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숨은 이야기] 44. 사학(邪學)이 아니고 정학(正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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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숨은 이야기] 44. 사학(邪學)이 아니고 정학(正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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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의 가르침이 서학과 한 치 어긋남이 없는데 어찌 사학인가”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44. 사학(邪學)이 아니고 정학(正學)입니다

2021.03.28발행 [16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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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아생 부베의 「천학본의」 중 “하느님은 임금이요 아비며 스승으로 명령의 권세가 있다”는 교리를 고대 유교 경전의 말로 이어서 설명한 내용이다. 각 구절 끝에 출전을 적었다. 밑줄 친 부분이 홍교만이 공초에서 대답한 인용과 일치한다.



유가 경전으로 사학을 설명하다

홍교만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1801년 2월 의금부로 잡혀갔을 때 나이가 64세였다. 「추안급국안」에 2월 14일과 2월 15일, 「추국일기(推鞫日記)」에 2월 20일의 공초 기록이 남아있다. 이 기록 속에 홍교만이 심문관과 서학이 사학(邪學)이냐 정학(正學)이냐를 두고 벌인 논쟁이 나온다.

2월 14일에 심문관이 “네가 이미 이 책을 보아 이 학문이 바른지 삿된지를 변별할 수 있을 테니, 네 견해에 따라 사실대로 대답하라”고 하자, 홍교만이 대답했다. “그 학문을 삿되다 해서는 안 됩니다. 그 학문은 대저 하늘을 공경하고 하늘을 두려워하는 것을 위주로 하는데, 어찌 삿되다 말할 수 있습니까?” 경천외천(敬天畏天)은 유학에서도 중시하는 가르침으로, 유학이 정학이면 서학도 정학임에 분명하다고 맞받아친 것이다. 경천외천의 말은 「시경」에서 ‘경천지노(敬天之怒)’와 ‘외천지위(畏天之威)’를 말한 것에서 가져왔다.

이튿날인 2월 15일에 그가 다시 끌려 나오자, 심문관은 첫마디부터 전날의 발언을 문제 삼았다. 홍교만이 또 대답했다. “천지는 대부모(大父母)이니 큰 부모로 섬기지 않는다면 이는 부모를 부모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선 공초에서 이른바 사학이라 할 수 없다고 했던 것입니다.” 부모를 부모로 섬기는 것이 어째서 사학인가? 말이 짧았지만 힘이 있었다. 그는 죽기로 작정한 사람이었다.

심문관이 다시 다그쳤다. 그가 한 번 더 소리 높여 말했다. “도의 큰 근원은 하늘에서 나오고, 또 천명(天命)을 일러 성(性)이라 하며, 또 유황상제(惟皇上帝)께서 하민(下民)에게 참마음을 내려주시는 것이 똑같이 경천(敬天)의 뜻에서 나왔습니다. 어찌 사학이라 말할 수 있습니까?(道之大原, 出於天. 又天命之謂性, 又惟皇上帝, 降衷于下民, 同出敬天之意, 豈可謂之邪學乎)”

홍교만의 이 대답은 경전의 말을 짜깁기한 것이었다. 천지가 대부모란 말은 「주역」의 풀이에서 “건곤대부모(乾坤大父母)”라 하고, 「시경」 「교언(巧言)」에서 “아득한 하늘을 부모라 한다(悠悠昊天, 曰父母且)”라 한데서 끌어왔다. ‘도지대원(道之大原), 출어천(出於天)’과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은 「중용」 구절의 인용이며, “유황상제(惟皇上帝), 강충우하민(降衷于下民)”은 「서경(書經)」의 한 대목 그대로였다. 이렇듯 경전의 가르침이 서학의 그것과 한 치 어긋남이 없다. 그런데 어찌 사학이라 하느냐는 것이 대답의 요지였다. 그는 이 대답으로 64세의 고령임에도 이날 곤장 20대를 맞았다.



삼경(三經)에 나오는 예수 강생의 이치

닷새 뒤인 2월 20일에 겨우 몸을 추스른 그가 다시 끌려 나왔다. 심문관의 첫 마디는 “네가 기꺼이 사학을 하면서 감히 경전을 가지고 그 주장을 꾸며 끝내 사학이 사학됨을 깨닫지 못하였다”였다. 앞서 경전의 말로 사학의 가르침을 옹호하려 든 괘씸죄를 묻겠다는 뜻이었다.

홍교만이 다시 대답했다. “저는 일찍이 이 학문의 종지(宗旨)가 대월(對越)을 존경하는 뜻과 같은데, 지금 세상에서 이것을 사학으로 여기는 것은 존경의 도리에 어긋날까 염려합니다. 그래서 사학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기 나오는 존경대월(尊敬對越), 즉 대월을 존경한다는 말은 「시경」 「청묘(淸廟)」에서 “하늘에 계신 분을 우러러, 신속히 달려와 사당에서 신주를 받든다(對越在天, 駿奔走在廟)”는 말에서 나왔다. 대월은 본래 마주하여 높인다는 뜻이나, 여기서는 그 뒤에 나오는 ‘재천(在天)’ 즉 하늘에 계신 신령의 의미로 썼다. 그러니까 서학의 종지는 하늘을 존경하자는 것이거늘, 이것을 사학이라고 한다면 이야말로 존경의 도리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 것이다.

자꾸 경전을 들이밀자, 짜증이 난 심문관이 화제를 돌렸다. “이 학문을 삿되다 하는 것은 그것이 예수가 강생했다는 주장에 가탁하여, 혹세무민으로 사람들을 이적금수의 죄과에 돌아가게 하기 때문이다. 네가 감히 존경이란 두 글자를 쉬 꺼낸단 말이냐?” 존경대월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 강생의 이단을 숭배하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이라는 힐난이었다.

홍교만의 대답은 단호했다. “저는 예수의 학문을 정학(正學)으로 여깁니다. 이제 만약 예수를 삿되다고 한다면 저는 감히 공초를 바치지 않겠습니다.” 예수를 삿되다고 할 경우, 일체의 진술을 거부하겠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어진 신문관이 다시 물었다. “예수가 강생했다는 주장을 네가 어떻게 분명히 알아 이처럼 독실히 믿느냐?” “예수가 강생했다는 주장은 예로부터 중국의 성현이 미처 말하지 못한 것이나, 제가 이 책을 익히 보았던지라 그 주장을 독실히 믿습니다. 그 지극한 이치의 소재를 말한다면 「시경」과 「서경」, 「주역」의 주장이 모두 이것과 합치되니, 어찌 사학이라 하리이까?” 예수 강생의 주장마저 「시경」과 「서경」, 「주역」의 설명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한발 더 나아갔다. 심문관은 성현의 말과 서양 오랑캐의 말은 합치될 수가 없으니, 양단간에 분명하게 한쪽을 택하라고 다그쳤다.

홍교만이 다시 대답했다. “제가 이 학문에 대해 수십 년 동안 공부를 쌓아 시간을 보낸 뒤에 비로소 얻었습니다. 이제 어찌 한마디 말로 억지로 뉘우쳐 깨달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이미 강생하신 예수를 아는지라 이제 갑작스레 뉘우쳐 예수를 삿되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마태오 리치의 적응주의를 넘어서는 색은주의(索隱主義)적 해석 시각

국청에서 벌어진 이같은 문답은 다른 죄수의 공초와는 그 성격이 확실히 달랐다. 그는 유학을 버리고 서학을 믿겠다거나 그 반대로도 말하지 않았다. 유학에 이미 서학의 정신이 내재되어 있으므로, 서학을 믿는 것은 유학의 가르침에 어긋남이 없다는 논리로 나왔다.

이는 달레가 「조선천주교회사」에서 강완숙의 공초 장면을 묘사하면서, “옥중 관리들 앞에서까지도 천주교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임을 끊임없이 주장하여, 공자와 그 밖의 가장 유명한 철학자들의 글에서 증거를 끌어내어 자기 말을 뒷받침하였다”고 한 것을 연상시킨다.

홍교만과 강완숙이 심문관의 추궁에 한결같이 유가 경전에서 근거를 끌어대어 서학 옹호의 논지를 펼친 것은 당시 교회 지도부에서 서학의 논리를 유가 경전의 가르침에 접속시키기 위한 학습 활동을 지속적으로 진행해 왔다는 뜻이다.

실제로 중국 교회에서도 이같은 움직임이 지속적으로 있어 왔다. 프랑스 국가도서관에 소장된 서학책을 모은 「명청천주교문헌」(대만 利氏學社, 2009) 제26책에 수록된 「천학본의(天學本義)」와 「고금경천감(古今敬天鑑)」, 「천학총론(天學總論)」, 「경전중설(經傳衆說)」 같은 책들은 모두 유가 경전과 중국 고전에서 천주교의 교리를 뒷받침할만한 구절들을 발췌하여, 경전 구절의 인용만으로 편집해 천주교 교리의 설명을 시도한 책자들이다.

특별히 「천학본의」와 「고금경천감」은 프랑스 예수회 선교사 조아셍 부베(Joachim Bouvet, 중국명 白晋, 1656∼1730)가 편집한 것으로, 1707년에 부베의 서문은 앞서 본 홍교만의 설명과 핵심 용어뿐 아니라 논리까지 똑같아 놀랍다.

부베가 쓴 「고금경천감」 서문의 첫 단락만 소개하면 이러하다. “예로부터 제유(諸儒)가 모두 전적에 실려 있는 수신제가치국의 도리를 중시하여, 경천(敬天)을 본연으로 삼지 않음이 없었다. 앞뒤로 유자들의 경천의 뜻은 크게 서로 같지가 않은데, 상고 적의 유자들은 천학(天學)에 가까웠다. 그래서 그들의 경천은 지극히 존귀하고 비할 데 없이 전능하사 지극히 신령하고, 선을 상주고 악을 벌주시며, 지극히 공변되어 사사로움이 없는 분이 만물의 근본 주재(主宰)가 되심을 분명히 알아, 아침저녁으로 조심하고 삼가서, 하늘을 두려워하고 하늘을 공경하여 섬겼다.”

이후 전국시대에 분서(焚書)의 횡액을 만나고, 진한진당(秦漢晋唐)을 거치면서 진도(眞道)가 실전되어 만유의 주재를 모르게 되었고, 이후 송유(宋儒) 들이 유일진주(惟一眞主)의 뜻을 모른 채 억지 주장을 펼치면서 경전의 뜻이 완전히 어두워졌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고대 경전의 근본정신으로 돌아가, 경전 원문 속에 숨어버린 진의(眞義)를 찾아 정리하였다는 주장이다. 이들 글 속에는 앞서 홍교만이 인용한 모든 문장들이 순서까지 비슷하게 나열되어 있다.

마태오 리치의 적응주의가 고대 유교 경전으로 그리스도교 교의를 탑재하는 시도를 보여, 「천주실의」에도 초기 경전을 활용한 설명이 나오지만, 부베는 이를 더욱 극단으로 밀어붙여 이른바 색은주의(索隱主義, figurism) 또는 부베주의(Bouvetism), 에노키즘(Enochism)으로 불리는 해석학적 태도를 도입한 사람이다. 색은주의란 「주역」 등 고대 전적에서 천주교의 신비를 찾아 예언서적으로 간주하여 해석하려는 학술적 흐름과 연계되어 있다. 「천학본의」와 「고금경천감」 등의 저작은 마태오 리치의 보유론적 적응주의가 극단적 색은주의로 넘어가는 중간 지점에 놓여있다.

홍교만은 예수 강생의 신비조차 「시경」, 「서경」, 「역경」의 이치와 합치된다며, 수십 년간 이 연구에 몰두해 얻은 결론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천주실의」의 보유론적 경전 적용 시도를 넘어서는 색은주의의 환원론적 해석 시도의 흔적과 만나게 되는 것은 대단히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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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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