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페르 브르트니애르 유스토

Korean 103 Saints 103위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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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103 Saints

랑페르 브르트니애르 유스토

관리자 0 3455 0
신분 : 신부순교일 : 1866-03-07관련성지 : 새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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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병인 박해 때에 순교한 파리 외방 전교회 선교사인 백 신부는 프랑스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1864년에 사제가 되었다.

수품 직후 동료인 김 헨리코, 민 루가, 서 루도비코 신부와 함께 고국을 떠나 이듬해인 1865년 5월 조선에 입국하였다.

서울에 도착한 백 신부는 정의배(丁義培) 회장의 집에 머물며 한국말을 배워, 박해가 시작될 무렵에는 교우들에게 고해성사를 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는 정 회장이 체포된 다음 날인 1866년 2월 26일 장 주교의 하인이었던 이선이(李先伊)의 고발로 체포되어 갖은 문초와 형벌을 받았고, 3월 7일 새남터에서 28세의 나이로 장 주교와 함께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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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안드레아
관리자 0 0 0 8047 2017.01.16
신분 : 신부순교일 : 1846-09-16관련성지 : 새남터김대건은 1821년 충청도 솔뫼에서 천주교 신자 김제준 이냐시오와 고 우르술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굳센 성격과 진실한 신심을 보고 1836년 나 베드로(모방) 신부는 그를 신학생으로 뽑아 마카오로 유학 보냈다. 그는 6년 동안 신학 공부를 하고 1845년 8월 페레올 주교에게서 사제품을 받아 한국인 최초의 신부가 되었다.고국에 돌아온 김 신부는 서울과 용인 지방에서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1846년 음력 4월 주교의 명에 따라, 선교사들의 편지를 중국 배에 전하고 선교사들의 입국로를 개척하기 위하여, 황해도 지방으로 가게 되었다. 김 신부는 편지를 중국 배에 전하고 돌아오는 도중 순위도에서 관헌에게 체포되어 서울 좌포도청으로 이송되었다. 취조 중, 김 신부의 넓은 식견과 당당한 태도에 대관들은 그를 죽이기에는 국가적으로도 아깝다고 생각하였으나 후환을 입을 것이라는 영의정 권돈인의 주장대로 결국은 사형을 선고하였다. 김 신부의 처형은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의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다. 김 신부는 망나니들에게 `천주교인이 되어 내가 있을 곳에 오도록 하라.`는 말을 남기고 태연하게 칼을 받았다. 이 때 그의 나이 26세, 그의 목이 떨어지자 형장에는 큰 뇌성과 함께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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