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술임 수산나

Korean 103 Saints 103위 성인
홈 > Knowledges > Korean 103 Saints
Korean 103 Saints

우술임 수산나

관리자 0 3268 0
신분 : 과부순교일 : 1846-09-20관련성지 : 포청옥 

3232235521_Xqg4HVoA_233786379a19d21d87a7b4ca233f41bd98c65022.jpg

 

경기도 양주(楊洲)에서 태어난 우술임은 15세 때 인천의 한 교우와 혼인하여 남편의 권면으로 입교하였다.

1828년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을 뻔하였으나 해산이 임박하여 두 달 동안 옥살이를 하고 풀려 나왔는데, 그 때 받은 고문의 후유증으로 평생 육체적 고통에 시달렸다. 남편을 여의고 1841년 상경하여 교우들의 집에 몸붙여 살다가, 과부인 이간난과 함께 살며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다. 1846년 5월 김대건 신부가 체포되자 김 신부의 집에 있던 여교우들은 이간난의 집을 거쳐 새 집으로 피신하였는데, 이 때 이간난도 함께 피신하였다. 결국 우술임은 혼자 남아 이간난의 집을 지키고 있다가 7월 11일에 체포되었다. 9월 20일에 매를 맞아 반죽음이 된 몸으로 포청에서 6명의 교우와 함께 교수형을 받아 44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

0 Comments
남종삼 요한
관리자 0 0 0 3304 2017.01.17
신분: 승지순교일: 1866-03-07관련성지: 서소문 밖남종삼은 충청도 충주(忠州)에서 태어나 남상교(南尙敎)의 양자가 되었다. 1843년 문과에 급제하고 1846년 경상도 영해 군수가 된 남종삼은 항상 재물과 부녀자를 멀리하고 청백리(淸白吏)로서 의덕과 겸손의 청빈한 생활을 하여 모든 이들에게 존경을 받았으나 동료 관리들에게는 시기와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관직에 따르는 미신행위로 인해 한때 교회를 떠난 적도 있었으나 다시 교회로 돌아와서는 신앙생활에만 전념했다.프랑스인 선교사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고, 1863년 대원군의 명으로 정3품 승지(承旨)가 되어 왕족 자제의 교육을 맡았다. 그러던 중 1866년 러시아인들이 국경을 넘어와 통상을 요구하자 조정에서 문제거리로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때 남종삼은 홍봉주(洪鳳周), 이유일(李惟一)등과 논의 하여 영불(英佛) 동맹을 맺어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자는 소위 방아책(防俄策)을 대원군에게 건의했다. 대원군과 장 (베르뇌) 주교와의 면담이 이루어지는 듯 했으나 척신들의 압력, 장 주교와의 연락 지연, 중국에서의 천주교 박해 소문 등으로 실패했을 뿐더러 태도가 돌변한 대원군에 의해 병인 대박해가 일어나게 되었다.1866년 2월 고향인 제천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남종삼은 중도에서 자신의 수배령이 내려졌다는 소식을 듣고 경기도 고양군 축베더리로 피신했으나 2월 25일 주교의 하인 이선이(李先伊…
Category
State
  • 현재 접속자 83 명
  • 오늘 방문자 932 명
  • 어제 방문자 2,000 명
  • 최대 방문자 5,379 명
  • 전체 방문자 1,778,587 명
  • 전체 게시물 1,379 개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