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손 막달레나

Korean 103 Saints 103위 성인
홈 > Knowledges > Korean 103 Saints
Korean 103 Saints

박봉손 막달레나

관리자 0 3053 0
신분 : 과부순교일 : 1839-09-26관련성지 : 서소문 밖

3232235521_3cguwdDN_6143ffd06cfee88697db16b5e083e448722cf88c.jpg

 

서울에서 태어난 박봉손은 15세쯤에 시골로 출가하여 딸 하나를 두었으나 남편과 시부모를 차례로 여의고 친정으로 돌아왔는데, 계모 김 체칠리아의 권고와 가르침으로 천주교에 입교하게 되었다. 친정에는 여러 교우 가족들이 모여 살고 있어 늘 번잡하였으나 박봉손은 그런 가운데에서도 궂은 일과 천한 일을 도맡아 하였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7월초 외삼촌과 함께 체포되었다. 박봉손은 형관에게 “주님을 위하여 죽고자 여기까지 온 것이니 국법대로 죽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마침내 9월 26일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니 그의 나이 44세였다.

 

,

0 Comments
남명혁 다미아노
관리자 0 0 0 3514 2017.01.16
신분 : 회장순교일 : 1839-05-24관련성지 : 서소문 밖서울에서 태어난 남명혁은 젊어서 무뢰배들과 어울리며 매우 난폭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였으나 30세경 입교한 뒤로 모든 세속의 나쁜 일과 손을 끊고 오직 신앙 생활에만 전념하였다. 유방제(劉方濟)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더욱 열심히 살아 이광헌과 함께 회장으로 임명되어 예비신자를 모아 가르치고 병약자들을 방문하였으며 또 ‘성의회`(聖衣會)라는 신심 단체에 가입하여 신부를 도와 교회 일을 열심히 하였다. 그는 1839년 기해박해 초 한 예비신자의 밀고로 4월 7일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체포되었는데 이 때 그의 집에서 제의류(祭衣類), 경본(經本), 주교관(主敎冠) 등이 발견되어 포청과 형조의 관원들에게 매우 혹독한 형벌을 당했다. 그러나 남명혁은 모든 고통을 참아 냈고, 함께 체포된 아내에게 “이 세상은 잠시 머무는 곳이고 우리의 본향은 천국이니 주님을 위하여 죽어서 광명한 곳에서 영원히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고 격려의 편지를 써 보낸 뒤 5월 24일 이광헌 등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평소 ‘성의회의 치명자 남 다미아노’로 불리기를 바랐던 남명혁은 한창나이인 38세에 자신의 뜻대로 순교하였다.
Categ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