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55) 이스라엘 북부 ‘세포리스 국립공원’
[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55) 이스라엘 북부 ‘세포리스 국립공원’
로마 제국 시대엔 번성했던 곳이지만, 지금은…
갈릴래아 호수 주변에 자리잡은 도시
목수인 요셉과 그를 돕던 예수님이
며칠씩 머물며 일했을 것으로 추정
유물·생활용품 등 박물관에 전시 중
발행일2018-03-04 [제3084호, 13면]
이스라엘 북부 세포리스(Sephoris)는 갈릴래아 호수 주변에 있던
티베리아스와 더불어 가장 큰 도시였다. 로마 제국 시대에는 번성했던 곳이지만 지금은 폐허가 되어 유적지로 남아있다. 세포리스라는
이름도 지포리(Zippori)로 변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갈릴래아와 사해 동부 베레아의 영주로 임명된 헤로데 대왕의 아들 헤로데 안티파스(재위 기원전 6년~기원후 39년)는 세포리스를
영지의 수도로 만들었다. 이곳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외적의 침입을 감시하기 좋은 곳이었다. 안티파스는 궁전과 주택,
도로와 야외극장 등도 지어 이곳을 갈릴래아에서 큰 도시로 만들었다.
이 도시가 한창 번성했을 때는 3만여 명의 시민들이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후에 갈릴래아 호수 바로 인접한 곳에 신도읍 티베리아스가 건축되면서 호수로부터 좀 더 멀리 떨어진 세포리스는 급속히 쇠퇴하며 역사 속에서 몰락했다.
로마 시대에 계획적으로 건립된 도시는 다 허물어졌지만 도로와 남아있는 유물만으로도 화려했던 시절을 떠올릴 수 있다.
궁전이나 저택의 마당, 집 안의 바닥은 형형색색의 모자이크로 장식했는데 아직도 곳곳에서 이런 작품을 찾아볼 수 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모자이크의 아름다움은 퇴색되지 않고 여전히 아름다움을 뽐낸다.
세포리스는 예수님의 고향인 나자렛으로부터 불과 6㎞ 떨어진 곳에 있지만, 순례자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순례길에서 제외되곤
한다. 그러나 이곳은 로마 제국 시대의 도시 흔적과 유물이 잘 보존돼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곳이다. 오늘날에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문화에 흥미를 지닌 사람들로부터 큰 관심을 끌고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 정부는 세포리스와 주변 지역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보존하고 있다.
예수님과 나자렛 사람들은 고향 산골에서 가족을 부양할 충분한 일거리를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기술자나 건축업자들은
일거리를 찾아 인근을 떠돌아다녔는데 일감이 가장 많은 곳이 세포리스였다. 신도시를 건설하던 이곳엔 일거리가 많았기 때문에 갈릴래아
호수 주변에 살던 일용 노동자들이 즐겨 찾았다.
목수였던 양부 요셉을 도왔던 예수님도 목수와 건축 기능공(마르 6,3)으로서 일을 구하기 위해 세포리스를 자주 찾으셨을 것이다. 이
도시의 언덕에 올라가면 건너편의 나자렛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까이 보인다. 때때로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며칠씩 머무시면서 고된
일을 하셨을 것이다.
오늘날 이곳에서 예수님과 관련된 성지나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지만 일거리를 찾아 헤매거나 땀 흘리며 일하시던 그분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폐허가 된 거리와 집터를 거닐다 보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애쓰던 예수님과 당시 노동자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 도시 한쪽에는 로마 시대에 건축된 반원형의 야외극장도 볼 수
있는데 200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잘 보존돼 있다. 야외극장은 3000여 명이 동시에 공연을 즐길 수 있게 건립됐다. 로마
시대의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극장은 단순히 공연만이 아니라 모든 문화 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세포리스에서 유일하게 완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은 사각 형태의 박물관 건물이다. 이 건물은 폐허처럼 보이는 유적지 옆에 있어
더욱 돋보인다. 박물관 옥상은 전망대로 꾸며져 옛 도시 전체와 국립공원 구역, 주변을 감싼 산간마을을 한눈에 다 내려다볼 수
있다.
원래 이곳에는 외적으로부터 도시를 보호할 감시탑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옛날 감시탑이 있던 자리에 십자군 시대에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망루를 건축했다. 18세기에 갈릴리아의 통치자에 의해 망루는 증축됐다. 오스만 제국 시대 말기에는 내부를 수리해 학교로
사용했는데 현재는 박물관으로 이용하고 있다.
세포리스 박물관에는 이곳에서 발굴된 주요 유물과 생활용품, 모자이크와
예술품 등이 잘 전시돼 있다. 또한 유적지를 발굴할 당시에 사용했던 도구들도 한쪽에 정돈돼 있다. 비록 박물관은 새 건물이
아니라 오래되고 낡았지만 그 안에 있는 전시물은 하나같이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최근에 우리 한국교회 전반에서 가톨릭미술관이나 박물관의 필요성에 대해 자주 논의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문화기관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커지면 그것이 실현될 날이 앞당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기관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부지를 마련하고 새 건물을
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 어떻게 이처럼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 꿈을 현실화할 수 있을까? 그것은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교회의 기존 건물 가운데서 제대로 활용하지 않거나 방만하게 사용하는 공간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혹은 텅 빈 채로 오랫동안
방치된 공간이 있는지도 점검할 필요가 있다.
교회의 기존 건물을 잘 손질해 우선 미술품이나 유물을 보관할 수장고를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수장고가 있으면 값지고
소중한 유물을 잘 보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수장고 옆이나 가까운 곳에 작은 전시장을 만들어 소장 작품을 순차적으로 전시하면 그
건물이 바로 미술관과 박물관으로 변화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