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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차 삼량진 김범우묘, 만어사, 순매원

52차 순례 후기는 2017년 본격적인 성지순례를 시작 하기 전인 2016년 3월16일~17일 1박2일로 매화꽃 마중 라이딩을 위해 삼랑진과 원동역의 순매원을 갔을 때 후기를 다시 정리한 것이다. 순례의 시작은 삼랑진역으로 열차를 타고가서 점심을 먹고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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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의 대표 사진은 잡지책이나 포스터에 자주 나오는 낙동강변 원동역 옆에 있는 순매원과 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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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순례길 경로 맵

 

삼량진까지 열차로 내려가서 첫날은 만어사와 김범우묘 순매원을 둘러보고 낙동강변에서 비박을 하고,

둘째날은 순매원을 출발하여 늘밭재를 넘어 양산으로 내려와 화명역에서 열차로 복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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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초록지기님,너바나님, 늘푸른님까지 3명이 무궁화호 열차로 내려오고,통영의 토마스님은 통영에서 버스로 출발, 그리고 저는 전날 광주의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일행의 승용차 트렁크에 카본접이식 20인치 자전거를 싣고 내려가서 04:30 기상하여 광주종합버스터미널로 택시로 이동 후, 부산서부시외버스터미널로 점프하여 통영의 토마스님을 만나 낙동강 자전거길을 자전거로 32.7km를 달려서 모두 5명이 삼량진역에 3월16일 12시에 집결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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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기 위하여 찾아간 곳은 삼량진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50년된 꼼장어집,우리 일행 이외 다른 잔차팀도 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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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명이 5만원짜리 한 접시를 시키고 공기밥 추가하면 해장국물은 서비스로 준다. 낙동강 종주 하시는 분들 지나가다가 한번 들려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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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었으니 우선 만어사를 향하여 업힐을 시작한다. 삼량진에서 만어사 까지 9km중 4km 정도가 평균 13%짜리 심한 업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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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어사(寺)

옛날 전설에 의하면 46년(수로왕5) 동해 용왕의 아들이 자신의 수명이 다한 것을 깨닫고 낙동강 건너에 있는 무척산이란 곳의 신승()을 찾아가 새로 살 곳을 마련해줄 것을 부탁했다. 신승은 용왕의 아들에게 가다가 멈추는 곳이 바로 그곳이라고 말해주었다. 용왕의 아들이 길을 떠나자 수 많은 고기떼가 그의 뒤를 따랐는데, 그가 멈춘 곳이 만어사이다. 만어사에 이르자 용왕의 아들은 큰 미륵돌로 변했고, 그를 따르던 수 많은 고기들 또한 크고 작은 돌로 변했다는 전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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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에는 왕이 불공을 드리는 장소로서 이용되었다고 하며, 1180년(명종 10)에 중창되었고, 1879년에 중건되었다.
대웅전 ·미륵전 ·삼성각(三聖閣) ·요사채 ·객사(客舍)가 있으며, 보물 제466호로 지정된 3층석탑이 있다.
미륵전 밑에는 고기들이 변하여 돌이 되었다는 만어석(萬魚石)이 첩첩이 깔려 있는데, 두드릴 때마다 맑은 소리가 나기 때문에 종석(鐘石)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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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을 배경으로 기념 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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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어사 주변 골짜기 너덜지대를 가득 메운 독특한 모양의 검은 돌들은 용왕의 아들을 따라온 수많은 고기떼가 돌로 변한 것이라 한다.

이 때문에 만어석이라 불리는 이 돌들은 두드리면 맑은 종소리가 나 종석이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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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어사 미륵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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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투어에 함께하신 분들, 좌측부터 초록지기님, 너바나님, 토마스님, 저 그리고 늘푸른님은 찍사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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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님이 찍사로 바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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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덜지대를 이루고 있는 수 많은 돌들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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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경내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미륵바위’ 또는 ‘미륵불상’이라고 불리는 높이 5m 크기의 자연석이다.
전설 속 동해 용왕의 아들이 변한 돌이며, 『삼국유사』 ‘어산불영’의 ‘불영’인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자연석 표면에 붉은색이 감도는 부분이 마치 가사(
)와 같아 더욱 신비롭게 여겨진다. 이 미륵바위를 신비스럽게 하는 이야기로는 해마다 0.3㎝씩 큰다거나 병자호란이나 임진왜란, 갑오농민전쟁, 활빈당이 활약할 때, 한일합방, 3·1만세운동 때 돌의 오른쪽 면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으며, 그외에도 한국전쟁, 4·19혁명, 5·16군사정변 때에도 땀이 흘렀다고 하는 것들이 있다. 근래에는 미륵바위를 보호하기 위한 미륵전 불사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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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전 지붕위로 반달이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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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3대 신비(만어사돌,표충비,얼음골)의 하나인 만어사 마당에 소원 '돌'(축구 공 크기).

성인이면 누구나 쉽게 들 수 있는 크기의 돌인데,이 돌을 들기 전에 먼저 눈을 감고 소원을 빈 후 두 손으로 들었을 때 돌이 움직이지 않으면 소원이 이뤄지며, 돌이 쉽게 들리면 소원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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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쉽게 들렸다.  너바나님도 쉽게 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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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님은 꿈쩍도 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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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시도해도 움직이기는 한데 들리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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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푸른님도 안들리네요!! 쉽게 들 수 있을 것 같은데 희한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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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많은 돌 중에 어떤 돌은 두드리면 맑은 종 소리가 난다. 

만어사를 뒤로 하고 동쪽 임도를 따라 올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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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어사에서 내려오는 길은 갔던 길로 돌아오지 않고 동쪽 능선을 따라 올라가서 반대쪽 길로 내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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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젓한 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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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편 임도 정상에서 좌회전 하면 밀양쪽으로 내려가고, 우회전 하면 삼량진까지 긴 다운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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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다운 하다가 마을 뒷쪽에 저수지와 어우러진 매화가 아름다워서 한컷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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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내려온 길과 산촌 마을, 이렇게 지대에 아직 여러 집들이 옹기종기 마을이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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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을 끝내고 김범우묘로 오르는 삼거리 마을어귀 딸기밭에서 목을 축일 겸 딸기를 사서 먹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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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의 고장 답게 딸기가 실하고 당도도 상당히 높아 달고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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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로 갈증을 달래고 인근에 있는 김범우의 묘를 찾아간다. 

 

한국 천주교의 첫 증거자요, 첫 순교자로 불리는 김범우 토마스(1751-1786/1787년)의 묘가 발견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그때까지 김범우의 유배지는 달레 “한국 천주교회사”에 근거하여 충청도 단양(丹陽)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1980년대 초 김범우의 묘를 백방으로 찾던 후손 김동환이 나타나면서, 가족에게서 전해지는 이야기와 호구단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김범우의 유배지가 단양이 아니라 밀양 단장(丹場)임이 새롭게 밝혀졌다.
 

그 후 부산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의 송기인 신부와 김범우의 후손들, 그리고 영남 지방 교회사 연구에 몸 바친 마백락 씨 등은 몇 년에 걸쳐 밀양과 삼랑진 지역을 답사하고 수소문한 끝에 1989년 극적으로 김범우의 외손(손임덕, 당시 78세, 집안 대대로 묘지를 관리)을 만나 그의 도움으로 밀양시 삼랑진읍 용전리 산102번지 만어산 중턱에서 묘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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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우묘로 올라가는 길 옆에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나타내는 십자가의 길 14처 조각상이 형상화되어 설치되어 있다.

 

그 해 5월에 본격적인 묘 발굴을 시작하여 파묘한 결과 관 자리 위에 십자가 모양으로 놓인 돌 3개와 치아가 발견되었다.
이 돌은 순교자 황사영의 묘소 발굴 때와 같은 경우로 성물이 귀했던 박해시대에는 성물 대신 십자가, 나무묵주, 돌 등을 관 속에 넣어두는 경우가 많았다. 출토된 유물과 후손들의 증언을 토대로 순교자현양위원회에서는 이곳을 김범우의 묘로 단정했고, 김범우의 신앙과 생애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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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우의 묘가 있는 밀양시는 중부 경남의 중심지로 일찍부터 넓고 기름진 평야와 높은 산, 깊은 계곡이 많은 아름다운 고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 임진왜란 때 이름을 떨친 사명대사, 휴정 등 훌륭한 인재가 많이 배출된 고장이다. 특히 재약산(858m)의 표충사와 만어산(670m)의 만어사는 여러 가지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 고찰(古刹)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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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우는 
1751년 서울에서 중인 역관 김의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773년 역과에 합격했으며, 학문을 좋아하여 정약용의 자형인 이벽과 가깝게 지내다가, 이벽이 1784년에 천주교 교리를 전하자 그의 권면을 받아들여 천주교에 입교 하였다. 16세에 천녕 현씨를 아내로 맞아 이듬 해에 장남 인고(仁考)를 낳았고, 1773년 역과 중광시에 합격하여 한학우어 별주부에 이르렀다. 그는 이승훈 등 초기 교우들과 가깝게 지냈고, 1784년 가을 이벽의 집에서 세례를 받았으며겨울부터는 자신의 집이 교회가 되어 "명례방공동체"가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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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정식으로 영세를 받은 최초의 신자는 다산 정약용의 자형인 이승훈(李承薰, 1756~1801)이다.
그는 손위 동서인 이벽(李檗, 1754~86)의 권유로 천주교도가 되었다. 아버지 이동욱이 1783년에 동지사(冬至使)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갈 때 자제군관으로 북경에 따라갔다. 그곳에서 40일 동안 머물며 프랑스인 루이 드 그라몽 신부에게 영세를 받아, 우리나라 최초의 영세신자가 되었다.
그는 1784년에 수십 종의 천주교 서적과 십자고상(十字苦像), 묵주, 상본(像本) 등을 구입해서 조선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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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이 영세를 베풀기 시작하자, 김범우도 이벽의 집에서 그에게 영세를 받아 토마스라는 영세명을 얻었다.
우리나라 천주교 사상 두 번째 영세식이었는데, 이존창 · 최창현 · 최인길 · 지홍 등이 함께 받았다. 김범우는 천주교 신앙을 열렬히 전도하며, 동생 이우(履禹)와 현우(顯禹)까지 입교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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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우의 집은 명례방(明禮坊) 장예원(掌隷院) 앞에 있었는데, 천주교 서적이 많이 있어 신자들이 자주 모여 미사를 드리거나 설교를 들었다.
양반 이벽의 집에는 하층민이 드나들기 어려워, 중인 출신의 김범우가 수표교에서 가까운 자기 집을 예배 장소로 제공했다.

삼랑진 지역에 천주교의 전래는 바로 김범우의 귀양살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유명한 역관 집안에서 태어난 김범우는 1784년 이승훈이 북경에서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돌아온 해 가을 수표교(水標橋) 인근에 있던 이벽의 집에서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고 입교하였다.
그러다가 입교자가 늘면서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이벽의 집에서 모임을 갖기 어려워지자 명례방(明禮坊, 현 명동 성당 인근)에 있던 자신의 집을 제공함으로써 ‘명례방 공동체’가 탄생하였다. 

 

그러나 이듬해인 1785년, 명례방의 김범우 토마스의 집에서 정기적인 신앙집회를 개최하다가 추조(형조) 관리들에게 발각되었다.
이것이 바로 일명 ‘을사추조적발사건’(乙巳秋曹摘發事件)으로 그는 동료들과 함께 형조에 끌려가 많은 매를 맞고 옥에 갇혔으나 끝내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와 함께 끌려간 이벽, 이승훈, 정약용 등은 모두 소위 양반계층에 속한 인물들인지라 즉시 풀려 나왔지만 김범우는 교회 집회 장소의 집주인일 뿐 아니라 중인(中人) 신분이었기 때문에 멀리 밀양으로 귀양을 떠나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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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5년 어느 봄날 이승훈과 정약전 · 약종 · 약용 3형제와 권일신(權日身) 부자 등 양반과 중인 신자 수십 명이 모여 이벽의 설교를 듣고 있는데, 마침 그곳을 지나던 형조의 관원이 도박장으로 의심하고 수색하였다. 그곳에서 예수의 화상과 천주교 서적을 압수하여 형조에 바쳤는데, 이를 을사추조적발사건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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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20일 봉헌식을 가진 성모동굴 성당. 

처연한 신세가 되어 유배지에 도착한 그는 만어산의 금장굴 부근에서 2년간 귀양을 살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유배생활을 하면서도 공공연하게 천주교를 신봉할 것을 설득하면서 “큰 소리로 기도문을 외우고 자기 말을 듣고자 하는 모든 이를 가르쳤다.”샤를 달레는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그는 형조에서 받은 혹독한 형벌의 여독으로 2년 정도 고생하다가 1786년 가을(혹은 1787년 초) 세상을 떠났다. 김범우가 죽은 뒤 후손들은 만어산을 중심으로 삼랑진읍 굴암리(掘岩里, 현 용전리), 단장면 등에 살면서 신앙을 전파했다.

 

한국 천주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조정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고 형 집행을 당한 최초의 순교자는 1791년 ‘진산사건’(珍山事件)으로 순교한 윤지충이다.
그러나 비록 관아에서 사형선고를 받지는 않았으나 분명히 그보다 앞서 박해와 형벌 속에서 신앙을 증거하고 그 형벌의 여독이 죽음의 직접적 원인이 된 김범우는 ‘장하치명’(杖下致命)한 한국교회 최초의 순교자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서울의 명동 성당은 한국교회 창설의 기점이 된 명례방 집회가 이루어졌던 김범우의 집을 역사적으로 기념하여 건립된 성당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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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학(西學)에 대해 비교적 온건했던 정조 시대였으므로, 형조판서 김화진은 사대부 자제들은 알아듣게 타일러 돌려보내고, 중인 신분의 김범우와 최인길 두 역관만 잡아 가두었다가 태형을받고 단양으로 유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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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에 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 빛을 이용한 은은한 조명이 아름다운 성모동굴성당 내부와 돌로 제작된 십자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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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동굴성당 내부에서 잠시 기도 후 토마스님이 샷을 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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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김범우의 묘를 발굴한 이후 순교자현양위원회에서는 주변의 땅을 매입하여 순교자 묘역 조성사업을 진행하였다.
묘역에 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 제대와 1천여 평의 잔디밭을 조성하고, 도로변 주차장에서 묘역에 이르는 산길에는 대형 원석에 그림을 새긴 십자가의 길 14처를 세웠다. 그리고 묘역 주차장에서 묘역에 이르는 길목에는 20개의 돌에 한국 천주교회의 기념비적인 사건들을 기록하였다.
수년간의 노력을 통해 묘역을 말끔히 단장한 후 2005년 9월 14일 정명조 주교의 주례로 묘역 준공미사를 봉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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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2010년 11월 순례객들을 위한 김범우 순교자 기념 성모동굴성당 기공식을 갖고 공사에 착수하여 2011년 9월 20일 교구장 황철수 주교의 주례로 봉헌식을 가졌다. 묘역 주차장 부지 한편에 세워진 성모동굴성당과 사제관의 완공으로 순례객들은 날씨와 상관없이 미사를 봉헌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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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김범우 토마스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가 추진하여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된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조선왕조 치하의 순교자와 증거자의 제2차 시복 추진 대상자인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에 포함되었다. 부산교구는 장독(杖毒)으로 사망한 김범우의 시복시성을 위해 관련 사료를 수집하는 등 시복시성 운동을 벌이고 있다.

한국 천주교 첫 순교자인 김범우의 묘는 1989년에 세상에 널리 알려져, 2005년 9월 14일에 유배 220주년 및 김범우(토마스) 묘역 준공미사가 1,500명 신자가 모인 앞에서 베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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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김범우 토마스 묘.


한국 천주교의 첫 증거자 또는 첫 순교자로 불리는 김범우 토마스의 묘가 발견된 것은 1989년.
이전까지 그의 유배지는 충청도 단양(丹陽)으로 알려졌지만 1980년대 초 김범우의 묘를 백방으로 찾던 후손 김동환이 나타나면서 단양이 아니라 밀양 단장(丹場)임이 새롭게 밝혀졌습니다. 그 후 부산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와 후손들의 노력으로 1989년 극적으로 김범우의 외손을 만나 그의 도움으로 밀양시 삼랑진읍 용전리 산102번지 만어산 중턱에서 묘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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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배교하지 않은 그는 멀리 밀양으로 귀양을 떠났고, 유배생활 중에도 공공연하게 천주교를 전파하던 중 형조에서 받은 형벌의 여독으로 1786년 가을(혹은 1987년 초)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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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우묘에서 삼량진으로 내려와 낙동강 자전거 도로를 타고 원동역으로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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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폭이 넓어진 것으로 봐서 을숙도가 멀지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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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 순례 첫날 종착지 순매원이다. 

순매원은 규모는 작지만, 강과 산, 철길과 매화 밭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이다. 

오늘은 여기 까지만 둘러보고 해가 지기 전에 서둘러 비박할 곳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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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비박 할 장소다.

주변에 화장실도 있고, 아침 일찍 찾는사람도 없고, 정자에 바람막이 비닐도 쳐 있고, 이만하면 비박지로 최고의 장소이다.

이번에는 텐트와 취사도구 없이 침낭과 메트만 가지고 와서 이곳에서 비박을하고 식사는 매식을 하기로 했는데... 

메트만 가지고 다니면 천지가 내집인 것을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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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를 정하고 나니 통영 토마스님이 준비해 오신 문어숙회와 너바님이 어둠을 뚫고 가게를 찾아가 사온 쵸코파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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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오늘이 카톡에 양력 3월16일(실제는 음력으로 찾아먹는데..ㅋ) 나의 생일이라고 조촐한 생일 축하연을 해주는데 감동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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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님이 기름소금, 초고추장 까지 꼼꼼하게 챙겨 오셨다.

그렇게 밤이 깊도록 종교와 역사, 여행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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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에 옅은 안개가 끼고 포근하여, 오늘도 라이딩 하기에 좋은 날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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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단 첨부 : 52차_삼량진_김범우묘_만어사_순매원_20160316_37.8km.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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