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주기 요셉

Korean 103 Saints 103위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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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103 Saints

장주기 요셉

관리자 0 5562 0
신분 : 회장순교일 : 1866-03-30관련성지 : 갈매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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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소’라고도 불렸던 장주기는 경기도 수원(水原) 느지지(현 경기도 화성군 양감면 육당리)에서 태어나 1826년에 세례를 받았다.

박해와 친척들의 방해를 피해 충청도 배론으로 이사하였고, 회장이 되어 모범적인 신앙 생활을 하였다.

1855년 배론에 신학교가 설립될 때에는 자신의 집을 임시 신학교로 내어 주고, 자신은 신학교에 딸린 땅에서 농사일을 하며 잔일을 도맡아 하였다. 1866년 3월 1일 배론 신학교에서 신 신부와 박 신부가 체포되자 장주기는 제천 부근의 노럴골로 피신하였지만, 다른 교우들이 피해를 입을까 염려하여 자수한 뒤 서울로 압송되었다. 서울의 포청에서 고문을 견뎌 내며 끝까지 신앙을 지켜, 때마침 홍주 거더리에서 끌려 온 안 주교, 민 신부, 오 신부, 황석두 등과 함께 3월 30일 충남 보령군 갈매못에서 군문효수형을 받고 64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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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보 프로타시오
관리자 0 0 0 21941 2017.01.16
신분 : 공인순교일 : 1839-05-20관련성지 : 포청옥정국보는 원래 개성(開城)의 유명한 양반 가문에서 출생하였으나 벼슬을 하던 조부가 죄를 짓자 부친과 함께 상민으로 신분을 감추고 상경하여 선공감(線工監)에서 일하며 미천하게 살았다. 30세쯤 천주교를 알게 되자 곧 입교하여 유방제 신부에게 세례성사를 받았고, 그 후로는 홍살문 근처에서 성사를 받으러 상경하는 시골 교우들을 돌보았는데 가난과 병에 시달리면서도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인내와 극기의 신앙 자세를 잃지 않아 모든 교우의 귀감이 되었다. 기해박해가 일어난 1839년 4월(음력 3월)에 밀고되어 아내와 함께 체포되었는데 포청의 형벌과 고문은 참아 냈으나 형조에서는 참아 내지 못하고 배교하였다. 그러나 석방되자마자 배교한 것을 뉘우치고 형조에 들어가 배교를 취소하며 다시 체포해 달라고 간청하였고, 그것이 거절당하자 5월 12일(음력 3월 그믐) 고문의 여독과 염병으로 들것에 실린 채 형조판서가 다니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형조판서에게 직접 자신을 체포해 줄 것을 요구, 그 날로 체포되어 5월 20일(음력 4월 7일) 포청에서 곤장 25대를 맞고 이튿날 새벽에 순교하였다. 그의 나이 41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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