까지, 그곳은 서방 교회 수도 생활의 발생지가 되었다. 베네딕토와 형제들은 인근 주민들을 개종시키고 그곳을 성역화하는데 많은 공을 들였다.
베네딕토는 이곳에서 저 유명한 수도 생활의 공동 규범을 마련했고, 서방 교회 최초의 ‘수도생활 규칙서’가 되었다. 단일한 수도공동체 안에서 금욕적인 생활을 토대로 공동의 기도, 학습, 노동 등 공동체 생활의 규정을 마련한 것이다. 신앙을 중심으로 정주의 생활, 장상에 대한 순명, 노동의 성화 등은 서양 수도 생활의 근간이 되었고, 이후 설립되는 모든 수도회의 모델이 되었다. 공동생활 규범으로 탁월한 수도 생활 규칙서는 훗날 공산주의 이론가들에게도 중요한 참고서가 되었다. 공동생활을 통한 공동 자산, 공동 노동, 공동 생산의 모델이 된 것이다.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는 수도 생활의 모토는 당시 노동을 노예들만 하는 천한 것으로 여기던 사회사상을 개혁하는 복음 운동이었다. 시간경에 따라 정해진 전례 생활 안에서 공동 기도와 노동으로 하느님을 찾으려는 수도 생활의 전형도 이 시기에 만들어져 자리를 잡았다. 이점 역시 뒤이어 탄생하는 여러 성인과 수도 생활에 영향을 미쳤다.
베네딕토는 안으로는 순명, 침묵, 겸손으로 수도자들을 지도했고, 교회와 사회에는 통치자와 교황의 자문관으로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동고트족의 왕 토틸라(Totila)를 개종시키는 등 민족들의 복음화에도 기여했다. 547년경, 몬테카시노의 대수도원에서 선 채로 선종했다고 한다.
「그레고리오 성가집」 펴낸 대교황
베네딕토 성인에 관한 이야기는 성 그레고리오 대교황이 쓴 4권으로 된 「대화(Dialog)」에서 소개하고 있다. 교황은 이 책을 통해 노르챠의 성 베네딕토를 처음 세상에 알렸고, 그를 ‘서구 수도 생활의 시조’로 언급했다.
교황의 이런 소개는 그만큼 성인과 친분이 있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이민족들의 유입으로, 오늘날의 유럽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왕국들이 멸망한 제국의 땅 여기저기에 세워졌다. 지형도가 바뀐 것이다. 그레고리오 교황으로서는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종교 자유가 시작된 지 거의 2세기 만에 선교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그 시점에서 베네딕토 수도회의 협력은 교황에게 큰 힘이 아닐 수 없었다. 덕분에 유럽 각지의 이민족 왕국에 선교사들을 파견할 수 있었고, 교황의 사목 방향을 제대로 전달할 수가 있었다.
가톨릭교회에서 그레고리오 대교황의 업적은 새 판이 짜여지는 유럽에서 교회의 입지를 굳히고, 교황으로서 도덕적 권위를 확보하며, 통솔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사목과 정치, 사회-경제 활동에 기준을 마련해 주었다. 이를 계기로 「그레고리우스 성사집」을 발표하고, 그때까지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성가를 집대성하여 「그레고리오 성가집」을 내놓았다. 성가는 곧 베네딕토 수도회에서 불렸고, 전례 양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골 지방의 마르티노(316?~397), 독일 지방의 보니파시오(675~754), 영국 지방의 아우구스티노(604), 서부 슬라브 지방의 치릴로(826~869)와 메토디오(815~885) 등이 파견된 것은 이런 커다란 흐름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초상화 작가
이 작품은 피에트로 아니고니(Pietro Annigoni, 1910~1988)의 프레스코화다. 몬테카시노 대수도원의 대성당 정면 바로 안쪽에 그려진 벽화다. 주제는 ‘성 베네딕토의 영광’(1979)이다. 아니고니는 우리 시대의 작가이고, 이 작품은 그의 작품 중 가장 큰 것으로 40㎡에 그렸다.
피에트로 아니고니는 밀라노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암브로시아나 도서관을 다니며 레오나르도 다빈치 회화를 공부했다. 다빈치의 디자인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기술을 익혔다. 그리고 15세에 부모를 따라 피렌체로 이사하여 벨레아르테 국립미술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는 이탈리아 ‘현대 사실주의 화가들’이라는 그룹에 소속되어 추상 미술에 반대했고, 20세기 중후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미술과도 대조되는 작업을 했다. 사실주의를 고수한 것이다.
초상화 작가로도 유명한 그는 현대작가 중 가장 많은 프레스코화를 남기기도 했다.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대성당 중앙 제대의 벽화도 그가 그렸다. 그의 종교화는 바티칸과 이탈리아 전역은 물론 미국, 영국 등의 미술관에 고루 소장되어 있고, 초상화는 세계적인 인물들을 두루 그려 특정 국가에서는 우표와 지폐에 새겨지기도 했다. 성 요한 23세 교황,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과 그의 남편 에든버러 공작 필립, 동생 마거릿 왕녀, J.F. 케네디, 이란의 마지막 왕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덴마크의 현 여왕 마르그레테 2세와 이탈리아 정치인 알치데 데 가스페리, 독일의 경제학자 에르하르트 수상 등 많은 국제적인 인물들을 두루 그렸다. 그리고 피렌체에서 사망했다.
작품 속으로
작품은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것 같다. 성 베네딕토가 빛으로 가득한 천상에서 많은 성인에 둘러싸여 영광을 받고 있는 장면이다. Coelestis urbs Jerusalem beata pacis visio! 즉, ‘천상 도시 예루살렘의 복된 평화에 대한 직관이다!
작품을 통해 많은 과거의 스승들, 마사쵸, 라파엘로, 렘브란트와 고야를 연상시킨다. 인물들은 원근법적인 구도 속에 있고, 소실점은 베네딕토 성인의 뒤에서 빛으로 처리되어 신비주의 색채를 유지하는 동시에 그 너머에 있을 하느님의 현존을 예측하게 한다.
작품의 가장 위쪽, 저 멀리 양쪽에는 아브라함과 모세가 있고, 성 베네딕토는 가운데 찬란한 빛 속에서 많은 성인에 둘러싸여 있다. 그림의 앞에는 성 그레고리오 대교황, 복자 빅토리오 3세 교황과 성 바오로 6세 교황이 있다.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몬테 카시노 대수도원을 재건하여 1964년에 축성했고, 베네딕토 성인을 유럽의 수호 성인으로 선포했다.
인물들의 자세는 뭔가를 경청하는 것 같고, 성인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바탕의 금색과 청색의 어울림이 품위를 더해주는 가운데, 아니고니는 이 빛나는 ‘영광’의 자리에 그림 속 인물들과 같은 시선으로, 그림 밖 관객도 초대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7월 12일, 김혜경(세레나,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상임연구원, 피렌체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