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26) 글래스고의 ‘성 멍고 종교 박물관’
[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26) 글래스고의 ‘성 멍고 종교 박물관’
세계 주요 종교 유물 한 곳에… 타종교 이해 도와
발행일2017-07-02 [제3051호, 13면]
‘성 멍고 종교 박물관’ 외부 전경. 중세의 성처럼 돌로 건축된 박물관은 원래 주교관 건물이었다.
영국에는 런던 뿐 아니라 각 지역에 특색 있는 박물관이 많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특별한 곳은 글래스고(Glasgow)의 ‘성 멍고 종교 박물관’(St. Mungo Museum of Religious Life and Art)이다. 이 박물관은 다른 종교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더욱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1993년에 건립됐다. 이곳에는 유다교와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와 힌두교, 불교와 도교, 중국과 일본의 전통 종교 등과 관련된 유물들이 다양하게 전시돼 있다.
박물관의 이름으로 사용된 멍고(St. Mungo, 518년경~603년경) 성인은 어린 시절에 수도회에 들어가 수련을 받고, 540년경 글래스고 지역에 수도원을 만들어 그리스도교를 전파했다. 독특한 성인의 이름은 ‘참된 친구’라는 뜻으로, 그는 후에 글래스고의 수호성인이 되어 많은 사람의 공경을 받았다. 그의 무덤은 박물관 옆에 있는 대성당의 지하에 모셔져 있고 많은 이들이 찾는 순례지가 됐다.
중세의 성처럼 돌로 건축된 3층 박물관은 글래스고 주교좌성당 구역에 있는데, 원래는 주교관 건물이었다. 성당과 시는 함께 그곳을 박물관으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개방했다.
이곳에 들어가면 대성당 전경과 옆의 언덕에 있는 교회 묘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박물관의 정원도 일본 선불교식 정원으로 꾸며, 사람들이 잠시나마 머물면서 명상할 수 있도록 했다.
스코틀랜드 상공업의 중심지인 글래스고에는 다양한 종교를 가진 외국인 노동자와 가족들이 몰려들었다. 그러자 영국 사람들은 그들을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 종교 박물관을 만들었다. 이곳에서는 여러 종교의 유물 전시 뿐 아니라 정기적인 기획 전시와 흥미로운 행사를 통해 사람들을 항상 끌어 모은다. 또 여러 종교에 대한 대화와 토론의 장을 마련해 보다 많은 이들이 다양한 종교와 문화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처럼 한 건물에서 세계의 중요 종교의 유물을 알차게 전시한 곳은 성 멍고 종교 박물관이 유일하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은 종교를 가지고 있지만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종교에 대한 이해는 매우 부족하다. 이 박물관은 문화를 통해, 종교 간의 대화를 일회적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피에타상(오른쪽)과 힌두교의 시바상.
때로는 같은 전시 공간이나 진열대에 타종교의 유물을 함께 전시해 서로를 비교하며 볼 수 있게도 한다. 한쪽에 십자가에서 내린 예수님의 몸을 안은 성모 마리아상인 피에타가 서 있으면, 바로 그 옆에서 힌두교의 신 시바(Shiva)가 손과 발을 펼치며 춤추는 듯한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서로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두 종교의 예술품은 한 자리에서 충돌되지 않고 사람들을 맞이한다.
도라 홀잔들러가 그린 ‘안식일의 촛불’.
이곳에는 오래된 유물 뿐 아니라 최근의 종교 예술품도 함께 전시돼 있다. 그 가운데서 유다계 출신의 영국 작가 도라 홀잔들러(Dora Holzhandler, 1928~2015)가 그린 ‘안식일의 촛불’이 눈에 띈다. 작가는 안식일에 가족들이 모여 기도하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작품을 완성했다. 부모와 네 자녀가 식탁 주변에 모여 기도하는 모습이 평화롭게 보인다. 하느님의 빛을 상징하는 촛불 주위에는 생명의 말씀이 적힌 성경이 펼쳐져 있고 조촐한 음식이 차려져 있다.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가족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이 작품은 알려준다.
이곳에는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1989년)의 유명한 작품 ‘십자가의 성 요한 그리스도’(1950년)도 전시돼 있었다. 그 작품은 박물관이 개관되던 1993년부터 있었지만, 2006년부터는 글래스고의 가장 큰 예술 기관인 켈빈그로브(Kelvingrove) 미술관으로 이전됐다. 달리의 이 작품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이 성 멍고 종교 박물관을 찾기도 했다.
이 종교 박물관을 보면 신앙에 대해 점점 무관심해지는 현대 사회에서 교회가 어떻게 나가야하는지를 알 수 있다. 글래스고 대성당은 가진 것 전부를 신자들과 타종교인 나아가서는 무신론자들에게까지 내어 주고 있다. 대성당은 기도의 공간, 마당은 명상의 공간, 교회 묘지는 떠난 자의 공간, 교회 건물은 문화 공간으로 내어 주며 사람들을 품어 준다.
예수님처럼 자신의 몸과 피를 비롯한 모든 것을 내어주는 교회의 넓은 품으로, 떠났던 사람들이 하나둘 돌아온다. 우리는 성 멍고 종교 박물관에서는 유물이나 유적만이 아니라 여러 종교인들과 종교에 무관심했던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다종교 국가다. 불교와 유교,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전통 종교와 이슬람교도 주변에서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외국인 노동자나 국제결혼을 통해 우리 주변에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다른 사람이 가진 종교에 대한 이해는 무엇보다도 절실히 필요하다. 하지만 자신의 종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지만 타종교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단편적이며 부족하다. 성 멍고 종교 박물관과 같은 곳이 우리 주변에 있다면 다른 종교와 종교인에 대한 이해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정웅모 신부 (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유물 담당)
가톨릭대를 졸업하고 1987년 사제품을 받았다. 홍익대와 영국 뉴캐슬대에서 미술사·박물관학을 전공했다. 서울대교구 홍보실장과 성미술 감독, 종로본당 주임, 장안동본당 주임 등을 역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