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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서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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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농부순교일: 1866-12-13관련성지: 숲정이경기도 수원(水原)에서 태어난 조화서는 1839년 기해 박해 때에 아버지 조 안드레아가 순교하자 충청도 신창으로 이사한 뒤 한 막달레나와 혼인하여 아들 윤호를 두었으며, 한때 최양업(崔良業) 신부의 복사 일을 맡았다. 1864년에 전주 지역의 교우촌인 성지동으로 이사하였고, 아내가 죽은 뒤 김 수산나와 재혼하였다. 1866년 병인 박해가 일어나자 12월 5일 아들 윤호, 이명서, 정원지 등과 함께 체포되어 전주 감영 전면옥에 갇혔는데, 부자가 옥에서 순교를 다짐하며 서로 격려하였다. 아들과 함께 예닐곱 차례의 신문을 받은 조화서는 후손이 끊기는 것을 염려하는 척하며 배교를 권유하는 관장의 유혹을 뿌리치고, 12월 13일 5명의 교우와 함께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참수형을 받아 52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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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률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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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회장순교일: 1866-02-17관련성지: 평양유정률은 평남 대동군 율리면 답현리(畓峴里, 일명 논재)에서 태어나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짚신을 엮어 팔며 어려운 생활을 하였다. 1864년경 교리를 배우고 서울로 올라와 장 시므온(베르뇌) 주교에게 세례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온 뒤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며 극기하고 인내하는 생활을 하였고, 그의 달라진 모습을 본 아내도 감동하여 입교하게 되었다. 1866년 초 박해가 일어났다는 소문을 들은 유정률은 친척들에게 세배하면서 자신의 순교를 예감한 듯 “안녕히 계십시오. 지금 헤어지면 언제 다시 뵐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인사하였는데, 과연 그 날 저녁 이웃 마을인 고둔리의 공소에서 교우들과 함께 성서를 읽다가 체포되어 평양 감영으로 끌려갔다. 유정률은 이미 체포된 100여 명의 교우와 함께 문초를 받았고, 다른 교우들은 혹형과 고문을 이기지 못하여 배교하였지만 그는 홀로 신앙을 지켰다. 이에 분노한 감사는 배교한 교우 100여 명을 시켜 그를 세 대씩 때리게 하였다. 결국 체포된 다음 날인 2월 17일, 유정률은 300여 대의 매를 맞고 30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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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소벽 막달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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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부인순교일: 1840-01-31관련성지: 당고개서울의 교우 가정에서 태어난 손소벽은 1801년 신유박해 때 아버지가 순교하고 또 어머니마저 일찍 세상을 떠나 외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17세 때 최창흡(崔昌洽)과 혼인하였으며, 1821년 전국에 콜레라가 퍼지자 남편과 함께 대세를 받고 성체를 모시고부터는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6월, 손소벽은 가족과 함께 체포되었는데, 사위 조신철(趙信喆)이 북경에서 가져온 교회 물건의 출처 때문에 포청에서 주리 세 차례, 태장 260대를 맞는 혹형을 당하였으며, 형조에서도 세 차례의 형문(刑問)을 당하였다. 1840년 1월 31일 5명의 교우와 함께 당고개에서 39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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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철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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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소년순교일: 1839-10-31관련성지: 옥사유진길(劉進吉)의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난 유대철은 어려서 입교한 뒤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였다. 천주교를 반대하는 어머니와 누나가 그를 괴롭혔으나 그 때마다 어머니와 누나의 회개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유대철은 1839년 기해박해로 많은 교우들이 체포되어 순교하는 것을 보고 순교를 결심하여 자수하였다. 그는 포도청에서 13세의 어린 나이로는 견디기 힘든 형벌과 고문을 받았는데, 허벅지의 살을 뜯어 내며 “이래도 천주교를 믿겠느냐?" 하고 으름장을 놓는 형리에게 “믿고 말고요. 그렇게 한다고 제가 하느님을 버릴 줄 아세요?" 하고 대답하였다. 이에 화가 난 형리가 시뻘겋게 단 숯덩이를 입에 넣으려 하니, "자요"하고 입을 크게 벌려 형리들을 놀라게 하였다. 열네 차례의 신문을 받고 100여 대의 매와 40여 대의 *치도곤을 맞아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으나 유대철은 언제나 평화롭고 기쁜 표정을 지었다. 형리들은 유대철을 배교시킬 수 없음을 깨닫고 10월 31일 몰래 목을 졸라 죽였다. 그는 103위 성인 중 가장 어린 순교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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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베르 라우렌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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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제2대조선교구장주교순교일: 1839-09-21관련성지: 새남터한국 이름은 범세형(范世亨), 조선교구 제2대 교구장이며 주교로는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조선교구 초대 교구장인 소(브뤼기에르) 주교가 입국도 못한 채 병사하자 제2대 조선교구장으로 임명되어 1837년 5월 주교품을 받았으며 같은 해 말 조선 입국에 성공하였다. 그의 입국으로 조선교구는 그보다 앞서 입국한 나(모방), 정(샤스탕) 두 신부와 더불어 교구 설정 6년, 교회 설립 53년 만에 비로소 선교 체제를 갖추었으며, 1839년 초 신자수는 9천 명을 넘게 되었다. 그는 또한 한국인 성직자 양성에도 뜻을 두어 정하상 등 네 명의 열심한 신자들을 뽑아 사제로 키우고자 하였으나 때마침 불어닥친 박해로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났을 때 자신의 거처가 알려지게 되자 교우들에게 화가 미칠 것을 염려하여 스스로 포졸들에게 잡히는 몸이 되었다. 나, 정 두 신부에게도 인편으로 자수할 것을 권유하여 다같이 1839년 9월 21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았다. 이 때 그의 나이는 43세였으며 조선에 입국한 지 불과 2년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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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르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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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6
신분 : 동정녀순교일 : 1839-05-27관련성지 : 옥사이 바르바라는 독실한 구교우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서울 청파동에서 이영희, 이정희 두 이모의 보호를 받으며 살았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4월, 15세의 어린 나이로 체포되어 포청에서 신문을 받은 뒤 형조로 이송되었다. 형조에서 어린 것이 요물이라 하여 매우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하였으나 끝까지 배교하지 않자 다시 포청으로 송환되었다. 포청에서 이 바르바라는 전보다 훨씬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당하였으나 꿋꿋이 참으며 함께 갇혀 있는 어린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다가 5월 27일 기갈과 염병 그리고 고문의 여독으로 옥사함으로써 15세의 어린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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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호 바르톨로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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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원님순교일: 1866-12-13관련성지: 숲정이‘계식’으로도 불렸던 정문호는 충청도 임천(林川) 출신으로, 고향에서 교리를 배우고 입교하여 독실한 신앙 생활을 하였다. 박해를 피해 여러 지역을 유랑하다가 병인 박해 무렵에는 전주 지방의 교우촌인 대성동 신리에 정착하였는데, 품행이 단정하고 성품이 강직하여 교우들뿐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평판이 좋았다. 1866년 12월 초 사람을 시켜 전주 감영의 동태를 살피게 하였지만, 미처 소식이 돌아오기도 전에 손선지, 한재권 등과 함께 체포된 뒤 12월 13일에 5명의 교우와 함께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참수되어 66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그는 형장에 끌려가면서도 “오늘 우리는 천국으로 과거 보러 가는 날이다. 오늘은 정말 기뻐해야 할 날이다." 하며 진심으로 순교를 기뻐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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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염 가타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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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부인순교일: 1846-09-20관련성지: 옥사정철염은 경기도 수원(水原)의 교우 가정에서 태어나 포천의 어느 양반집 하녀로 들어갔는데, 주인집 가족 가운데 한 교우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20세 되던 해 동지날 미신 행위에 참여하라는 주인의 지시를 거부하였다가 혹독한 벌을 받았고, 이듬해 봄에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자 서울로 피신하여 교우들의 집에 몸붙여 살았다. 1845년에는 김대건 신부 집에 하녀로 들어갔고, 이듬해 김 신부가 체포되자 현석문 회장이 마련한 집에 숨어 있다가 7월 11일에 체포되었다. 9월 20일에 6명의 교우와 함께 30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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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병주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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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회장순교일: 1840-01-31관련성지: 당고개서울 명문 양반가에서 태어난 홍병주는 1801년 신유박해로 할아버지 홍낙민(洪樂敏)이 순교하자 아버지를 따라 충청도 서산으로 이사하여 그 곳에서 자랐다. 조상부터 지켜 온 신앙을 물려받아 독실한 신앙 생활을 하였으며, 동생 홍영주(洪永周)와 함께 충청도 내포 지방의 회장이 되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9월말 동생과 함께 체포되어 포청에서 몇 차례의 고문을 당한 뒤 형조로 이송되었는데, 친척인 형조판서는 인정상 직접 신문하지 않고 하관(下官)에게 모든 수단을 다 써서 홍병주, 영주 형제를 배교시키라고 명령하였다. 이에 홍병주는 가장 지독한 형벌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끝까지 버티어 냈고 결국 1840년 1월 31일 5명의 교우와 함께 당고개에서 참수형을 받아 42세의 나이로 동생보다 하루 먼저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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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막달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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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동정녀순교일: 1839-09-??관련성지: 옥사어려서 어머니 이 가타리나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한 조 막달레나는 외교인 친척들의 반대로 7, 8세경부터 교우 집안인 외가에서 살며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다. 18세 때 혼담이 오가자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하고는 혼담을 피해 서울로 가서 5, 6년을 지냈다. 그 뒤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외교인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죽어 가는 아이들에게 대세를 주는 등 열심히 교회일을 도왔다. 그러던 중 1838년 말 박해를 피해 어머니와 두 동생과 함께 서울로 올라가 살다가 1839년 6월에 체포되었다. 포도청에서 한 차례의 신문과 주리를 당한 뒤 옥으로 끌려간 조 막달레나는 3개월의 옥살이 끝에 염병으로 옥사, 순교하였다. 그의 나이 33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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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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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회장순교일: 1839-09-12관련성지: 옥사최경환은 충청도 홍주(洪州) 지방 다랫골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는데 그의 집안은 한국 교회의 창설 시대 때부터 천주교를 믿어 온 집안이었다. 어려서부터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고, 성장해서는 신앙 생활에 도움이 되는 곳을 찾아 다니다가 가족들을 설득하여 서울로 이사하여 살았다. 그러나 외교인들의 탄압 때문에 서울을 떠나 강원도 금성(金城), 경기도 부천을 거쳐 과천(果川)의 수리산에 정착하여 교우촌을 건설하였다. 1836년 아들 최양업(崔良業)을 나(모방) 신부에게 보내어 마카오에서 신학 공부를 하게 했다. 1839년 초에 회장으로 임명되었고, 이어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순교자의 유해를 거두어 안장하고 교우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돌보던 중 7월 31일 서울에서 내려온 포졸들에게 동리 교우와 가족 등 40여 명과 함께 체포되었다. 수리산에서 서울의 포청까지 끌려간 최경환은 2개월 동안 하루 걸러 형벌과 고문을 당하여 태장 340대, 곤장 110대를 맞았다. 9월 11일 최후로 곤장 25대를 맞고는 그 이튿날 옥사, 35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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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바르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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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6
신분 : 과부순교일 : 1839-05-27관련성지 : 옥사시골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김 바르바라는 13세경 서울로 올라와 교우 황 마리아의 집에서 식모로 생활하며 교리를 배워 신앙 생활을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동정으로 살고자 결심하였으나 혼기가 차자 부모의 강요를 이기지 못하고 외교인과 혼인하여 남매를 두었다. 혼인한 지 15년 만에 남편이 사망하자 딸 하나만을 데리고 신앙 생활에만 전념하였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3월 김 바르바라는 몸붙여 살던 집에서 집주인과 함께 체포되어 포청으로 끌려가 심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으나 용감히 신앙을 고백하였다. 3개월 옥살이 끝에 5월 27일 굶주림, 기갈, 염병 등으로 옥사함으로써 순교하였다. 그 때 나이는 35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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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선 토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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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농부순교일: 1866-03-30관련성지: 공주손자선은 충청도 홍주(洪州) 거더리 마을의 3대째 교우 가정에서 태어났다. 안 주교가 체포된 뒤 압수한 돈과 물건을 찾아가라는 기별을 받았으나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어, 손자선이 혼자서 물건들을 찾으러 덕산(德山) 관아로 갔다가 체포되었다. 관장은 손자선을 옥에 가두어 고문하며 배교를 강요했지만 굴하지 않자 그를 해미(海美)로 보냈다. 해미에서 두 다리가 부러질 만큼 심한 고문을 받고도 신앙을 지킨 손자선은 결국 공주(公州) 감영으로 이송되어 1866년 3월 30일에 교수형을 받아 23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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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간난 아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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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과부순교일: 1846-09-20관련성지: 옥사서울의 외교인 가정에서 태어난 이 아가타는 18세 때 혼인하였다가 3년 만에 과부가 되어 친정으로 돌아왔다. 이 때 외할머니의 권유로 교리를 배우고 유방제(劉方濟)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1846년 병오박해가 일어나자 현석문 회장이 마련한 집에 숨어 있다가 7월 11일에 현석문, 김임이, 정철염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9월 20일에 6명의 교우와 함께 33세의 나이로 교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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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원 아우구스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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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회장순교일: 1840-01-31관련성지: 당고개서울 중인 집안에서 태어난 박종원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매우 궁핍하게 살면서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다. 범(앵베르) 라우렌시오 주교가 입국한 뒤 회장직을 맡아 보며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교회 일에 헌신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피신해 있던 그는 체포의 위험을 무릅쓰고 옥에 갇힌 교우들과 연락하여 그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는 피신한 지 8개월 만인 10월 26일에 체포되었고, 이튿날 그의 아내 고순이(高順伊)도 체포되어 같은 옥에 갇히게 되었다. 박종원은 포청에서 아내와 함께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순교를 준비하였고 또 아내와 함께 혹형과 고문을 견디어 냈다. 1840년 1월 31일 5명의 교우와 함께 당고개에서 48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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