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데 산티아고 +30: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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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데 산티아고 +30: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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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데 산티아고 +30: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까미노에서 침낭을 개지 않아도 되는 날이 있다니! 아침이면 제일 먼저 침낭을 정리하고 배낭을 둘러메고 하루하루를 걸었다. 하루 동안 걸은 만큼 산티아고가 가까워졌기에, 단 하루도 쉼 없이 걸어왔다. 날마다 머리를 눕힐 침대가 있는 것, 일용할 양식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던 하루하루는 자연스럽게 순례자의 그것이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어제, 산티아고에 도착한 것이다. 

침낭 속에서 눈만 뜨고 케이를 부른다. 8시가 넘도록 기상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는 게 얼마만인가? 케이와 그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다. 그러나 자기 침대에 널브러진 케이는 베개에 머리를 파묻고 괴로워하고 있다. 어제저녁으로 먹었던 소고기 구이가 탈이 난 것이다. 오랜만에 좋아하는 소고기를 먹는다며 하얀 지방질까지 구워서 맛있게 먹더니만 몸이 그것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밤새 화장실만 들락거렸다는 케이의 얼굴이 백지장이다. 가지고 온 약을 챙겨먹기는 했다지만 힘들어 보인다. 옆 침대에서 자면서도 그것도 모르고 밤새 숙면을 취했으니 괜히 더 미안해진다.



어제의 파란 하늘과 아름다운 석양은 온 데 간데 사라지고 오늘은 비가 내리고 있다. 알베르게에서 우산을 빌려 쓰고 아픈 케이와 함께 12시 미사를 보러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간다.

우선 순례자 사무소를 찾아가서 산티아고 도착 도장과 완주 증명서인 콤포스텔라를 받는다. 순례자 여권에는 빈칸이 별로 남아있지 않아 이 여정이 끝을 향해 가고 있다는 걸 알려준다. 대여섯 명의 순례자가 줄을 서 있다. 성수기에는 몇 시간을 기다릴 정도로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비수기라 순례자가 적어 금방 끝난다. 

콤포스텔라를 받고 뿌듯한 마음으로 케이를 기다리고 있자니 낯익은 얼굴 하나가 순례자 사무실로 들어온다. 아픈 다리 때문에 동행하던 그룹과 헤어지고 사리아에서 머물면서 병원에 다니던 스페인 남자 빠꼬다. 버스를 타고 산티아고에 도착했다는 그는, 이번에는 운이 없었다며 다음에 다시 까미노를 걷겠다고 한다. 그것이 최선일 거라고 열심히 위로를 해주지만 그의 얼굴에는 가득한 씁쓸함을 감출 수는 없다. 다치기 전에는 언제나 웃는 얼굴에 활기가 넘치던 빠꼬라서 더욱 안타깝다. 누구나 한 달이라는 시간을 내기는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나도 활짝 웃어주지는 못한다.



순례자 사무소에서의 일을 다 마치고 드디어 오후 12시 순례자를 위한 미사를 보러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들어간다. 빈자리를 찾아 앉아 제단을 바라본다. 남미에서, 까미노에서 크고 작은 성당에 들락거리고 미사도 여러 번 참석했지만 마음은 최고로 긴장되고 경건하다. 오늘 발걸음을 멈추고 산티아고에 머무는 것은 바로 이 미사를 드리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까미노데산티아고를 완주한 순례자들을 위한 미사에 내가 그 순례자로 참석하는 영광을 누리는 것이다.

지난 천 년 간 순례자를 위한 미사를 집전하던 대성당에서 순례자의 자격으로 미사를 기다린다. 드디어 미사가 시작되고 순례자가 호명된다. “데 론세스바예스, 페레그리노, 꼬레아” 마이크에 울려 퍼지는 상기된 목소리는 금방 허공에 사라지지만 마음속에서는 수백번을 메아리친다. 이만큼 걸어오기까지 지나온 길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가고 성가대의 아름다운 합창이 감동을 더한다.



옆자리에는 스페인 엄마와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앉았다. 엄마는 애써 나를 외면하고 정면만 응시하는데 아이는 계속 나를 쳐다보고 있다. 눈이 마주치면 윙크도 해주고 자꾸 눈짓으로 말을 거니까 아이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리다가도 다시 나를 빤히 바라본다. 옆 사람과 평화의 인사를 하는 시간에 드디어 아이와 엄마의 따뜻한 손을 잡고 웃으며 인사를 나눈다.

미사의 마지막은 보타푸메이로(Botafumeiro)라는 대향로가 장식한다. 천장에 달린 밧줄의 끝에 커다란 향로가 달려있다. 성가대가 부르는 찬송가의 화음이 천상의 것인 듯 울려 퍼지고 있다. 예닐곱 명의 수사들이 중앙에 모여 긴 밧줄을 힘껏 당기면 연기를 피우는 향로는 진자가 되어 흡사 괘종시계의 추처럼 왕복운동을 시작한다. 하얀 연기는 금세 성당 안에 퍼진다. 중세 때 오랜 여행으로 지친 순례자들을 위해 향로에 향을 피워 평안을 주고 질병을 예방하기 위함으로 시작된 이 의식은 순례자를 위한 전통으로 남았다고 한다. 



성당을 가로지르는 향로의 흰 연기와 성가대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합창, 향로의 줄을 당기는 수사들의 몸놀림, 미사에 참석한 사람들의 미세한 흥분과 감격이 순례자의 마음에 전해진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뜨겁고 뭉클한 것이 복받쳐 오른다. 

노란 화살표를 따라 오직 산티아고를 향해 걸어왔다. 신은 그런 나를 축복해 주었다. 까미노는 물리적인 길이지만 걸어본 사람은 그것이 마음의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무려 800km라는 거리를 두 발로 걸어온 고행의 길이라는 표면적인 수사보다, 그 한 달 내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걷는 길이라는 표현이 맞다. 걷다 보면 길 위의 시간은 몇 배로 늘어나 있었다. 그렇게 길게 늘여진 시간도 돌이킬 수는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름답고 소중하다고 느낀 순간들이 영원할 수 없음을 실감했다. 이렇게 작고 보잘것없는 나지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건 이미 내 안에 있었다.

미사가 끝난다. 감동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채 문을 나서는데 문 앞에 구걸하는 여자 둘이 손을 벌리고 있다. 방금 충만한 미사를 드리고 신의 자비에 감사하고 나왔는데, 성당 문지방을 넘자마자 신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제법 사람이 많아진 광장 주변에서 누군가 “헤이 코리아!!”하며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포르토마린에서 하루까의 소식을 전해주었던 독일 남자다. 이 사람과는 하루까의 소식만 몇 마디 나누었을 뿐이지만,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서 까미노를 함께했던 그 누구라도 만나는 것은 감격스러운 일이다. 나의 까미노에서 만났던 기억 속의 순례자들은 어디쯤 있는 걸까?

알베르게로 돌아오는 길, 장을 보려고 할인매장을 찾아보니 오늘은 휴무일이다. 오늘이 일요일인 것을 생각도 못했다. 어쩐지 시내가 한산하다. 그나마 열려 있는 구멍가게에서 빵과 음료를 사서는 빗속을 걸어 알베르게로 돌아온다. 속이 좋지 않은 케이는 먹지 않는 것이 나을 것 같다며 그대로 침대에 눕는다. 동행이 아프니 마음이 불편하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하루 쉬는 오늘에서야 케이가 아프다는 사실이고, 어차피 비가 많이 와서 산티아고를 돌아보기 힘들다는 것도 위로 아닌 위로가 된다. 

빗방울이 점점 더 굵어지는 오후, 혼자 책 읽고 여행 정리하고 까미노 다음 일정을 챙겨본다. 시간이 흘러 벌써 까미노 이후를 생각해야 할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인터넷에 접속하니 페이스북을 통해 하루까가 전해온 메시지가 와 있다. 그녀는 내일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내일모레 버스를 타고 피니스테레에 간다고 일정을 전한다. 케이와 나는 내일 산티아고를 떠나 사흘을 더 걸어 피니스테레로 갈 생각이다. 서로 만나고 싶어 하지만 일정은 조금씩 어긋난다. 하루까도 그렇게 멀어지나 보다 생각하니 더욱 쓸쓸해진다. 

갑갑해서 우산을 빌려 밖으로 나가 보지만 어두워진 하늘에서 쏟아지는 많은 양의 비가 의욕을 상실하게 한다. 케이가 여전히 창백한 얼굴로 누워있는 방으로 다시 들어와 젖은 옷을 걸어 놓고 침대에 멍하니 걸터앉아 시간을 보낸다. 



갈리시아 지방으로 들어오고 나서 며칠 동안 비가 왔는데, 산티아고에 도착한 어제는 맑은 하늘이 반겨주었다. 덕분에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노을을 만끽할 수 있었다. 까미노에서 단 하루 쉬어가는 오늘 케이가 아픈 것도 불행 중 다행이다. 가장 중요한 대성당 미사에 다녀올 즈음에는 소강상태이던 빗방울은 오후가 되니 점점 더 굵어진다. 산티아고는 모든 것을 다해 나를 환영해 준 것이다. 이만큼 드라마틱할 수 있을까?  

인도에서 남미로, 남미에서 스페인으로 대륙을 넘나드는 여행길에서 막무가내로 들어선 까미노였다. 이 여정에서 “순례자”라는 단어를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도 못했다. 그토록 힘들던 발걸음, 그렇게도 풍성하던 시간, 그리도 단순한 일상을 이제는 즐기게 되었다. 살다 보면 어느 날 문득 까미노가 그리워질 것이다. 나는 일생의 한 번 이 길을 걷는 영광을 맛본 게 아니다. 언젠가는 이 길 위에 다시 서기를 바라게 되었다. 

빗속에서 밤이 깊어간다. 폭우가 쏟아진다 해도 내일은 피니스테레(Finisterre)로 가는 노란 화살표를 찾고 있을 것이다. 이 걸음은 아직 끝이 아니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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