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돈 보스코 사제생활 유적지 - 토리노 발도코, 피나르디경당, 도움이신 마리아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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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돈 보스코 사제생활 유적지 - 토리노 발도코, 피나르디경당, 도움이신 마리아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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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토리오' 시작한 곳에 '피나르디 경당' 세워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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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
1. 돈 보스코 사제생활의 중심지 발도코에 세워진 도움이신 마리아 대성당 전경. 성당 앞 광장에 세워진 돈 보스코 성상이 인상적이다.
2. 피나르디 경당 입구. 돈 보스코가 처음으로 오라토리오를 시작한 곳이다.
3. 돈 보스코 성인 유해가 안치된 제대. 성인은 여기서 매일 미사를 집전했다.
4. 밀납으로 제작, 안치된 돈 보스코 성인 유해.

 

가난하고 힘겹던 키에리의 고학 생활을 마치고 신학교에 입학, 성소를 키운 요한 보스코는 1841년 6월5일 26살 나이에 드디어 사제가 된다.

 키에리 신학교에서 가까운 토리노 시내에 있는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은 그는 이날 '주어진 시간을 철저히 사용하고, 영혼을 구하는 일이라면 인내와 겸손으로 앞장서며, 영적 스승으로 모셨던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의 온유와 영성을 따라 살겠다'는 세가지를 하느님께 서약했다. 이는 그가 9살 되던 해 꿈에 나타나 가난하고 소외된 청소년들을 위한 삶을 살 것을 예시한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었다.

 사제가 된 돈 보스코는 청소년을 위한 사목에 앞서 3년간 토리노 시내에 있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당'으로 다른 새 사제와 함께 사목교육을 받는다. 그는 여기서 첫미사를 봉헌하며 '젊은이들의 수호천사'가 되기로 다시 한번 결심했다.

 순례단이 찾은 프란치스코 성당에는 그 옛날 돈 보스코가 첫 미사를 집전했던 제대가 그대로 보존돼 있었고, 제대 중앙에는 돈 보스코 성인의 환한 미소를 닮은 꽃다발과 함께 성인의 성화가 놓여 있었다.

 성당 이곳 저곳을 둘러보던 순례단의 눈길은 중앙 제대 옆 쪽에 있는 제의방에 머물렀다. 이곳은 그간 돈 보스코가 꿈꿔왔던 청소년 사목을 시작하는 출발점이 된 장소이기 때문.

 성인이 사제가 된 지 6개월이 지난 1841년 12월8일.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이던 그날은 유달리 추운 겨울이었다.
미사를 봉헌하려고 제의방에 들어간 돈 보스코는 따뜻한 곳을 찾아 몰래 숨어든 누더기 차림의 소년 바르톨로메오 가렐리가 제의방 지기에게 혼줄이 나며 쫓겨나는 장면을 목격한다. 이를 측은히 여긴 돈 보스코는 큰소리를 지르는 제의방지기에게 '이 아이는 제 친구입니다'라고 감싸주며 아이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꿇은 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음식을 먹인 뒤 '다음 주일엔 너와 같은 처지에 있는 친구들을 데려 오라'며 되돌려 보냈다.
다음 주 네명이 모였고, 그 다음 주에는 그 수가 배로 늘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산업화로 인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도시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자리를 찾아 몰려온 사람들로 가득했고, 시내 뒷골목에는 오갈데없이 방황하는 아이들이 즐비했다.
가렐리와 함께 매주 돈 보스코를 찾아온 아이들은 모두 거리에 내려버진 이런 아이들이었다. 그는 한시도 지체할 수 없었다.
아이들을 모아 글과 교리도 가르치고 먹을거리도 장만해주었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 '오라토리오'(ortorio, '기도하는 곳'이라는 뜻)다.

 순식간에 300여명으로 불어난 아이들과 함께 지낼 공간을 찾을 수 없어 막막하기만 하던 돈 보스코.
그러나 그는 실망하지 않았다. 어려울 때마다 언제나 보이지 않는 손길로 도움을 베풀어주시던 성모님과 하느님의 섭리를 믿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은인의 도움으로 토리노 인근 발도코에 작은 집을 마련한 돈 보스코는 그곳에서 죽을 때까지 고아, 가난한 청소년, 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의 친구이자 아버지로 살아간다.

 순례단은 돈 보스코가 혼신을 다해 청소년 사목에 매진했고, 살레시오회의 본산이 됐던 발도코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날 발도코에는 돈 보스코 성인의 유해가 안치된 도움이신 마리아 대성당이 웅장한 자태로 세워져 있고, 성당 앞 대광장에는 수단 자락에 매달린 아이들을 따뜻한 미소로 감싸안은 대형 돈 보스코 성상이 자리잡고 있다.

 발길을 옮겨 대성당 경내로 들어서자, 앞 마당 한켠에 있는 '피나르디 경당'이 눈길을 끌었다.
돈 보스코가 300명의 아이들을 이끌고 발도코의 한 작은 집에서 오라토리오를 시작한 곳에 세워진 경당이다.
돈 보스코는 6년간 여기서 아이들과 살다 공간이 협소하자 인근 부지를 매입, 자신의 영적 스승의 이름을 딴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당'을 짓는다.
이 성당은 도움이신 마리아 대성당 경내에 그대로 보존돼 있다.

 돈 보스코는 이를 전초기지로 삼아 아이들이 험난한 세상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각종 교육과 기술을 가르치는 직업학교를 세워 직접 아이들을 가르쳤다. 어린시절 고학하며 구두수선, 재봉, 목공 등 안해본 일이 없었던 그는 아이들에게 훌륭한 스승이었다.
이것이 오늘날 돈 보스코 직업학교의 모태다. 그는 또 이곳에서 청소년 사목에 헌신할 남녀 젊은이들을 모아 살레시오 수도회를 창설, 전세계에 '제2의 돈 보스코'가 버려진 아이들의 어머니 아버지로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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