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차 제주 새미은총의 동산, 용수성지, 대정 정난주 마리아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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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차 제주 새미은총의 동산, 용수성지, 대정 정난주 마리아묘

지난 2017.1.7 토 첫 주말에 약현성당, 당고개 순교성지에서 시작된 자전거 성지순례는 이제 제주도를 마지막으로 3박4일간의 원정으로 대미를 장식하게 된다. 20170926(화) 제주도행 06:10 비행기에 자전거 휴대 탑승을 위해 자전거 포장으로부터 마음가짐을 새롭게 한다.
이번 원정 순례를 통하여 주교회의에서 발행한 성지순례 책자에 기록된 111곳의 성지는 물론, 2014년 시복식 이후 가톨릭성지 홈페이지에 추가된 80곳을 포함하여 모두 181곳의 성지 및 사적지를 자전거로 순례 후에 In-Out 교통편과 자전거 경로 gpx 파일을 최종 정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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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포장은 하드박스 포장, 휴대용 소프트 케리어 포장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드박싱은 자전거샵(15,000원 내외)이나 공항 포장센터(30,000내외)에 의뢰 하는 방법이 있지만, 나와 정발렌티노는 소프트 케리어백을 이용하여 각자 집에서 포장을 한다.

위 사진과 같은 천으로 되어 있는 소프트 포장을 할 때는 접이식 자전거를 접어 백에 넣고 핸들을 스탬에서 분리시켜 접어서 프레임에 묶고, 케리어백 상하좌우에 두꺼운 박스를 넣어서 포터들이 화물을 이동시, 비행기와 화물차량에 적재를 할 때에 기어나 부품들이 손상을 입지 않도록 잘 포장을 해주어야 한다. 특히 앞뒤 드레일러와 스프라켓과 스템, 페달과 같이 튀어나온 부분은 에어포장지나 스트로폼으로 감사고 테이핑을 잘 해주어야 한다.
 

또한 항공기 수화물 규정에 맞춰 국내 15kg(해외 20~30kg)이내로 헬멧, 새들백, 핸들바백 ... 등과 같은 여행물품은 함께 포장 하는 것이 간편하다.

주의 할 내용은 항공기 운송 규정에 따라 보조배터리, 유류 액체 등은 위탁 수화물 패킹에 함께 넣게 되면 공항 화물 검색대에서 발견되어 포장을 다시 풀어서 재포장하는 번거로움이 발생 할 수 있으며, 반드시 타이어의 공기압은 50% 이하로 에어를 빼어내야 비행기가 높은 고도 상태에서 기압 때문에 튜브가 터지는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 할 수 있다.

 

통상 공항버스를 이용하면 자전거를 트렁크에 넣고 타기 때문에 편리한데 오늘 제주행 여객기 이륙 시간이 06:10이라서 첫 버스는 비행기 탑승 시간을 맞출 수가 없어서 하루 전에 출발점 가까이 차고지가 있는 공항콜벤을 미리 예약하여 03:30에 아파트 경비실 입구에서 탑승 후, 광화문으로 이동, 정발렌티노와 자전거를 싣고, 김포공항에 도착하니 05:20, 시간여유가 충분했다. 또 다른 친구 유도로테아는 승용차를 공항 주차장(1일 10,000원)에 세워두고 제주도 순례를 마치고 다시 김포공항으로 복귀 할 예정이다.
참고로 저가 항공사 여객기를 이용하는 경우 자전거 수하물 위탁은 10,000원의 별도 요금을 공항에서 지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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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50분 제주공항 도착해서 항공사 직원에게서 자전거를 개별적으로 인수 받아 포장을 해체하여 재조립을 한다.

동행한 유도로테아는 자전거샵에 의뢰하여 하드포장을 해서 왔는데 아직 자전거 조립(앞.뒤 휠 및 페달 장착, 싯포스트 높이 조절)을 직접 할 수 없고, 공구도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그의 자전거를 셋팅하고 나서야 내 자전거를 셋팅을 하고 나니 1시간이 약간 더 소요 되었다.

공항 터미널 엘리베이터를 이용 4층 식당가로 올라가서 우거지 갈비탕으로 아침식사를 하는데 맛이 짜고 맵다.

 

식사를 마친 후 공항버스 800번 버스정류장으로 내려와 버스 트렁크에 자전거 3대를 싣고, 상창사거리에서 하차하여 첫번째 순례지인 새미은총의 동산을 둘러보고, 용수 김대건신부 표착지, 대정 정난주 마리아묘를 차례로 순례 후 위미항에 있는 친구의 별장주택에서 1박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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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순례지 이시돌 근처에서 하차가 가능하면 좋은데 아쉽게도 공항버스의 첫번째 정류소가 상창교차로여서 다시 11km 정도를 업힐을 하여야만 새미은총의 동산에 이를 수 있다. 만일 공항에서부터 자전거로 주행 한다면 26km 정도를 달려야 하고, 계속적인 업힐 구간이어서 약 2~3시간 가량을 소모해야 한다.

제주 순례의 또 다른 고려 사항은 그 날의 바람 방향이다. 제주도는 바람이 강하기 때문에 항상 코스맵을 설계 할 때는 시계방향과 시계반대 방향, 두 방향 GPX 파일을 동시에 설계하여 당일 바람의 방향에 따라 어느 쪽으로 출발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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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창교차로에서 1115번 도로 업힐을 하며 올라가다 신록남로로 이시돌목장을 처다보고 우회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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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미은총의 동산으로 안내판을 따라 좌회전 하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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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는 세 사람의 순례자 동상이 나온다. 예수님을 초대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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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축성한 삼위일체성전 부지축성 표지판이 좌측 언덕에 보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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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아래에 삼위일체성당 건물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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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건물 앞으로 내려가니 2001년에 준공한 삼위일체 대성당 표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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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옥상 위에 예수성심상이 보이고, 나흘전에 이시돌길 선포식 및 개장을 축하 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은총의 동산과 삼뫼소 중간에는 2001년 10월 14일 봉헌된 삼위일체 대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대성당의 전체 모양은 아일랜드식의 독특한 켈틱 십자가 형태를 취하고 있다.
십자가 아래쪽의 대성당은 약 3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고, 십자가 형태의 옥상은 중심에 제단을 두고 사면에 의자를 놓아 약 5천여 명이 함께 야외미사를 거행하거나 각종 공연 및 행사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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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의 야외 제대와 행사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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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내부로 들어가 성체조배를 하고 오늘도 무사 안전한 순례길을 지향하고 유도로테아와 함께 기도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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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제대와 십자고상의 모습, 하느님을 향한 기도와 묵상의 장소이고, 많은 사람이 함께 미사를 드릴 수 있는 규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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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벽면의 십자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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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이 매우 크다. 성전 뒤쪽 좌우 벽면에 성김대건 안드레아상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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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소화데레사상이 벽면에 부착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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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미 은총의 동산 입구

3위일체 성당을 나와 우회전을 하여 100m 정도를 달리니 우측에 은총의 동산 입구가 있고 맞은편에는 주차장과 성이시돌센터가 보인다. ‘삼뫼소’라고도 부르는데 세 개의 오름(봉우리)으로 둘러싸인 못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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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면적이 8만평에 달하는 이곳은 신자들이 언제 어디서나 찾아와 함께 기도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는 제주교구 사제들의 뜻에 따라 성 이시돌 목장을 세운 임피제 신부가 1992년부터 목장 뒤를 순례지로 본격 개발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제주교구장 김창렬 주교는 이 삼뫼소를 ‘은총의 동산’으로 명명하고 교구의 대표적인 순례지로 지정했다. 그리고 매달 첫 토요일 성모신심 미사와 셋째 목요일 성체와 가정신심 미사를 정기적으로 봉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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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미 은총의 동산에는 예수님의 공생활 중 12개의 주요 사건을 테마로 한 예수님 생애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위 사진은 오병이어 동상. 

 

은총의 동산은 1986년부터 조성된 묵주기도의 호수(삼뫼소)를 중심으로 400미터가 넘는 둘레에 돌과 나무를 이용해 15단 묵주 형태를 이루고 있다. 연못 앞 십자가에서 사도신경을 바친 후 연못을 한 바퀴 돌면서 묵주기도를 바친 후에는 자연스럽게 루르드의 성모동굴을 본뜬 동굴 앞으로 나오게 된다. 동굴에는 성모상과 제대가 설치되어 있고 그 앞쪽으로 4-5백 명이 앉을 수 있는 의자를 놓아 야외미사를 봉헌할 수 있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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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성찬례를 제정하시는 모습이다.

 

2009년 5월 15일 제주교구는 성 이시돌 목장 내 새미 은총의 동산 및 십자가의 길 축복식을 가졌다.
그러면서 출처가 명확하지 않은 ‘삼뫼소’란 명칭을 역사적 사료를 근거로 ‘새미 은총의 동산’으로 변경하였다. 새미는 주님의 은총과 순례객의 기도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 영문으로는 SAEMI로 표기해 Sanctus(거룩한), Anima(영혼), Evangelium(복음), Meditator(중개자), Imago Dei(하느님의 모상)라는 뜻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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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십자가 오른쪽으로 작은 동산이 있는데, 동산 위에는 7성사의 이름을 새긴 돌이 있고, 그곳으로 오르는 길에는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칠 수 있도록 14처가 준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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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미 동굴과 야외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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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미소의 십자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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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수도원 성당을 건립하여 금악 공소 신자들과 함께 사용하면서 다음해 6월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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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 서쪽 주변의 이시돌 목장. 성 이시돌 목장 내에는 1972년에 설립된 성 클라라 수도회 제주 수도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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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길을 봉헌한 분과 가족들 이름이 새겨져 있다. 고마운 분들 주님의 은총을 많이 받으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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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객들의 십자가의 길 기도 중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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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신자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많이 찾는 새미 은총의 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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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비린스 미로 마당을 지나 동산을 나와 성이시돌센터 건물 현관에 있는 순례확인 스탬프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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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돌길 안내 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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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판에 이시돌의 연혁이 게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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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미 은총의 동산에 대한 안내판도 잘 정리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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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돌센터를 뒤로 하고 두 번째 순례지인 성 김대건아드레아 신부 표착 기념성당을 향하여 용금로를 달려 다운힐을 꾸준히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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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수길로 접어들어 용수성지에 이르니 기념성당 건물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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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입구에서 바라본 성 김대건아드레아 신부 표착 기념성당 외부모습.


성 김대건 신부가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고 귀국하다 표착했던 용수 포구에 건립된 기념성당이다. 

제주도 한경면 용수리 포구는 한국인 최초의 신부이며 103위 순교성인들의 첫 머리를 장식하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가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고 서해 바다로 귀국하는 길에 풍랑을 만나 표착했던 곳이다.
부제 때 일시 귀국했던 김대건은 선박을 구입하여 ‘라파엘호’라 명명하고 1845년 4월 30일 신자 11명과 함께 제물포항(현 인천항)을 떠나 상해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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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호를 연상케 하는 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 기념관 외관. 성전 우측에는 제주표착기념관이 배 모양으로 설계되어 아름답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17일 상해 금가항(金家港) 성당에서 조선교구 제3대 교구장인 페레올(Ferreol) 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았다.
8월 31일 조선 입국을 위해 김대건 신부는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Daveluy) 신부를 모시고 함께 갔던 신자들과 함께 라파엘호를 타고 상해항을 떠났다.  출항한 지 3일 만에 서해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9월 28일 제주도 용수리 포구에 표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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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내부 모습
 

여기서 2∼3일 정도 배를 수리하고 음식 등을 준비하여 10월 1일 포구를 떠난 김대건 신부 일행은 10월 12일 금강 하류의 나바위에 무사히 도착했다.
제주교구는 1999년 제주 선교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학계의 권위 있는 전문가에게 의뢰하여 라파엘호의 구조를 확인하고 150여 년 전의 선형을 복원하였다(길이 13.5, 폭 4.8, 깊이 2.1미터). 그리고 그 해 9월 상해를 출발해 제주에 도착하는 해상 성지순례를 계획하였으나 중국 정부의 비협조로 상해에 배를 내리지 못해 공해상에서부터 제주까지 라파엘호를 타고 항해한 후 9월 19일 김대건 신부가 표착했던 용수리 포구에 입항했다. 제주교구 김창렬 주교는 이날 용수리 포구를 성지로 선포하고 성지 조성에 신자들의 동참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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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에 전시 되어 있는 박해시대 형구들.

 

또한 2008년 9월 20일에는 기념관 바로 옆에 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기념성당을 건립하여 봉헌식을 가졌다.
기념성당의 정면은 성 김대건 신부가 사제품을 받은 중국 상하이의 금가항 성당을 재현했으며, 지붕은 거센 파도와 라파엘호를 형상화했다.
또 등대 모양의 종탑은 어둠속에서 빛을 비춰 밝은 곳으로 인도하는 가톨릭교회와 김대건 신부의 선교의지를 상징하고 있다.
라파엘호 옆에는 원죄 없이 잉태하신 성모 마리아상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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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독한 형벌을 가했던 형구들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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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에 순례확인 스탬프가 비치되어 있고 ~ 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 기념관 내부의 전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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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에는 연대별로 한국 천주교 역사가 전시되어 있다.  


항해를 마친 라파엘호는 인근의 신창 성당 마당으로 옮겨 보존되다가 2006년 11월 1일 김대건 신부 일행의 제주도 표착과 제주도에서 한국인 첫 사제의 첫 미사가 거행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된 ‘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기념관’ 앞 잔디광장으로 옮겨 전시되고 있다.
용수리 포구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2층 콘크리트 구조로 세워진 기념관 외형은 라파엘호의 형태를 본떠 건립되었고, 내부에는 성 김대건 신부 유해 공경실과 영상실, 전시실 등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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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제주의 사도 김기량 펠릭스베드로 복자에 대한 기록도 게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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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으로 올라가서 기념관전경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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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기념관 앞 야외광장과 용수포구 앞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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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 동쪽에 있는 복원된 라파엘호 모습.
 

2009년 10월 31일 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기념성당에서 용수 공소 설립 60주년 기념미사가 봉헌되었다.
1949년 9월 1일 제주 본당(현 중앙 주교좌본당) 소속으로 설립된 용수 공소는 1952년 6월 29일 신창 본당 관할 공소가 되었고, 2008년 용수 성지 내에 기념성당이 건립되면서 그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제주교구는 2010년 9월 25일 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 165주년을 기념하여 잔디광장에 김대건 신부 조각상을 세우고 축복식을 거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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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호를 타고 항해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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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기념관을 뒤로 하고 한경해안로- 용고로- 고산로로 진입하여, 점심 식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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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조그만 가게인데 이름은 "키친놀", 메뉴는 딱 두 가지이다. 우리는 함박스테이크로 주문했다.1fb057189655b6b133d73f9838759a31_1506847333_7806.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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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장에게 기타 연주를 부탁 했드니 우리 나이에 좋아할만한 포크송을 연주해주고, 리퀘스트도 받아서 함께 노래도 부른다.

수원이 집인데 이곳이 고향인 부인을 여행을 왔다가 만나서 결혼까지 하게 되었단다. 참 친절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멋진 젊은이들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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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현관에서 기념사진을 함께 찍고 ~주인장에게 감사 인사를 덕담을 하고 다시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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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육거리 교차로 옆에 있는 고산성당을 잠깐 들러서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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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성당 현관으로 올라가는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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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현관에는 파티마성모 발현 100주년 기념 순례 중인 파티마성모상이 9월26일~27일 제주 중앙성당에 오신다고 안내되어 있다. 아마도 내일 우리가 중앙성당에서 파티마성모상을 맞이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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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성당 내부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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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성당을 나와서 칠전로를 달려 오늘의 마지막 순례지 대정 정난정 마리아묘를 향해 페달링을 재촉하다가 대형버거로 유명 하다고 하는 황금륭에 들러서 맛을 보자는 정발렌티노의 제안에 따라 잠시 쉬었다 간다. 가성비가 좋지는 않지만 사과와 양파 셀러드를 시원하게 넣어서 버거 맛은 괜찮았다.

1/2 쪽만 구매하여 그 반은 버거집에서 먹고 나머지는 포장해서 가지고 가다가 안덕 언덕길을 오르다가 쉬는 시간에 나 혼자 다먹어 치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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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마지막 성지 대정성지 표지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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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로- 보성상로를 달려서 추사로 247번길을 만나 우회전해서 정남주마리아묘에 이르니 묘지 정문에 왼쪽에 한복을 입은 성모자상이 우리를 맞이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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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 입구에 들어가서 뒤쪽을 향하여 바라본 전경, 진입로 좌우에 이국적인 야자나무가 길게 늘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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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우측에는 스탬프함이 설치되어 있다. 순례확인 스탬프를 찍고 묘지 안쪽으로 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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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의 증인 정난주 마리아묘비.  

지금은 천혜의 관광지로 봄가을이면 신혼의 단내가 온 섬을 물들이는 남녘의 제주.
세계 어느 나라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빼어난 풍광과 온화한 날씨로 찾는 이로 하여금 이국적인 정취마저 느끼게 하는 섬 제주가 조선 시대에는 중죄인들을 세상에서 격리시키는 유배지였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듯도 싶다.
 
유명한 백서(帛書) 사건으로 순교한 황사영의 부인 정난주(丁蘭珠, 본명 命連) 마리아, 다산 정약용의 맏형 정약현(丁若鉉)의 딸이기도 한 그녀가 남편을 잃은 뒤 두 살 난 아들을 데리고 하염없이 뱃길을 가야 했던 곳이 바로 제주이다.
제주가 맞이한 첫 번째 신앙인으로 기록되는 정난주는 제주도 남제주군 대정(大靜)에서 관비(官婢)가 되어 천수를 다한 뒤 모슬포(慕瑟浦) 뒷산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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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 성지의 정난주 마리아 묘. 묘 뒤에는 대형 십자고상이 세워져 있다.

당당한 모습으로 천주를 증거하고 목숨을 바친 남편은 비록 천상의 영복을 누릴 것을 의심치 않았기에 영광이요 환희이기도 했지만 인간적으로는 엄청난 고통과 실의에 빠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거기에 겨우 두 살 난 젖먹이 아들 경한(景漢)을 데리고 떠나는 유배의 길은 너무나도 외롭고 고통스런 일이었다.
죄인으로 제주 땅을 밟은 뒤 자신은 물론 아들마저 죄인의 자식으로 평생을 멸시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차마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백서 사건으로 순교한 황사영의 부인으로 제주에서 유배생활을 하다 선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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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 둘레에 설치된 십자가의 길. 


유배 길에서 궁리를 거듭하던 정난주는 뱃사공에게 뇌물을 주어 매수하고 사공은 다시 두 명의 나졸에게 술을 먹여 역시 그들을 매수한 뒤 젖먹이를 추자도 예초리(禮草里) 서남단 언덕 위에 갯바위에 내려놓는 데 성공했다.
나졸들은 뱃길에서 아이가 죽어 수장(水葬)했노라고 보고함으로써 이 일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추자도에 남은 경한은 오씨(吳氏) 성을 가진 어부의 손에 의해 하추자도 예초리에서 장성하게 되는데 그 후손이 아직도 추자도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해 오는 이야기로는 경한이 추자도에 떨어뜨려졌을 때 그가 입고 있던 저고리 동정에서 나온 기록에 의해 그가 바로 황경한임을 알게 됐고 오씨의 아들로 키워졌기에 아직도 추자도에서는 오씨와 황씨가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리며 어머니 정씨는 끝도 없이 눈물을 흘렸을 것이 틀림없기에 그의 발자취를 뒤쫓는 순례자의 눈가도 뜨거워지게 된다.
혈혈단신으로 제주목 관비(官婢)로 신분이 추락하게 된 정씨는 제주의 거친 바람결만큼이나 모진 시련을 신앙과 인내로 이겨 냈다.
뿐만 아니라 풍부한 교양과 뛰어난 학식 그리고 굳건하고 깊은 믿음의 덕으로 주위 사람들의 칭송을 한 몸에 받았다.
그래서 그는 비록 노비의 신분이었음에도 ‘한양 할머니'라고 불리며 이웃의 사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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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37년간을 정씨는 오직 신앙에 의지해 살아가다가 1838년 음력 2월 병환으로 숨을 거두고 이웃들은 그 유해를 바로 이곳 모슬포 뒷산에 묻었다.
비록 그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 삶 전체가 순교자의 생애를 방불케 하는 굳건한 신앙의 증거로 가득했기에 후손들은 그를 순교자의 반열에 올리고 있다. 1994년 9월 5일 순교자 현양 대회 강론에서 김창렬 주교는 이렇게 말했다.
 
“신앙의 탓으로 이 고장에 유배된 유일한 증거자인 정 마리아 난주님을 순교자라고 말씀드리는 것에 대해 놀라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우리 보편 교회도 피 흘려 순교하지 않은 이들 중에서 어떤 분들은 순교자로 공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 초, 교회사가 김구정과 김병준 신부는 수소문 끝에 정난주의 무덤을 찾아낼 수 있었다.
김씨 집안에서 대를 이어가며 무덤을 돌보아 왔기 때문이다.
이 무덤은 1977년에 순교자 묘역으로 단장되었다가 1994년 제주 신자들의 염원을 담은 ‘대정 성지’로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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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상으로 정난주 마리아는 순교자 정약종(아우구스티노)의 조카정하상(바오로) 성인의 누님이 된다.
18세가 되던 1790년 무렵 16세의 황사영과 혼인을 한 마리아는 서울 아현의 시집에서 생활하였다.
바로 그 해 진사시에 합격한 황사영은 이승훈, 정약종 등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한 뒤 과거를 포기하고 교회 일을 도왔으며, 마리아는 이러한 남편을 도와 아현의 집을 신앙 공동체로 가꾸는 데 노력하였다.
 
마리아는 혼인 초기에 자주 자식을 잃은 것 같다. 그러다가 1800년에 아들 경한(景漢)을 낳게 되었으나, 이듬해 신유박해가 일어나면서 모든 가족이 수난을 겪지 않으면 안 되었다. 황사영이 교회 재건을 위해 제천 배론으로 몸을 숨긴 뒤, 1801년 2월 10일경 아현의 가족들은 모두 체포되어 갖은 문초를 받게 되었다. 이 때 마리아는 특히 어린 경한이를 옥에서 키워야 했으므로 육정에서 오는 또 다른 고통까지 감내해야만 하였다.
황사영은 배론에서 체포되어 11월 5일(양력 12월 10일)에 능지처사의 판결을 받았다.  

이어 11월 7일에는 마리아와 남은 가족들에게도 연좌죄가 적용되어 유배형이 내려졌으며, 시어머니 이윤혜는 경상도 거제부로, 마리아는 전라도 제주목 대정현의 노비로 유배되었다. 다행히도 어린 경한은 두 살이었던 까닭에 역적의 아들에게 적용되는 형률을 받지 않고 전라도 영암군 추자도의 노비로 유배되었다. 이들이 서울을 떠나 유배지로 향한 것은 11월 8일이었다.
 
마리아와 어린 경한의 유배지인 제주도와 추자도는 조선의 유배지 중에서도 서울 한양에서 가장 먼 곳이다.
이름하여 유배 3천 리. 훗날의 전승에 따르면, '마리아는 유배형을 받은 뒤부터 어린 경한이만은 일생을 노비로 살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여 사공과 나졸들을 구슬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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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이야기를 뒤로 하고 추사로를 따라 달리다 잠시 추사유배지에 들러 기념관을 둘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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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서로-일주동로를 달리는데 비가 뿌리기 시작한다.
내일 순례길과 앞으로 3일이나 순례길을 더 달려야 하기에 무리하지 않도록 서둘러 콜벤을 불러 태위로를 달려 위미항 근처에 있는 친구의 별장주택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친구 부인이 준비한 식단과 한라 막걸리 한 잔으로 여독을 푼다.

선듯 숙소를 제공해준 친구와 저녁까지 준비해준 친구 부인께 감사드리고, 안전한 제주 원정 순례 첫 날을 동행하여 주신 주님께 감사 드리며, 동행한 두 친구들의 수고에도 박수를 보낸다.

   

※ 상단 첨부 : 48차_새미은총동산_용수성지_정난정묘_20170926.gpx
※ 경로 지도 보기 : https://www.komoot.com/tour/20449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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