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22) 문화의 전당 ‘대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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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22) 문화의 전당 ‘대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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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22) 문화의 전당 ‘대영박물관’

 

인류의 장구한 문화 한자리에서 만나는 곳

 

발행일2017-06-04 [제3047호, 13면]

 

 

대영 박물관 외관 전경. 정면 입구에는 14m 높이의 그리스 이오니아식 기둥 44개를 세워 건물에 웅장함을 더했다. 건물 위쪽의 삼각형 팀파눔(Tympanum)에는 1852년 웨스트마코트가 만든 15개의 연작 부조 ‘문명의 진보’가 장식돼 있다.

 

세계 문화의 중심 도시 가운데 하나가 런던이다. 런던 곳곳에서는 오래된 건물이나 성당, 크고 작은 전시관과 화랑을 만날 수 있다. 또 수준 높은 미술관과 박물관이 산재해 있어, 문화의 도시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 오래된 도시를 걸으며 문화 공간을 방문하면 우리의 삶이 더욱 풍요해짐을 느낄 수 있다. 이는 문화가 사람들에게 주는 귀한 선물이기도 하다. 

 

런던에서 가장 중요한 곳으로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을 꼽을 수 있다. 이 박물관은 1753년 내과의사이자 과학자였던 한스 슬론(Sir Hans Sloane)이 7만1000점의 소장품을 기증함으로써 설립됐다. 그가 기증한 것은 도서와 고문서, 자연사 표본, 그리스와 로마의 유물, 고대 근동과 극동의 유물 등 매우 다양했다. 이곳은 1759년부터 일반인에게 개방됐고 이후에 많은 유물을 소장하고 전시하기 위해 건물을 계속 증축했다. 그래서 이 박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소장품을 가진 곳이 됐다. 

 

그리스 신전과 같은 박물관 건물은 로버트 스머크(Sir Robert Smirke)의 설계로 건축됐다. 정면 입구에는 14m 높이의 그리스 이오니아식 기둥 44개를 세워 건물에 웅장함을 더했다. 건물 위쪽의 삼각형 팀파눔(Tympanum)에는 1852년에 웨스트마코트(Sir Richard Westmacott)가 만든 15개의 연작 부조 ‘문명의 진보’가 장식돼 있다. 2000년에는 박물관 실내 천장 전체를 유리로 덮어 중앙홀로 만들었는데, ‘엘리자베스 2세 대정원’으로 불린다.

 

 

 

실내 천장 전체가 유리로 덮힌 엘리자베스 2세 대정원.

 

대영박물관은 단순히 여러 건물의 집합체가 아니라 인류의 장구한 문화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문화의 전당과 같다. 여행객들은 불과 몇 시간을 머물며 전시품을 둘러보지만 이곳에 소장된 백만 여점의 예술품은 평생을 봐도 다 볼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 박물관에서는 세계 각국의 고대 유물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예술품을 볼 수 있다.

 

이곳에는 그리스도교와 관련된 이콘이나 조각 등도 많이 전시돼 있다. 그 가운데 ‘새끼 양을 업고 가는 목동상’이 눈길을 끈다. 은으로 만들어진 이 상은 1세기경에 로마 제국 시대의 작품으로 여겨진다. 한 뼘 정도 밖에 안 될 정도로 작지만 무척 아름답다. 초기 교회 미술에서 목자와 양을 함께 묘사한 작품은 카타콤 벽화나 그 안에 있던 석관의 조각에서 볼 수 있다. 목자가 양을 어깨에 둘러메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도상이다.

 

 

새끼양을 업고 가는 목동상.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여기에 등장하는 목동과 새끼양은 매우 특이하다. 목동은 두 개의 주머니를 메고 있는데 등 주머니 안에는 양이 담겨져 있고 어깨 주머니에는 물이 담겨 있다. 목동은 아기를 업은 엄마처럼 양을 등에 업고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긴다. 양이 너무 어려서 아직 어깨에 멜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양에 대한 목동의 세심한 배려가 잘 드러난다. 이 작품을 보면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떠올리게 된다. 작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귀히 여기며 보살펴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목동 안에서 다시 보는 것 같다. 

 

박물관은 모든 계층의 사람이 즐겁게 배우고 익히는 평생학교와 같다. 세계의 박물관은 대부분이 문화와 예술을 아끼고 사랑한 몇몇 사람으로부터 시작됐다. 문화의 전당인 대영박물관도 한스 슬론이 소장품을 기증함으로써 시작됐다. 이후 그의 모범을 따라 많은 사람이 유물을 기증해 소장품은 계속 늘어났다. 유물 기증자들 뿐 아니라 예술품을 귀하게 여겨 보존하며 전시한 박물관 측과 지원을 아끼지 않은 단체와 개인이 있었기에 대영박물관이 탄생할 수 있었다. 

 

오늘날, 문화와 교회 박물관에 대한 관심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러나 교회 박물관은 단순히 유물 기증자들의 힘만으론 완성될 수 없다. 먼저 사람들이 기증한 유물을 소중히 여겨 보존하고 전시하려는 의지가 교회에 있어야 한다. 또한 흩어지고 사라지는 유물을 보존하기 위해 최소한의 공간이라도 우선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교회의 재정적인 지원이 있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유물을 보존할 수 있는 공간도 갖추지 않은 채 사람들의 유물 기증만을 촉구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교회가 유물을 잘 아끼고 보존하며 잘 전시하고 활용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소중한 유물을 기증하거나 대여하려는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정웅모 신부 (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유물 담당)

가톨릭대를 졸업하고 1987년 사제품을 받았다. 홍익대와

영국 뉴캐슬대에서 미술사·박물관학을 전공했다. 서울대교구 홍보실장과 성미술 감독, 종로본당 주임, 장안동본당주임 등을 역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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