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숨은 이야기] 73. 요사팟이란 세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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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숨은 이야기] 73. 요사팟이란 세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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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사팟 전기가 석가모니 생애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까닭은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73. 요사팟이란 세례명

2021.10.31발행 [16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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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롱고바르디의 「성요사팟 시말술략」의 표지와 첫 면 사진.



싯다르타를 모델로 한 허구의 성인전

주문모 신부는 1799년 6월 김건순에게 세례를 주었다. 그런데 김건순은 두 사람이 처음 회동한 1797년 당시 신부가 자신에게 요사팟(Josaphat, 若撒法)이라는 사호(邪號)를 주었다고 진술했다. 세례 이전에 세례명부터 먼저 받았다는 얘긴데, 이는 애초부터 주문모 신부가 김건순에게 요사팟 성인의 삶을 겹쳐보고 있었다는 의미로 읽힌다.

「사학징의」 중 조혜의(趙惠義)의 공초를 보면, “이른바 별호란 것은 일찍이 사학을 하다가 죽은 사람은 모두 이름이 있는데, 사학을 하는 자가 그 일이 자기에게 비슷하게 되기를 사모하여 그 이름을 취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세례명은 본인 또는 이름을 지어주는 사람이 그에게 바라는 바를 투사하여 지어준다는 뜻이다. 초기 신자 그룹 중에 요사팟이란 세례명은 김건순만 받았다. 요사팟 성인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고, 신부는 김건순에게 어떤 역할을 기대해서 요사팟이란 세례명을 지어주었을까?

「성년광익」 11월 27일은 요사팟 성인의 날로 지정되어있다. 그의 이름 아래 ‘국왕고수(國王苦修)’라고 써놓았다. 요사팟 성인의 신분이 고귀한 국왕이었고, 그럼에도 고통스러운 수행을 통해 성인품에 올랐다는 뜻이다. 요컨대 요사팟이란 세례명은 고귀한 신분으로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고통을 견뎌 어렵게 신앙을 쟁취한다는 의미를 띤다.

그런데 막상 성 요사팟의 전기를 읽어보면 고개가 갸웃해진다. 우선 그는 유럽의 성인이 아니다. 그는 소서양(小西洋)으로 불리는 인디아(應帝亞)에서 작은 나라의 왕자로 태어났다. 당시 인도에서는 천주교 신앙이 일어나, 집을 버리고 들판에서 수행하며 득도한 사람이 많았다. 불교를 독실히 믿어 천주교도를 박해하던 국왕 아우니르(Auennir, 亞物尼耳)는 귀한 아들이 태어나자 그의 운명을 점쳤다. 태자가 천주교를 믿어 봉행할 것이라는 점괘 풀이가 나오자, 왕은 왕자가 외부와 접촉하거나 늙음과 질병과 죽음 같은 추한 것을 볼 수 없도록 차단된 공간에 격리한 채로 길렀다. 하지만 왕자는 우연한 계기에 나환자와 맹인, 노인과 시체 등 인생의 생로병사의 비참함을 목격하게 되고, 천주의 섭리로 은수자 발람(巴爾郞)을 만나 그의 인도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이후 그는 왕의 지위를 버리고 수행자의 삶을 통해 천주교의 고귀한 성인으로 추앙받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사연을 읽어가다 보면 매 에피소드마다 자꾸 어떤 기시감(旣視感)을 느끼게 된다. 성 요사팟의 전기가 고타마 싯다르타, 즉 석가모니의 생애와 거의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성 요사팟은 실제로 존재한 천주교의 성인이 아니다. 불경에 나오는 석가모니의 일생 고사에 천주교 성인 서사의 외피를 입힌 허구적 성인전이다. 가톨릭의 성인이 허구적 인물, 그것도 석가모니라는 것은 의아하다 못해 황당한 느낌마저 든다.



「성 요사팟 시말」 속 불경 이야기


대체 어떻게 해서 이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된 걸까. 선교사 롱고바르디(Nicolas Longobardi, 龍華民, 1565~1655)가 「성 요사팟 시말(聖若撒法始末)」이란 제목의 번역본을 한문으로 간행한 것은 1602년의 일이다. 이 책의 원본은 「발람과 요사팟(Barlaam and Josaphat)」이란 제목으로 7세기에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에 의해 그리스어로 기록된 책자다. 중국과 페르시아의 고대 문헌에는 2~3세기경에 벌써 요사팟의 일대기가 소개되고 있는데, 이는 불교가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퍼져나갈 때 천주교 문헌과 습합되면서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정설이다. 이후 이 책은 라틴어와 프랑스어, 스페인어, 영어 등으로 번역되면서 살이 붙고 삽화까지 들어가 요사팟은 천주교의 은수자 성인으로 굳건한 위상을 지니게 되었다.

이 책의 역자 롱고바르디는 마태오 리치의 뒤를 이은 인물로, 중국에서의 포교 당시 불교도들이 천주교가 몇 권의 교리문답서에 의존하여 포교하는 데 대해, 거칠고 비루한 낮은 수준의 종교라고 비하하는 것을 보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이 책을 번역했다. 「성 요사팟 시말」은 동양에 최초로 소개된 천주교 성인 전기였고, 이에 앞서 1591년에 일본어로도 번역되어 일본 천주교의 전파에도 큰 영향을 끼친 책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이 실제로는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의 일생 행적을 천주교 성인 전기로 바꾼 이야기인 것이 밝혀진 것은 서구 학계에서도 19세기 이후의 일이다. 번역자인 롱고바르디 또한 이 사실을 몰랐던 셈이다. 이에 관해서는 오순방 교수가 쓴 ‘명말 천주교와 불교의 종교 분쟁과 최초의 서교(西敎) 소설 중역본 「성 요세파전기」’란 논문에 자세한 내용이 있다.

초기 예수회 선교사들은 교리교육에서 유학이 아닌 불교를 주 교화 대상으로 삼았다. 1581년 이탈리아 선교사 루제리(Michele Ruggieri, 羅明堅, 1543~1607)가 최초로 펴낸 교리서 「신편천주실록(新編天主實錄)」에서 서사(西士)가 자신을 ‘승(僧)’으로 지칭하고 있는 것이 그 예이다. 복장도 초기에는 승복을 입었다. 그러다가 마태오 리치 이후 보유론적 시각으로 바꾸면서 복장도 유복(儒服)으로 바꾸고, 용어도 유학의 그것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롱고바르디가 활동한 광동 지역은 불교의 위세가 강했으므로, 불교의 논법으로 불교를 설복한다는 선교 전략을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성 요사팟 시말」 속에는 은수자 발람이 요사팟을 일깨우려고 전한 여섯 가지 비유가 나온다. 그중 하나만 소개한다. 세상 사람들은 육신의 쾌락을 추구한다. 이것들은 모두 헛된 것인데도 사람들은 온통 미혹에 사로잡혀 깨닫지 못한다. 어떤 사람이 호랑이가 으르렁거리며 달려들자 이를 피하려고 구덩이 속으로 뛰어내렸다. 떨어지던 도중 작은 나무에 걸려 간신히 추락을 면하고 매달렸다. 그러자 쥐 두 마리가 나타나 매달린 나무의 뿌리를 갉아 먹어 곧 끊어질 지경이었다. 아래로 동굴의 바닥을 보니 독사 네 마리가 입에 불을 뿜으며 사람을 잡아먹으려고 입을 딱 벌리고 있었다. 실로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그런데 고개를 들어 나뭇가지를 보니 꿀이 똑똑 떨어지는지라, 마침내 위에서 호랑이가 으르렁거리고, 아래에는 뱀이 아가리를 딱 벌리고 있으며, 매달린 나무뿌리는 금세 끊어질 지경인 것도 까맣게 잊고, 그 단 꿀을 받아먹더라는 이야기다. 호랑이는 죽음, 사람이 뛰어든 굴은 세상을 상징한다. 쥐가 갉아 먹는 나무는 인간의 수명을 뜻하니 시각에 따라 줄어들어 마침내는 끊어지고 만다. 네 마리의 독사는 사행(四行)이고, 꿀은 세상의 헛된 쾌락이다. 그리고 나뭇가지에 매달린 사람은 미혹에 빠진 인간을 나타낸다.

이것은 불경 「백유경(百喩經)」에 실린 잘 알려진 유명한 비유이다. 발람과 요사팟은 이 비유를 두고 긴 대화를 이어가다가, 신망애(信望愛) 삼덕으로 벗을 삼아 세상을 성실히 살아야만 죽을 때 천주의 대전에서 자신의 죄악을 용서받을 수 있음을 말하는 가르침으로 마무리 지었다. 불경의 비유로 천주교의 가르침을 제시하는 방식을 써서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방식을 썼던 셈이다.



「성년광익」 속 요사팟 전기


「성년광익」의 11월 27일 자에 수록된 「성 요사팟 전기」는 롱고바르디의 「성 요사팟 시말」의 긴 서사를 간략하게 압축한 내용이다. 원전에 장황하게 소개된 불경의 비유는 대부분 생략되고, 생애 사실을 중심으로 간추렸다.

서두에는 「경언(警言)」이라 하여 전편의 주제문에 해당하는 성경 한 구절을 수록했다. 「루카 복음」 16장 9절에서,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불의한 마몬으로 친구들을 만들어, 그것이 없어질 때 그들이 여러분을 영원한 초막에 맞아들이도록 하시오”라는 구절을 제시했다.

뒤편의 「의행지덕(宜行之德)」은 요사팟 성인의 삶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을 ‘경세(輕世)’, 즉 세속을 가벼이 보라는 가르침으로 꼽았고, 마땅히 힘써야 할 「당무지구(當務之求)」에는 세상에 미혹된 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내세웠다. 이 모든 내용이 귀한 신분의 후예로 기득권을 모두 내려놓고 세속적 가치를 멀리하여 천주의 가르침에 따라 사는 신앙의 삶이란 주제와 연결되어 있다.

앞서 보았듯 김건순은 노론 최고의 명문인 김상헌 집안의 제사를 받드는 봉사손(奉祀孫)으로, 부와 명예가 드높았고, 학문과 문장으로도 안연(淵)의 환생이란 말을 들을 만큼 대단한 위치에 있었다. 18세 때 양부(養父)의 상을 당했을 때, 상주였던 그는 우리나라의 상복 제도가 송나라 때 제도를 본떠 옛법을 잃었다며 이를 고쳐 바로 잡아 상을 치렀다. 그가 입은 낯선 상복의 모양새를 본 사람들이 김건순을 힐난하며 소동을 일으키자, 김건순은 조목조목 논거를 들어 그들의 주장에 반박하는 글을 지었는데, 근거가 명확하고 문장이 유려했다. 당대의 천재로 일컬어졌던 이가환이 18세 소년이 쓴 글을 읽어보고는 내가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겠다고 감탄했다는 일화가 「백서」에 실려있다. 그의 총명이 어떠했는지 실감 나게 보여주는 예화다.

세속적 출세가 보장되어 있던 그는 어느 순간 둔갑술과 육임의 술법을 익히며, 강이천 등과 결탁하여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위험한 모험을 꿈꾸었다. 동료였던 강이천은 그의 반짝반짝 빛나는 예지를 기려 그에게 가귤(嘉橘)이란 별호를 지어주기까지 했다. 그런 그가 주문모 신부를 만나 두 차례 토론하고 나서는 전향을 선언하고 천주교로 개종하는 결단을 내렸다. 김건순은 남대문 인근에 머물고 있던 남곽도인 주문모를 서방성인(西方聖人) 또는 서방미인(西方美人)이라 부르며 그의 말에 따랐다.

주문모 신부는 김건순과 황사영 두 사람을 천주교 차세대 지도자로 낙점했던 것 같다. 두 사람이 1801년 사형을 당할 당시, 김건순이 26세, 황사영은 27세였다. 두 사람 모두 명문가의 봉사손이었고, 학식이 높고 문장 또한 대단했다. 신부는 김건순에게 그 학문과 문장으로 정약종을 도와 모든 천주교 교리 지식을 종합해 한 질의 총서로 묶는 「성교전서」 편찬의 소임을 맡겼다. 신부가 그의 두 어깨에 어떤 기대를 걸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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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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