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54) 이스라엘 나자렛의 ‘주님 탄생 예고 기념 성당’
[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54) 이스라엘 나자렛의 ‘주님 탄생 예고 기념 성당’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성모님의 순명으로 ‘구원의 꽃’ 피워낸 자리
발행일2018-02-11 [제3082호, 13면]
이스라엘 곳곳에는 성지가 있지만 북부에 위치한 나자렛은 성지 중의
성지다. 그곳은 예수님께서 어린 시절과 청년기를 보낸 고향이기 때문이다. 천사 가브리엘은 나자렛에 살던 마리아에게 나타나 성령으로
아기 예수를 잉태하여 낳게 되리라 예언했다(루카 1,26-38). 동정녀 마리아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전적으로 순명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의 도구로 내어놓았다. 마리아의 믿음과 헌신으로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 비로소 이 세상에 태어나실 수 있었다.
예수님께선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지만 나자렛에서 성장해 지내셨고, 요한 세례자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 복음을 전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셨다.
야트막한 산골 동네였던 나자렛은 구약성경과 유다교의 전승에 전혀 언급되지 않은 조그마한 촌락이었다. 나자렛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여서 외부와의 교류가 적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나자렛이란 지명은 히브리어 ‘나지르’에서 파생된
말인데 ‘지키다, 수호하다’라는 뜻이다. 나자렛은 산등성이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요새와 같은 역할을 하기엔 좋은 곳이어서
이런 이름이 붙여진 것 같다.
■ 마리아·요셉 집터 위에 세워진 기념성당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나자렛에서는 이미 청동기 시대(기원전
3000~2000년)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기원전 200년경에는 나자렛에 주로 유다인들이 살았고 헤로데 대왕 때는
요셉과 마리아 가족들도 이곳에서 거주하게 됐다. 그러나 유다계 그리스도인이 극소수여서 초기에는 이곳에 성당이나 경당을 세울 수는
없었다.
5세기 초에야 마리아의 집터와 요셉의 집터로 여겨지던 곳에 작은 기념성당을 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십자군의 패망으로 나자렛은
이슬람교인들의 주거지로 다시 변모되고 1187년 이후에는 주님 탄생 예고 기념 성당과 그리스도교의 주요 건물들이 모두 파손되고
말았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1730년에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비잔틴 시대의 성당이 있었던 자리에 작은 기념성당을 세웠다.
지금의 현대식 성당은 비잔틴 시대의 성당이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이 성당은 1960년에 공사를 시작해 1969년에 완공했다.
성당 정면 벽에는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나자렛에서 사셨다”는 글이 라틴어로 새겨져 있다. 성당 안에는 주 제단뿐 만 아니라 여러
보조 제단, 기도할 수 있는 경당들이 곳곳에 있어 순례자들에게 다양한 편리함을 제공해 준다.
웅장한 성당은 2층으로 건립됐지만 비잔틴 시대에 건립됐던 옛 성당의 흔적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특히 성당 1층 중앙 아래에는
움푹 패여 있는 동굴이 있는데, 이곳은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아기 예수의 잉태에 관한 소식을 전해 준 장소라고 한다.
그곳에 있는 소성당이 주님 탄생 예고 기념 성당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이다. 이 거룩한 장소 주변에 세워진 비잔틴 시대의 성당
벽과 기둥, 추상의 모자이크도 일부분을 볼 수 있다. 지금은 그곳에 작은 제단을 설치해 작은 규모의 순례단이 미사를 봉헌할 수
있게 했다.
성당의 종탑은 꽃봉오리 형상을 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구원의 꽃이 피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성당 1, 2층 내부에는 성모
마리아의 일생과 관련된 성화가 모자이크와 타일, 유리화로 장식돼 있다. 성당 마당의 벽면에도 우리나라 화가인 고(故)
이남규(루카·1931~1993) 선생이 제작한 모자이크 성모화를 포함해 세계 각국의 성모화가 빼곡히 전시돼 있다. 이 작품들은
성모 마리아는 구세주이신 예수님의 어머니이시면서 모든 백성을 품어 전구해 주시는 신앙의 어머니시라는 것을 알려준다.
■ 옛 성당 주변 생활 유적 발굴해 전시
주님 탄생 예고 기념 성당 옆면 출입구 아래에서는 옛 성당이나 마을의 유적지들을 살펴볼 수 있다. 프란치스코 수도회 고고학
발굴팀은 새 성당을 건립하기 직전인 1954년부터 1965년까지 주변을 대대적으로 발굴했다. 비잔틴 시대의 성당 유적과 옛날
가정집으로 여겨지는 여러 동굴, 마리아의 집터와 부엌으로 여겨지는 장소도 찾아냈다. 옛 거주지에서 물과 곡식을 저장하는 창고,
빵을 굽는 오븐과 포도 압착기, 도기와 생활 도구들도 함께 발굴했는데 그런 유물은 성당 옆 부속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현재 4만5000여 명이 사는 나자렛의 도심은 거주자들과 순례자들로 언제나 붐빈다. 나자렛도 현대화의 물결을 거스르진 못하지만 곳곳에 남아있는 성지를 통해서 사람들의 신심을 북돋워 준다.
예수님의 본향은 하느님 나라지만, 이 세상에서 그분의 고향은 나자렛이다. 우리 각자에게 고향은 특별한 의미가 있듯 예수님께도
고향은 매우 특별했을 것이다. 비록 공생활 중에 잠시 들린 고향에서 사람들로부터 불신과 배척을 당하셨지만(마르 6,1-6 참조)
그래도 예수님은 고향을 잊지 못하셨을 것이다. 나자렛 옛 도심의 좁은 골목길을 거니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사셨을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 옛 교회 건물과 유물 가치 돌아봐야
나자렛에는 주님 탄생 예고 성당, 성 요셉성당, 유다인 회당 자리에 세워진 성당, 가브리엘 성당이 잘 꾸며져 있다. 주님 탄생
예고 성당은 마리아의 집터에 세워졌고 성 요셉 성당은 요셉의 집터에 건립됐다. 유다인 회당 자리의 성당은 예수님께서 드나드셨던
회당 안에 있고 가브리엘 성당은 마리아가 매일 물을 길었다는 우물가에 세워졌다.
이스라엘의 다른 성지에서와 마찬가지로 나자렛에서도 성당이나 교회 건물을 지을 때 그 자리에 있던 유적지를 최대한 보존하려고 고민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도 교회 자산에 대한 보존과 개발 사이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 처신인지를 알기 위해 고민하는
경우가 있다. 사회나 교회에서 개발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유적지나 옛 건물은 비록 실용적인
가치가 떨어진다 하더라도 그 안에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화려하거나 큰 성당보다도 오히려 낡고 초라해 보이는 유적지나 옛
성당이 사람들의 심금을 더 잘 울리는 때가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나 교회에서 새로운 것만을 추구하다 거기에 더 큰 가치를 두면, 옛것이 자리 잡을 곳은 점점 좁아지고 손쉽게
사라지고 만다. 지금도 우리의 무관심이나 무지로 인해 사라지는 교회의 건물이나 유물이 없는지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교회의 보물이라고 할 수 있는 유물은 한 번 사라지면 다시 찾을 길이 없다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가톨릭대를 졸업하고 1987년 사제품을 받았다. 홍익대와 영국 뉴캐슬대에서 미술사·박물관학을 전공했다. 서울대교구 홍보실장과 성미술 감독, 종로본당 주임, 장안동본당 주임 등을 역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