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루치아

Korean 103 Saints 103위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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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103 Saints

김 루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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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 : 동정녀순교일 : 1839-07-20관련성지 : 서소문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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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 순교자 김 루치아는 강원도 강촌(江村)에서 태어나 아홉 살 때 어머니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14세 때 동정을 지킬 것을 결심하였고, 부모를 여읜 뒤로는 자신을 받아 주는 교우들의 집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살았다.

1839년 기해박해 때 포졸들에게 자수한 뒤, 포청과 형조에서 천진한 태도와 한결 같은 신앙으로 모든 형벌과 고문과 유혹을 참아 냈고, 교리에 대한 심문 중에도 기막힌 비유와 논리정연한 대답으로 형관을 감동시켰다.

7월 20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22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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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헌 아우구스티노
관리자 0 0 0 3751 2017.01.16
신분 : 회장순교일 : 1839-05-24관련성지 : 서소문 밖이광헌은 1801년 신유박해 때 여러 순교자를 낸 광주(廣州) 이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청년 시절에는 매우 방탕한 생활을 하였으나 30세경 입교한 뒤로는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여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거듭되는 박해로 가산을 전부 잃고 순교할 때까지 10여 년을 궁핍하게 살면서도 회장직에 충실하고 또 냉담자를 권면하고 병약자를 위로하며 외교인에게 전교하였다. 그리고 범 라우렌시오(앵베르) 주교와 신부들을 자신의 집에 맞아들여 교우들을 미사에 참여하게 하고 강론을 듣게 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 초 어떤 예비신자가, 체포된 자기의 아내를 석방시키는 조건으로 이광헌을 포함한 53명의 교우 명단을 포졸에게 건네 주어 이광헌은 4월 7일 전가족과 함께 체포되어 포청으로 끌려갔다. 포청에서 형문(刑問)을 마친 후 4월 18일 형조로 이송된 그는 배교하면 가족들과 함께 석방시켜 주겠다는 형관의 유혹을 뿌리치고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받아 온 몸이 피범벅이 되었으나 끝까지 신앙을 지켜 냈다. 형조에서 혹형과 고문을 이겨 낸 뒤 5월 24일 남명혁(南明赫) 등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53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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