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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차 순례 - 원주 대안리 공소, 음성군 감곡면 매괴성모순례지 성당

20170816(수) 41차 순례는 원주교구 대안리 공소, 그리고 청주교구의 감곡(옛 장호원성당) 매괴성모순례지 성당을 찾아간다. 두 곳은 비교적 교통이 불편한 곳이지만 섬강과 남한강 자전거길을 이용하면 당일에 순례가 가능하다.

07:00 청량리역에서 친구 3명과 함께 안동행 무궁화호에 자전거를 싣고 08:40 동화역에 하차 하여 원주 대안리공소로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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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역에서 내려 자전거를 정비하고 출발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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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코스 맵, 섬강과 남한강의 자전길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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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역에서 좌회전하여 보통로를 따라 가다 팔보길로 진입하여 사제교에서 우회전하여 7km를 달려서 첫번째 순례지 대안리공소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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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리 공소는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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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리공소 서쪽 마당에 있는 성모자상이 우리를 맞는데 쪽을지고 한복을 입고 있는 것이 다정하고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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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에 한강 지류(支流)를 건너 맞은 편 여인숙에서 점심을 들었다. 

거기에 대안리 교우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아침에 40리 길을 왔고, 오후에 갈 길은 가까운 30리이다. 

10리쯤 남겨 두고 아름다운 무지개와 함께 비가 내렸다. 

조제 신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11월12일, 성당에는 드브레 신부가 만든 신부 방이 딸려 있다. 축성해 달라고 했다. 

그것은 진짜 성당이기에 성당 축성 예절로 축성했다. 

성당은 성모님께 봉헌되었다. 미사를 드리고 35명에게 견진을 주었다. 성당 축성을 하기 위해 큰 잔칫상이 차려졌다”
(뮈텔 주교의 1910년 일기 중에서)

원주교구 대안리 공소(원주시 흥업면 대안 1리 659)의 초창기 역사를 알려주는 거의 유일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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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한옥성당 남쪽 마당을 발렌티노가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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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 동쪽 마당에 있는 종탑

1910년 11월에 공소 축복식을 가졌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공소가 설립된 연도는 좀 더 거슬러 올라간다.  

공소 신자들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구전에 따르면 대안리 공소는 1892년께 설립 되었고, 지금의 공소 건물은 1900-1906년 사이에 세워졌다. 

뮈텔 주교가 ‘진짜 성당’이라고 했을 만큼 당시로서는 성당이라고 할 만큼 훌륭하게 지어진 건물이었다. 

원주교구에서 1892년 이전에 설립된 본당은 풍수원 본당 밖에 없었다. 어째서 이 시골 마을에 그토록 일찍 공소가 설립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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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 내부를 들어가서 살펴본다.

 

초기 한국 교회사에 밝은 사람이라면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대안리 일대는 교우촌이었다. 

신자가 많은 곳에 성당이 세워지기 마련이다. 박해 시대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대안리 근처 덕가산에 숨어 살다가 신앙의 자유가 주어지자 지금의 공소가 있는 마을로 내려와 살면서 교우촌을 형성한 것이다.

 

건평 23평 규모의 공소 건물은 특이하게도 한옥 형태이다. 

문화재청은 2004년 12월 31일 대안리 공소를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40호로 지정하면서 “1900년대 초에 지어진 목조 가구식 한옥 성당 건축물로, 교회사적 측면에서 가치가 높다”고 그 선정 이유를 밝혔다. 공소 마당에 있는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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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완성도는 높지 않으나 지역 교회사적 측면에서 가치가 높으며, 건립 당시 원주 지역에 있던 공소 중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공소이다. 

1900년대 한옥 공소의 희소적 측면에서도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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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 벽면에 부착된 십자가의 길은 최근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데 소박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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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전실로 들어가면 성당 현관은 옛 한옥의 격자문으로 복원 되었다.
 

2009년 9월 9일 원동 성당에서 흥업 성당이 분리.신설되면서 대안리 공소는 흥업 성당 관할 공소가 되었다. 

2010년 11월 12일 대안리 공소는 공소 축복 100주년을 맞아 원주 교구장 김지석 주교와 신자들이 함께한 가운데 축하식을 갖고 공소 맞은편에 새로 건립한 교육관에 대한 축복식도 함께 가졌다. 

공소 교우는 물론 이곳을 찾는 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될 교육관은 연면적 132.7㎡로, 1층에 화장실과 창고, 2층에 교육실, 주방 등을 갖췄다. 

2012년에는 대안리 공소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처음으로 수리에 들어가기 위한 원주시의 지원이 결정되었고, 이듬해 원형을 유지한 전반적인 보수작업이 진행되었다. 

 

대안리 공소는 1910년 11월 12일 조선 교구장 뮈텔 주교에 의해 축성된 목조 가구식 한옥 형태의 성당 건물로 2004년 12월 31일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40호로 지정되었다. 구전에 의하면 대안리 공소는 1892년에 설립되었고, 현 공소 건물은 1900-1906년 사이에 완공되었다.
원주교구에서 1892년 이전에 설립된 본당은 풍수원 본당밖에 없을 정도로 유서 깊은 공소다. 이렇듯 일찍이 공소가 설립된 이유는 대안리 일대가 교우촌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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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 마당에서 바라본 공소 건물 전경, 우측에 공소 마당의 성모상이 있다.

공소의 오랜 역사를 보여주는 큰 나무와 한옥 형태의 공소 건물이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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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 서쪽에 있는 교육관 건물 옆 언덕에 예수성심상이 세워졌다. 2010년 공소 축복 100주년을 맞아 새로 건립하여 축복식을 가진 교육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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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 교육관 입구 

 

대안리 공소는 한국전쟁 때 인민군 막사로 사용됐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미군 구호물자를 나눠주는 배급처가 되기도 했다.
공소도 사람처럼 그동안 숱한 풍파를 겪었으며, 사람이 아프면 수술을 받듯 수차례 개보수 공사를 받았다.
공소예절이나 미사 때 50-60명이 참례하는 대안리 공소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상태였다.  

하지만 대안리 공소는 그 어느 공소보다도 단단한 결속력과 우애를 자랑한다. 여느 공소나 마찬가지로 젊은이가 거의 없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행사가 있으면 팔을 걷어붙이고 달려들어 자기 일처럼 해내는 끈끈한 유대감은 다른 데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대안리 공소의 자랑이다. 

최근에는 무농약, 오리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공소로 전국에 이름을 떨치고 있다. 

그래서 도시 본당과 교류가 활발할 뿐 아니라 농민주일 행사 등을 통해 외지 신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공소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공소는 10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풍상을 겪었다. 원래 초가지붕이었으나 1950년대에 초가를 걷어내고 기와를 얹었다. 

그러나 나무 기둥에 흙으로 벽을 바른 공소가 견디기에는 기와지붕이 너무 무거웠다. 그래서 1970년대 들어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꾸기도 했다. 

이에 앞서 1960년경에는 공소를 거의 두 배 가까이 확장했다. 창틀 다섯 개 중에서 입구 쪽 두 개에 해당하는 부분이 이 때 늘어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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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 교육관 전체 전경

 

대안리 공소 최고령 신자인 김종현 베네딕토 할아버지는 “예전에는 공소를 빙 둘러싼 담이 있었고, 마당에는 사제가 타고 오는 말을 묶어두는 마구간이 있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이곳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는 김 할아버지는 또 “돌아가신 아버지가 공소를 지을 당시 마당에서 얼쩡거리면 일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딴 데 가서 놀라고 쫓겨났던 어릴 적 추억을 말씀하신 적이 있다.”고 회고했다. 100여 년 전 과거와 현재를 잇는 위대한 기억의 끈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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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에도 대대적 보수가 있었다. 창틀을 전부 알루미늄으로 교체하고, 내부 흙벽에는 합판을 덧댔다가 문화재로써 가치가 없도록 복원 되었다고 비난이 일자 2016년에 다시 보수공사를 거쳐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재복원 되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실내는 마룻바닥이다. 한 때 의자를 놓기도 했었는데, 불편한 점이 더 많아 맨바닥에 그냥 앉는다고 한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니 전통 한옥이 그렇듯 건물 뼈대인 나무 기둥이 그대로 드러난다. 천장이 높아 여름에는 시원할 것 같다. 

제대 뒤편에는 제대와 연결된 사제 방이 따로 있다. 과거 1년에 두 번 판공성사를 주러 오는 사제가 묵는 곳이었다. 

지금은 한 달에 두 번 원동 본당 신부가 미사를 드리러 오는데, 예전처럼 자고 갈 일은 없어 제의실 역할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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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리공소를 둘러보고, 다시 동화역 앞으로 돌아와 왕건로로 진입하여 섬강 자전거도로를 따라 달리다가 안창대교를 건너 잠시 김제남 신도비를 둘러 본다.

신도비란 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후세에 전하고자 그의 묘 가까이에 세워 두는 것으로, 이 비는 조선시대 중기의 문신이자 선조임금의 장인이었던 김제남 (1562∼1613) 을 기리고 있으며, 1984년 6월 2일 강원도문화재자료 제21호로 지정되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올린 구조이다. 받침돌의 거북머리가 비를 바라보듯 뒤를 향하고 있어 재미있는 모습이며, 머릿돌에는 구름속을 헤치는 용의 모습이 가득 새겨 있다. 조선 인조 2년(1624)에 세운 비로, 왕의 명령으로 그의 사당을 지을 때 함께 세워두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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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남은 선조 18년(1585)사마시에 합격하여 관직활동을 시작하였고, 별시문과에 급제한 후에는 이조좌랑에까지 올랐다. 

둘째 딸이 선조의 둘째 비인 인목왕후로 채택되자 연흥부원군에 봉하여졌다. 광해군 5년(1613)에는 인목왕후의 아들인 영창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려 했다는 누명을 쓴 채 사약을 받고 세 아들과 함께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인조반정 후에야 명예가 회복되어 그를 위한 사당을 지었고, 이후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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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전길에서 다시 섬강 자전거길을 달리다 보니 이슬비가 뿌린다. 햇볕이 강하게 내리는 일기 보다는 라이딩 하기에는 좋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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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강과 섬감이 만나는 흥원창쉼터에 이르니 빗줄기는 그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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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간식을 하며 순례길 휴식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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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줄기 정면에 보이는 물길이 여주로부터 내려오는 남한강 줄기이고 오른쪽 물줄기가 섬강 줄기이다. 이곳이 남한강과 섬강의 합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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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 후 다시 달려서 부론, 남한강대교 동단에서 좌회전하여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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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식당의 선택은 100점이다. 낙지두부전골 메뉴인데 반찬들도 정갈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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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묶은 김치 맛이 일품이어서 추가로 시켰는데 두 그릇을 거의 다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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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메인 메뉴의 낙지가 냉동이라 신선도는 떨어지지만 새우를 넣고 끓여서 시원한 맛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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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점심 메뉴와 친절에 감사 드리며 다시 남한강대교를 건너 남단에서 좌회전하여 자전거길을 한참을 달려 하교말1길로 좌회전 하여 강천초등학교 앞을 지나서 오르막길을 올라 우측의 목미저수지 제방길로 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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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방길은 삼당마을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길인데 차량이 없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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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저수지 입구에서 휴식을 취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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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핸들바에 설치한 앱용 폰 위에 잠자리가 앉아 가을을 재촉한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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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율마을 앞을 지나서 삼담고개 업힐 정상에서 잠시 휴식을 하며 사진을 몇 컷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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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 라이딩도 하고 비록 업힐이 힘들지만 이제 다운힐을 생각하면 즐거운 ~~~순례 라이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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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당고개를 빠르게 내려와 이문육교를 거너서 가곡로로 진입하여 감곡성당을 향하여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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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곡 특산물 햇사레 복숭아를 길거리에서 판매하는 곳이 많다. 휴식 겸 잠시 복숭아 가게에 들렀다.

쥔장 할머니가 B급 맛을 보라고 복숭아 7개나 내어준다. 맛을 보니 과즙도 많고 당도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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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서 친구가 택배 주문도 하고, 다른 친구가 만원짜리 한 장을 건내니 사람 숫자 만큼 비닐 봉지에 별도로 쌓아준다.
인심 좋은 할머니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남기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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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순례의 마지막 장소 매괴성모성당 입구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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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을 올라 주차장에 이르니 큰 표석이 보인다. 매괴성모순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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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서 바라본 성당 건물 전경. 유서 깊은 충청북도의 모본당이자 매괴성모 순례지다. 옛날에는 장호원 성당이라고 불렀다.
 

장호원 지역은 본래 부엉골 본당 관할 지역에 들어 있었다. 

부엉골은 현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부평리(康川面 釜坪里)에 있던 산간 마을로, 1885년 예수 성심 신학교가 설립되면서 교우촌으로 조성되었고, 1887년 신학교가 서울 용산으로 이전한 뒤에도 얼마 동안 본당으로 남아 있었다. 

그 후 장호원 지역이 기록에 나타나는 것은 1894년 봄 부엉골 본당 신부로 부임한 임 가밀로(Camillus Bouillon, 任加彌) 신부 때였다. 

그는 이곳에 부임한 뒤 본당 위치가 적당치 않음을 깨닫고 장차 이를 이전할 장소를 물색하던 중 1896년 5월 장호원의 매산(?山) 언덕에 자리 잡고 있던 한옥을 매입하게 되었다. 

이 집은 본래 임오군란 때 민비(閔妃)가 일시 피신하기도 했던 민응식(閔應植)의 한옥으로 1895년 말 의병과 일본군의 전쟁 속에서 불타 버린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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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바로 위의 붉은 벽도 건물이 수녀원, 사제관, 성지사무실, 가밀로 영성의 집이 있다.

"묵주기도 1억단 봉헌에 차여 합시다"는 현수막이 눈길을 끈다. 1억단 ~ 대단하다.
 

감곡 성당은 2005년 2월말 사제관, 수녀원과 함께 ‘가밀로 영성의 집’을 신축하고 피정 및 순례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초대 주임인 임 가밀로 신부의 이름을 딴 ‘가밀로 영성의 집’ 완공으로 순례객 100여명의 숙박이 가능하게 됐다.

초대주임인 임 가밀로 신부의 이름을 따서 2005년 신축한 가밀로 영성의 집. 피정과 순례 프로그램을 위한 공간이다.

장봉훈 주교는 성모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 은총의 표징들로 성당 옆 매괴 성모광장이 일제강점기 중 신사참배 터로 지정되어 공사를 계획했으나 천둥과 소나기, 벼락으로 일제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고, 1950년 한국전쟁 중에 공산당원들이 성당 제대 중앙에 모셔진 매괴 성모상에 총을 쏘았으나 7군데 탄흔이 남는 가운데서도 파괴되지 않아 지금까지 성모칠고를 묵상하도록 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뮈텔(Mutel, 閔德孝) 주교의 허락을 얻어 이를 매입하게 된 임 가밀로 신부는 부엉골에 거처하면서 불탄 집을 수리하였으나 일이 여의치 않자 예정을 앞당겨 1896년 9월 17일 장호원으로의 본당 이전을 결행하였다. 이로써 부엉골 본당은 폐지되었다. 당시 장호원에는 신자수가 5-6명에 불과하였지만, 본당의 관할 지역은 매우 넓어 경기도 여주 · 이천, 충청도 단양 · 제천 · 충주 · 음성 · 괴산 · 진천 · 청주 · 보은 등이 여기에 속하였으며, 공소수 27개에 총 신자수는 1,300여 명에 이르고 있었다. 

장호원에 정착한 뒤 임 가밀로 신부는 우선 사제관과 그에 딸린 소성당 공사를 계속하여 그 해 12월 5일 이를 완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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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주임신부 임 가밀로(Camillus Bouillon) 신부가 자주 신자들에게 말 했다고 한다. "나는 여러분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감곡 성당은 바로 임가밀로 신부님을 하느님께서 사제로 선택하고 프랑스에서 이곳에 파견, 감곡본당 공동체에 성모께 대한 신심과 사랑이 전해져 150여명 성직자와 수도자를 배출한 성모신심이 면면히 흐르고 있는 성당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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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서 바라본 성당 전경

왜 매괴성모순례지 성당인가? 

'매괴'라는 용어는 원어 "로사리오(Rosario)"라는 말 즉, 장미꽃다발이라는 뜻인데 이 로사리오를 중국에서 번역한 중국식 한자어가 '매괴'다.  
조선시대에 천주교가 들어올 때에 매괴라는 용어도 그대로 들여왔고, 그래서 묵주를 '매괴', 묵주기도를 '매괴경'이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매괴성모순례지 성당이란 뜻은 로사리오(장미꽃다발)성모 순례 성당이란 뜻이다.

감곡 성당 아래쪽에는 지금도 1907년도에 설립한 당시 매괴학당이 오늘날도 매괴중.고등학교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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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호원 자체의 신자수가 증가하였고, 또 20여 개에 이르는 공소의 신자들도 증가하는 상태였으므로 성당 건립이 시급하였다. 

이에 그는 1903년 성당 신축을 시작하여 다음해 9월에 이를 완공하고, 그 해 10월 2일 뮈텔 주교의 집전으로 축성식을 갖게 되었다. 신축 성당의 규모는 한옥과 양옥의 절충식으로 총 80평에 달했다.

 

본당이 점차 정착되면서 임 가밀로 신부는 우선 교육 사업에 눈을 돌렸다. 

이에 그는 1907년 남학교인 매괴학당을 설립하고 이어 1912년에는 여학교를 설립했는데, 그중 여학교는 그 해 본당에 부임한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수녀들이 교육을 담당했다. 이들 학교는 이듬해 6년제 보통학교로 과정이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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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임 가밀로 신부는 조림 사업에 솔선수범하였으며, 1914년부터 매산(장미의 언덕)에서 성체거동을 시작하였고, 1922년에 학교 건물을 1차 개축하였다가 1936년 정식 인가를 받고 3층 교사로 증축하였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본당에서는 1930년 10월 7일에는 종각 높이가 130척이 넘는 현재의 고딕 연와조 성당을 신축하고, 1933년 본당 성가집을 편찬 간행하였다. 이렇듯 임 가밀로 신부와 신자들의 열성으로 본당의 교세도 크게 증가하여 1937년에는 총 신자수가 2,150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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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말기가 되면서 다른 본당들과 마찬가지로 장호원 본당도 어려움을 겪어야만 하였다. 

일본인들의 감시와 간섭이 계속되었고, 1942년에는 보좌 조인환(曺仁煥, 베드로) 신부가 사소한 일로 투옥되기까지 하였다. 

한편 일제 당국에서는 매산 언덕에 자기네들의 신사(神社)를 건립하려고 획책한 일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해 임 가밀로 신부가 일본인들의 적국인 프랑스 선교사라는 이유 때문에 용산 신학교에 연금되어야 했다. 

그 결과 장금구(莊金龜, 크리소스토모) 신부가 제2대 본당 주임으로 부임하게 되었고, 이어 다음해에는 유영근(劉榮根, 요한) 신부가 부임하여 해방을 맞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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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는 2006년 10월 7일 감곡 성당을 ‘매괴 성모 순례지’로 공식 선포했다. 

장봉훈 주교는 본당 주보인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을 맞아 교서를 발표하고 감곡 성당을 매괴 성모 순례지로 승인했다. 

성모 순례지 지정은 1991년 10월 7일 성모께 봉헌된 수원교구 남양 성모성지에 이어 한국 교회에서 두 번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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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가까이에서 본 성당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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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충청북도에서 최초로 건립된 고딕 양식의 성당 내부. 라틴 십자형의 평면 구성으로 명동 성당의 축소판 같은 인상을 준다.

 

신자들은 한일합병 당시 임 가밀로 신부가 제대 밑에 숨겨 두었던 태극기를 게양하고, 임 가밀로 신부를 맞이하여 광복의 기쁨을 맛보았다. 

임 가밀로 신부는 그 해 11월 제4대 주임으로 다시 부임하여 활동하다가 1947년 10월 선종하였고, 그 뒤를 이어 보좌로 활동하던 박고안(朴稿安, 프란치스코) 신부가 주임으로 임명되어 6.25 동란을 겪었으며, 그 후 1953년 3월에 매괴학교를 매괴상업학교로 변경하였다. 이 학교는 1966년에 여자 중학교를 병설한 뒤 학칙을 변경하여 매괴여자중 · 상업학교로 인가를 받았으나, 국민학교는 1972년에 폐교되었다.

 

제대 정면에 본당 주보인 매괴 성모상이 모셔져 있다. 

루르드 성지에서 제작되어 성당 봉헌 시 설치된 것으로 전쟁 중 인민군에 의해 7발의 총탄을 맞기도 했다.

1930년 전국에서 18번째, 충청북도에서는 최초로 건립된 감곡 성당은 1996년 1월 5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88호로 지정되었다. 

성당 건물은 프랑스 신부인 시잘레(Chizallet, 池士元)가 설계하고 중국인들이 공사를 담당했다. 길이 40m, 넓이 15m, 종탑 높이 36.5m의 고딕식 건축물로 명동 성당의 축소판 같은 인상을 준다. 

내부 천장은 원형 돔이고 중앙제대와 옆면에 4개의 소제대가 있으며, 라틴 십자형의 평면 구성은 국내 다른 옛 성당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화강암으로 된 2층 건물인 사제관은 성당이 건립된 4년 후인 1934년에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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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곡 본당은 충청북도(청주교구)의 모본당으로서 그 동안 많은 자본당을 낳게 되었다. 

1920년 고마리 본당(증평 본당의 전신), 1932년 청주 본당(수동 본당의 전신), 1945년 충주 본당, 1957년 무극 본당(현 금왕 본당), 1995년 앙성 본당, 2001년 생극 본당 등이 분할 설립되었으며, 다시 이로부터 여러 자본당들이 분리되었다. 뿐만 아니라 교회 묘지의 매입, 자선 활동, 신심 활동 등을 통하여 지역 사회 안에서 활동하는 공동체로 성장시켜 왔으며, 1986년 본당 설립 90주년을 맞이하여 성모 동산을 정비하고 임 가밀로 신부의 입상을 제작, 축성하는 동시에 “감곡 본당 90년사”를 편찬 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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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자상과 함께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88호로 지정된 성당 모습이 보인다.

 

제대 정면에는 한국전쟁 때 인민군에게 7발의 총탄을 맞았다는 본당 주보(主保)인 ‘매괴 성모상’이 설치되어 있다. 

프랑스의 루르드 성지에서 제작되어 1930년 성당 봉헌 당시 제대 중앙에 안치된 성모상은 7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건재했다. 

지금에 와서는 그 총탄 흔적을 통해 성모칠고(聖母七苦)를 기억하며, 주보로서 본당을 수호해주고 전쟁을 겪은 우리 겨레의 아픔에 동참하고자 한 성모의 마음을 깨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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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괴 박물관 앞마당에서 본 성당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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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자상이 매괴 박물관 앞에 있다.

 

감곡 성당은 2000년에 “감곡(매괴의 성모) 본당 100년사 · 화보집”을 발간하였다. 

본당사는 복음의 전래와 교구의 변모, 장호원(감곡) 본당의 설립과 성장, 감곡 본당과 메리놀 외방전교회, 한국인 성직자의 사목과 본당 설립 100주년 행사, 자료집과 뮈텔 주교일기에 나타난 감곡 본당, 공소현황 등으로 정리되어 있다. 또 화보집은 초창기부터 각 시기별로 본당 역대 주임사제와 수도자, 본당 출신 성직자와 수도자, 본당전교 · 단체활동, 성체현양대회, 교육 · 신심활동, 공소행사를 모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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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괴 박물관(구 사제관) 앞에 설치된 임 가밀로 신부 흉상. 

 

임 가밀로 신부는 51년간 감곡 성당에서 사랑의 선교사로 사목했다.

감곡 본당은 1896년 9월 17일 ‘장호원 본당’(長湖院本堂)이란 명칭으로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매괴(묵주기도)의 성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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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건립된 구 사제관. 화강암으로 된 2층 건물로 현재는 매괴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2002년 10월 10일에는 유물관(매괴 박물관)을 개관했다. 

이 유물관은 1934년 건축된 연면적 353평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석조 건물로 그동안 사제관으로 사용하던 것을 개조한 것이며, 성당이 최초 설립된 1896년 이후 전해 내려오는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1914년 첫 성체현양대회 당시 사용했던 성모성심기와 예수성심기, 일산(日傘), 제의를 비롯해 본당 신자들이 사용하던 교리서 “요리강령”(1910년본) 등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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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성심기(聖心旗)는 1914년 제1회 성체거동(聖體擧動)때와 매년 성모성심축일(聖母聖心祝日)에 종교행사용(宗敎行事用)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비단(본견(本絹))천에 동양자수(東洋刺繡)를 놓아 제작하였다. 앞면에는 예수성심(聖心)이 부조(浮彫)로 수를 놓았다. 크기는 가로 106㎝, 세로 173㎝이고 성체(聖體)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호하고 성체에 대한 신앙심을 고양한 것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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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감곡성당에 소장된 유물은 예수성심기 1점과 성모성심기 1점으로, 종교행사용 깃발 2점이다.
이 유물들은 일제강점기인 1914년 6월 제1회 성체거동 이래 천주교 행사의 일환으로 성체현양대회와 예수성심대축일, 예수성심성월에 사용하던 것이다. 이 유물들은 1896년에 감곡성당을 설립한 임 가밀로(한국명 임가미(任加彌)) 신부가 1913년부터 1914년에 걸쳐 이 성당의 한국인 수녀에게 제작하게 한 것으로, 2002년 12월 6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219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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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聖母) 성심기(聖心旗)도 1914년 제1회 성체거동때와 매년 성모성심축일에 종교행사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비단(본견)천에 동양자수를 놓아 제작하였다. 크기는 가로 106㎝, 세로 177㎝이고 성체 속에 현존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호하고 성체에 대한 신앙심을 고양한 것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은 아니다.  

 

<예수 성심기>, <성모 성심기>는 규모나 격식이 당당하며 제작 수법이 독특하고 보존상태도 비교적 무난하다. 예수나 성모상을 묘사할 때 필요한 소재나 기법 그리고 그 주변을 장식하는 자수(刺繡)의 도안 등 외국에서 직접 들여오거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요소 때문에 일견 이국적(異國的)이고 익숙하지 않은 면이 있다. 이 점은 오히려 국내의 필요에 따라 외국으로부터 미술의 형식이나 양식이 들어올 때 어떤 양상을 보이는가를 알 수 있는 예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유물을 비교할 만한 천주교 유물이 알려지지 않고, 특히 이런 유형의 섬유공예품의 문화재 지정 전례가 없는 상황이지만 작품 자체의 품격이 높고 제작 기법이 특이하다. 

 

이 두 개의 수기(手旗)는 1914년 6월 성체거동행사에 사용할 목적으로 제작되었으므로 1913년부터 1914년 봄까지 제작되었다고 보며, 제작기간이 확실하여 가치가 있다. 1912년 10월 매괴여학교 개교 이후 이 학교에 부임한 이안나(속명 마드렌)수녀가 여학생들을 지도하여 수기를 제작하여 1914년 성체거동행사때 처음 사용한 20세기초 종교용 자수품(刺繡品)이며, 불교용품은 그 예가 많아도 천주교용품으로는 그 예가 희귀하다. 이 두 성심기는 현재도 매년 10월 감곡천주교회에 열리는 청주교구(淸州敎區) 성체대회(聖體大會)시 사용하고 있다. 

 

예수 성심기와 성모 성심기는 카톨릭 종교행사의 일환인 성체거동대회에 사용되는 깃발 형태로서 형태, 규모, 양식 등이 특이하며 한국 천주교 초기 카톨릭 종교 연구 및 자수법 연구에 희귀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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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괴성당에서 배출된 신부님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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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님도 많이 배출된 매괴성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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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괴 박물관을 나와서 십자가의 길을 따라 성모광장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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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괴 성모 순례지 선포 이후 감곡 성당은 전 공동체가 성역화에 힘써 가밀로 영성의 집 앞에 임 가밀로 신부 동상을 세우고, 

2008년 9월 14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에 매산 정상의 매괴 산상에 15m 높이의 대형 십자가와 제대, 성모상과 사도 요한상, 임 가밀로 신부 성체강복상 등을 새로 마련하여 축복식을 갖고 세계적인 성모 순례지로 도약할 채비를 갖췄다. 이로써 1896년 부임하여 50년간 성체 신심과 성모 신심을 두 축으로 해서 공동체를 이끈 임 가밀로 신부의 기도가 그 열매를 맺고 있다. 

그리고 2009년 4월 20일 ‘로마 성모 대성전(Saint Mary Major Basilica)과 특별한 영적 유대로 결합된 성당 및 순례지’로 지정되었다.

 

2014년은 1914년 가밀로 신부 주도로 서울과 대구대목구 사제 25명 중 12명이 감곡에 모여 국내 첫 성체현양대회를 거행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이를 기념해 10월 9일 감곡 성당과 매괴 성모동산 일원에서 감곡 성체현양대회 100주년 감사미사를 봉헌하였다. 

그리고 이 미사 중에 프랑스 루르드 성지의 마사비엘 동굴을 그대로 재현할 성모동굴 부지 축복식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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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성모 광장으로 봉헌된 매산 중턱. 매괴 동산 입구에서 광장까지 묵주기도 길을 따라 올라왔다.

성모 광장에서 십자가의 길을 따라 매산 정상에 오르면 매괴 산상이 조성되어 있다.
2008년 축성한 대형 십자가와 임 가밀로 신부 성체강복상 등이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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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광장 제대 쪽에서 바라본 광장과 둘레의 14처 십자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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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광장에서 내려와 성당 동쪽에 세워진 예수님 십자고상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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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에는 들어갔다나온 매괴 박굴관이다. 이곳에서 순례 확인 스템프를 찍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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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뒤쪽으로 돌아나오니 사제관 입구로 들어가는 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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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래된 역사적인 사진이다. 본당건립 40주년기념을 기념하며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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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4월30일파리외방전교회 총장신부님 방문기념 사진도 귀중한 자료 같다.

 

오늘은 유서 깊고 유난히 성모님의 은총이 깃든 특별한 순례지 감곡성당을 둘러보게 된 것이 너무 기쁘다.
매괴 박물관에 비치된 봉헌함에 작은 정성을 봉헌하고 안전한 성지순례를 기원하며 성모님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 은총의 표징들을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 성당 옆 매괴 성모광장은 일제강점기 중 신사참배터로 지정돼 공사를 계획했으나 임가밀로 신부님이 무염시태 기적의 패를 묻고 "이 공사를 중단하게 해주시면 이곳을 성모님께 봉헌 하겠습니다" 라고 기도를 하였는데, 묘하게도 공사중에 천둥과 소나기, 벼락으로 일제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고,
 
△ 1950년 한국전쟁 중에는 공산당원들이 성당 제대 중앙에 모셔진 매괴 성모상에 총을 쏘았으나 7군데 탄흔이 남는 가운데서도 파괴되지 않아 지금까지 성모칠고를 묵상케하고 있다는 점.

△ 초대 주임 임 가밀로(Camillus Bouillon, 어느 문서에는 부이용이란 이름으로 표기됨) 신부를 하느님께서 사제로 선택하고 감곡성당에 파견, 감곡본당 공동체에 성모께 대한 신심과 사랑이 전해져 150여명의 성직자와 수도자 배출을 통해 성모신심이 오늘에까지 면면히 흐르고 있다는 점 등을 깊이 묵상하게 하는 뜻 깊은 순례길이었다.

 

함께 동행한 정발렌티노, 정글레고리오, 이계인 세 친구에게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기도 드린다. 

 

※ 상단 첨부 : 41차_대안리공소_감곡매괴성모순례지성당_20170816_65km.gpx 

※ 경로 지도 보기 : https://connect.garmin.com/modern/activity/1919617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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