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숨은 이야기] 68. 불멸과 개벽을 꿈꾼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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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숨은 이야기] 68. 불멸과 개벽을 꿈꾼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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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 세상 꿈꾸던 이들, 천주교의 차별없는 세상에 빠져들다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68. 불멸과 개벽을 꿈꾼 사람들

2021.09.19발행 [16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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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 천주교 신자 중에는 천주교를 받아들이기 전에 도교 계통의 「정감록」 신앙에 빠졌던 경우가 의외로 적지 않다. 숙종조 이래로 조선을 강타했던 「정감록」 신앙은 거의 재림 예수 신앙의 조선 버전에 가깝다. 십승지를 찾고, 미륵 세상을 꿈꾸며, 도화낙원을 갈망하던 이들에게 천주교의 가르침은 그들이 원하던 바로 복음의 소리였다.


신선을 꿈꾸다 서학과 만나다

황사영은 백서에서 정약종에 대해서 이렇게 썼다. “정약종 아우구스티노는 일찍이 신선술을 배워 장생하려는 뜻이 있어, 그릇되이 천지가 개벽한다는 주장을 믿었다. 그러다가 탄식하며 말했다. ‘천지가 바뀔 때는 신선 또한 소멸하여 없어짐을 면치 못할 테니 끝내 장생의 도리는 아니다. 족히 배울 것이 못 된다.’ 성교(聖敎)를 듣게 되자 독실히 믿어 이를 힘껏 행하였다.”

그는 젊어 신선술에 빠져 천지개벽설을 믿었다. 천지가 바뀔 때를 콕 집어 말한 것은 정약종이 후천(後天) 개벽의 말세 신앙, 즉 「정감록」 계통의 유사 종교에 꽤나 심취해 있었다는 뜻이다. 정약종은 불로장생하는 육신의 영생을 꿈꾸다가, 천주교와 만나게 되면서 이를 버리고 영혼의 영생을 받아들였던 셈이다.

초기 천주교 신자 중 천주교를 받아들이기 전에 도교 계통의 「정감록」 신앙에 빠졌던 경우가 의외로 적지 않다. 노론의 명문가 안동 김씨 김상헌 집안의 제사를 받드는 봉사손(奉祀孫)이었던 김건순 요사팟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 황사영은 백서에서 “김건순은 나면서부터 비범하여 9세에 문득 선도(仙道)를 배우려는 뜻이 있었다”고 썼다. 또 「사학징의」 가운데 여러 사람의 증언과 「추안급국안」의 기록으로 볼 때, 김건순은 단학(丹學)에 상당히 깊이 빠졌고, 육임(六壬)의 술법까지 익히는 등 도교 계통의 신앙에 꽤 깊이 들어간 상태였다.

김건순의 족형이자 그의 동지였던 김백순(金伯淳)에 대해서도 황사영은 백서에서, 그가 젊어 성리학을 공부하다가 “또 도리가 의심스럽고 어두워 온전히 믿을 수 없음을 알아 마침내 노장의 책을 읽었다. 인하여 사람이 죽더라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음을 깨달아 새로운 이론을 창안하여 벗들에게 강설하였더니, 벗들이 나무라며 ‘이 사람의 의론은 새롭고도 기이하니 틀림없이 서교를 따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고 기록했다.

이렇게 정약종, 김건순, 김백순 세 사람 모두 젊은 시절 노장이나 신선술에 빠졌다가, 서학으로 전향하였다. 특히 위 김백순의 언급은 당시 노장 또는 신선술의 논리와 서학의 관념이 포개지는 지점이 있었음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여기에 더해 특별히 김건순과 김백순의 경우는 강이천(姜彛天, 1768~1801) 등과 함께 바다 섬 가운데 유토피아가 있고, 그곳에서 해도진인(海島眞人)의 영도 아래 새로운 세상을 열겠다는 모의 행동으로 이어져 역모의 심각한 파장을 일으켰다. 그의 무리였던 정원상(鄭元相)의 공초에 따르면 김건순은 뒤에 천주교 신자로 순교한 여주 사람 원경도(元景道) 요한과 이중배(李中培) 마르티노 등에게 둔갑술과 장신술(藏身術)을 가르쳤다. 그는 돈과 재물을 모아 큰 배를 만들고, 사람들과 함께 섬에 들어가 군사 훈련을 시켜, 장삿배의 물화(物貨)를 탈취하고, 등주(登州)와 내주(萊州)를 취해, 이곳에 눌러살며 무궁한 복락을 영원히 누릴 것을 다짐했다. 그러던 그가 1797년 가을 주문모 신부를 만난 뒤, 그간의 술법 공부를 다 버리고 천주교도로 거듭났다.

황사영은 백서에서 또 이렇게 썼다. “당시 서교를 받드는 자는 대부분이 남인이었고, 노론은 한 사람도 없었다. 요사팟은 흠모하는 자취가 깊었으나 들어갈 방법이 없다가, 우연히 고향 지역의 교우를 통해 총령(總領) 천신(天神), 즉 미카엘 대천사의 상본(像本)을 얻어 보고는 성교가 기문(奇門)과 서로 통한다고 오해하여 마침내 강이천 등과 함께 술법에 종사하였다. 강이천이란 자는 소북(少北)의 명사로 심술이 단정치 못해, 본국이 틀림없이 오래가지 못하리라 여겼다. 장차 풍운의 기회가 오면 이 술법을 배워 익혀 때를 틈타 나아가 취하려 했던 것인데, 요사팟이 알지 못하고 잘못 사귀었던 것이다.”

김건순이 천주교에 혹한 것은 자신들이 익히던 기문둔갑의 술법과 천주교의 가르침이 일맥상통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처형 당시 김건순은 저자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죽었다. “세간의 벼슬과 명성은 모두 헛되고 거짓된 것이오. 나 또한 얼마간 이름이 일컬어졌고, 또한 능히 벼슬할 수도 있었지만, 헛되고 거짓된 것이라 여겨서 버리고 취하지 않았소. 오직 천주의 성교(聖敎)만이 지극히 참되고 지극히 알차니, 이를 하다 죽더라도 사양하지 않을 것이요. 그대들은 모름지기 잘 알아 두시오.” 이때 그의 나이는 황사영이 죽을 때 나이보다 한 살 어린 26세였다.



깨지기 쉬운 그릇

연암 박지원의 아들 박종채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정리한 「과정록(過庭錄)」에서 김건순이 부친을 찾아온 일을 기록했다. 그에 따르면 김건순은 고매한 재주와 해박한 학문으로 공자의 제자 안연(淵)이 환생했다는 말까지 들었던 대단한 천재였다. 그가 여주에서 한번 상경하면 서울의 내로라 하는 사람들이 그를 만나보려고 줄을 섰을 정도였다.

그런 김건순이 자기 집의 식객이자 연암의 제자였던 화가 이희영의 주선으로 연암을 찾아왔던 모양이다. 연암은 김건순과의 만남에 내심 기대를 품었던 듯하다. 긴 이야기 끝에 그가 떠나자 연암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연암이 아들에게 말했다. “김생은 내가 한번 만나보기를 원했다. 만나 보고 나니 다만 가여울 뿐이로구나. 그 재주는 진실로 천하의 기이한 보배라 할 만하다. 천하의 기이한 보배를 간수하려면 모름지기 굳세고 질기고 온전하고 두터운 그릇을 써야 손상 없이 오래 보존할 수가 있다. 내가 그 그릇을 보니 이 보배를 간직하기엔 부족하더구나. 너무 슬프다.” 연암은 김건순과의 한 차례 대화에서 그의 마음이 영 딴 곳에 가 있음을 간파했다. 그리고 이를 슬퍼했다. 김건순이 연암을 찾아온 것은 1797년이었을 것이다.

이렇듯 초기 천주교 신앙을 가졌던 이들 중 상당수가 천지개벽을 꿈꾼 선도(仙道)에 빠졌던 점은 천주교 신앙이 당시 조선인들에게 지녔던 질량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세상이 어지러울 때마다 말세 신앙이 기승을 부린다. 미륵이 내려와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륵 하생 신앙과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후천 개벽의 꿈은 절망적 현실의 빈틈을 교묘하게 비집고 들어온다. 여기에 술사들은 무릉도원의 유토피아를 입힌 도화낙원의 판타지를 만들어냈다. 희망 없는 현실의 삶은 곧 끝나고, 믿는 자만이 들어 올려져서 낙원에 들어간다. 그것은 오로지 선택받은 자들에게만 허용되는 꿈이다. 미리 깨어 준비해야만 그날의 면류관을 쓸 수가 있다. 그날 그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때로 먼 바다 삼봉도(三峯島)에 살고 있다는 푸른 옷을 입은 진인(眞人)의 모습으로, 그도 아니면 정도령의 이름을 내건 홍경래 들의 깃발로 나타났다. 나라의 시스템은 멈춰 섰고, 관료들은 더없이 부패하고 타락했다. 사람들의 삶은 딱 그만큼 괴로워졌고, 희망은 싹도 찾을 수가 없었다.



재림 예수 신앙의 조선 버전, 「정감록」

숙종조 이래로 조선을 강타했던 「정감록」 신앙은 거의 재림 예수 신앙의 조선 버전에 가깝다. 십승지를 찾고, 미륵 세상을 꿈꾸며, 도화낙원을 갈망하던 이들에게 천주교의 가르침은 그들이 원하던 바로 복음의 소리였다. 이런 꿈은 19세기 전 세계를 떠돌던 메시아니즘의 변용일 뿐이다.

현실의 삶에서 희망을 찾지 못한 이들이 현실 너머에서 천국을 꿈꿨다. 희망 없는 세상에서 불로장생을 선망하다가, 오래 사는 것에조차 의미를 둘 수 없게 되자, 그들은 정신의 초월과 저 높은 하늘나라의 꿈을 그것과 맞바꿨다. 지금은 라자로처럼 땅바닥에 떨어지는 빵 부스러기를 얻어먹고 살지만, 저 하늘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을 것이었다. 이 꿈이 조선을 강타했다. 짐승처럼 살던 민초나 여성들에게 전해진 복음의 소식은 그들의 몸을 부들부들 떨게 할 만큼 전율을 안겨주었다. 물불을 가릴 수 없었다. 고통이 차라리 기뻤다. 박해는 천국으로 건너갈 보증수표와 같은 것이었다. 고통의 담금질이 거셀수록 영혼은 순수한 정금(精金)으로 더욱 빛날 터였다.

천주의 계명을 지키고 십자성호를 긋고 기도를 열심히 하면 누구나 차별 없이 천국에 갈 수가 있다. 그곳에는 양반 상놈의 구분도 없고, 남녀의 차별도 없다고 했다. 누구나 평등하고, 평화롭고 공평한 세상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믿음을 실행에 옮김에 조금의 주저함이 없었다.

하지만 지배층에게 저들의 활화산 같은 용암의 분출은 곧바로 체제 전복의 위험하고 불온한 시도일 뿐이었다. 이전의 혁명을 외쳤던 반역 집단이나, 깊은 산 속에 별천지가 있다고 속삭이던 사교 집단과 이들은 확연히 달랐다. 그 너머에 선진 서양 문물의 아우라가 있었고, 복음으로 대표되는 경전의 질서가 정연했다. 사람들은 차별 없는 세상의 비전 앞에 열광했다. 위정자들은 그 위에 대역부도의 이름을 덮씌웠다.

다블뤼 주교가 1850년 9월에 프랑스에 있던 가족에게 보낸 편지 중에 흥미로운 내용이 보인다. “모두가 무슨 큰 사건이 터지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있고, 불길한 예언들도 들리고 일이 돌아가는 형세에 얼마간 변화도 보입니다. 심지어 사람들 얘기로는 사람들이 숨기고 있는 책 속에 오래된 예언이 적혀 있다고 하는데, 즉 서양의 종교가 이 왕국에 들어와 널리 퍼질 것을 예고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있잖아요. 그런 책은 전적으로 믿을만한 것은 못 되는데, 조선 사람들은 그러한 기이한 참언이나 허언 따위에 너무나 빠져 있답니다.”

다블뤼 주교의 이 편지는 「정감록」이나 「남사고비결」 같은 비결 신앙이 천주교와 습합되어가는 경로를 암시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말세 신앙, 개벽 신앙이 확산되는 사회는 그만큼 불안하고 우울한 사회다. 이 신앙의 뿌리는 아주 깊고도 광범위해서 민중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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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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