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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교회 복음화 길] 붓다의 나라 태국, 그 안의 가톨릭교회(1) 순교로 점철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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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31주년 특별기획] 

아시아 교회 복음화 길을 따라서] 붓다의 나라 태국, 그 안의 가톨릭교회(1) 순교로 점철된 역사

200여 년 박해에도 지지 않은 ‘믿음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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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국 순교자 7위의 성모 성당’ 제대. 뒤편의 벽은 때에 따라 열고 닫을 수 있게 설계돼 있다.




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는 2018년 국제 성지담당자회의에서 순례지를 ‘새 복음화를 향한 문’으로 규정했다.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위원장 정순택 주교)는 이 뜻을 이어받아 3년에 걸쳐 아시아 교회를 잇는 순례 네트워크 구축 사업에 나섰다. 가톨릭평화신문은 창간 31주년 특별 기획으로 여기에 동행해 아시아 가톨릭교회의 순례사목과 각국 교회의 모습을 보도한다.



태국과 가톨릭교회

불교의 나라 태국에도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이 존재할까. 태국에서 가톨릭의 이미지를 쉽게 떠올리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러나 태국 가톨릭교회는 16세기부터 신앙의 씨앗이 싹튼 뿌리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또 한국 교회와 태국 교회는 수난과 고통의 시기를 겪으며 성장했다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태국 전체 인구의 0.5%인 38만여 명이 가톨릭 신자다. 비록 현재의 교세는 약하지만, 태국 교회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젊은 교회’이기도 하다. 특히 청소년사목이 활발한 치앙마이교구는 신자가 급속도로 늘어나며 지난해 4월 교구를 분리해 치앙라이교구를 새로 설정하기도 했다. 이로써 현재 방콕과 타레농상 2개의 대교구를 포함한 11개 교구와 496개 본당, 1450명 사제, 2061명 수도자가 태국 가톨릭교회를 구성하고 있다.



태국 교회의 역사

태국 교회의 역사는 1550년 프랑스 선교사들이 샴왕조에 선교하면서 시작했다. 이후 많은 사제와 수도자들이 신앙의 불모지인 태국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헌신했다. 그 노력은 17세기 당시 샴 국왕이었던 프라나라이(Phra-Narai,1632~1688)의 지원과 함께 꽃을 피운다. 그 결과 1662년 알렉산델 7세 교황은 샴대목구를 설정했다. 

간신히 싹을 틔운 태국 교회였지만 이후의 역사는 험난하기만 했다. 특히 서구 열강의 침략을 목격한 태국인들은 가톨릭교회를 ‘서구의 첩자’로 의심했다. 이러한 불신은 결국 200여 년에 걸친 박해로 이어졌다. 박해의 시기를 거치며 많은 선교사가 투옥되거나 추방당했고, 신자는 1만 2000명에서 1000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박해 속에서도 당시 태국 교회는 주변 국가에 복음을 전파하는 전진 기지 역할을 했다. 일본과 베트남 지역의 신자들은 본국의 박해를 피해 상대적으로 활동이 자유로운 태국을 찾아왔다. 

한국 교회 역시 태국 교회와 인연이 깊다. 초대 조선대목구장인 브뤼기에르 주교(1792~1835년)가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으로 샴대목구의 부주교를 지냈기 때문이다. 비록 브뤼기에르 주교는 조선으로 오던 길에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의지는 이어져 한반도에 신앙의 싹을 퍼뜨리게 된다.

오랜 박해의 시기를 거친 태국 교회는 19세기 들어와 당시 국왕 몽쿠트(Mongkut, 라마 4세)의 도움을 얻어 서서히 자리 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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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을 지키겠다고 맹세한 7명의 순교자들은 메콩강변에 위치한 삭신숲에서 총살형으로 순교한다.



태국 순교의 상징, 왓송콘 

타레농상대교구(교구장 참니언 산티숙니란 대주교)가 관할하는 이산 지역에 신앙의 씨앗이 뿌려진 것도 이 시기다. 태국 교회는 1881년 사제를 태국 북부 지역에 보내 선교를 시작했고, 1965년 이 지역에 타레농상대교구가 설정되면서 현재 모습을 갖췄다.

이산 지역에는 태국 교회의 순교 역사를 상징하는 송콘(Songkhun) 성지가 있다. 태국에서는 불교사원처럼 성스럽다는 의미의 ‘왓(Wat)’을 붙여 이곳을 ‘왓송콘’이라 부른다. 왓송콘은 태국 내 유일한 순교성지이다. 

왓송콘에는 7명의 순교 복자가 모셔져 있다. 필라(Phila, 아녜스, 31)와 캄방(Khambang, 루치아, 23) 수녀, 풋다(Phutta, 아가타, 59), 시퐁(Siphong, 필리피, 33), 부트시(Butsi, 체칠리아, 16), 캄파이(Khamphai, 비비안나, 15), 폰(Phorn, 마리아, 14) 등 7위다. 이들은 1989년 10월 22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시복됐다.

이들이 순교하던 당시 태국은 프랑스와 국경 문제로 충돌을 빚고 있었다. 태국은 교회를 ‘프랑스의 간첩’으로 의심해 선교사들을 추방하고 가톨릭 신자들에게 개종을 강요했다. 이때 송콘의 순교자들 역시 개종을 강요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자기 신앙을 지켰다. 복녀 필라 수녀가 경찰서장에게 보낸 편지 내용을 보면 그들의 신앙심이 얼마나 깊고 순교를 갈망했는지 알 수 있다. 필라 수녀는 편지에서 “그리스도만이 참된 신앙”이라고 고백하며 “빨리 하느님과 만나고 싶으니 지체하지 말고 우리의 목숨을 빼앗으라는 명령을 수행해 달라”고 서장에게 부탁했다. 결국, 7명의 순교자는 메콩강변 삭신 숲에서 총살형으로 순교했다.

왓송콘을 순례하면 먼저 외부를 둘러싼 거대한 벽과 마주한다. 벽은 이곳이 성스러운 곳임을 상징한다. 벽 안쪽에는 복자들의 순교 당시 모습을 기록한 돌 패널과 십자가의 길 14처가 있다. 

성지 가운데에는 ‘태국 순교자 7위의 성모 성당’이 있다. 성당은 정면에서 볼 때 직사각형 모양으로 지어져 있다. 성당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순교자들의 올곧은 신앙심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성당 전면을 떠받치고 있는 일곱 기둥은 ‘일곱 순교자’를 뜻한다.

성당 안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쇠사슬을 들고 서 있는 성모 마리아상이다. 성모님이 들고 있는 쇠사슬은 노예 해방을 상징한다. 당시 송콘 지역의 가톨릭 신자들은 대부분이 노예를 비롯한 하층 계급이었다. 이들에게 가톨릭은 신앙이자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했다.

성당 뒤편에는 순교 복자 7위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유해는 모두 밀랍으로 처리돼 유리관에 안장돼 있다. 이곳을 찾는 신자들은 이들의 시성을 위해 기도하고, 이들에게 전구를 청하는 기도 쪽지를 복자들의 유해 앞에 두고 간다. 

왓송콘 순교성지 주임 위라데즈(Weeradej) 신부는 “한 해에 7000명이 넘는 신자들이 신앙의 증거를 찾아 이곳을 방문한다”며 “아시아순례네트워크 사업을 통해 왓송콘 성지를 방문하는 한국인 순례자들이 늘어나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왓송콘(태국)=장현민 기자 memo@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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