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손 막달레나

Korean 103 Saints 103위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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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103 Saints

박봉손 막달레나

관리자 0 3064 0
신분 : 과부순교일 : 1839-09-26관련성지 : 서소문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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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태어난 박봉손은 15세쯤에 시골로 출가하여 딸 하나를 두었으나 남편과 시부모를 차례로 여의고 친정으로 돌아왔는데, 계모 김 체칠리아의 권고와 가르침으로 천주교에 입교하게 되었다. 친정에는 여러 교우 가족들이 모여 살고 있어 늘 번잡하였으나 박봉손은 그런 가운데에서도 궂은 일과 천한 일을 도맡아 하였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7월초 외삼촌과 함께 체포되었다. 박봉손은 형관에게 “주님을 위하여 죽고자 여기까지 온 것이니 국법대로 죽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마침내 9월 26일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니 그의 나이 44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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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보 프로타시오
관리자 0 0 0 21945 2017.01.16
신분 : 공인순교일 : 1839-05-20관련성지 : 포청옥정국보는 원래 개성(開城)의 유명한 양반 가문에서 출생하였으나 벼슬을 하던 조부가 죄를 짓자 부친과 함께 상민으로 신분을 감추고 상경하여 선공감(線工監)에서 일하며 미천하게 살았다. 30세쯤 천주교를 알게 되자 곧 입교하여 유방제 신부에게 세례성사를 받았고, 그 후로는 홍살문 근처에서 성사를 받으러 상경하는 시골 교우들을 돌보았는데 가난과 병에 시달리면서도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인내와 극기의 신앙 자세를 잃지 않아 모든 교우의 귀감이 되었다. 기해박해가 일어난 1839년 4월(음력 3월)에 밀고되어 아내와 함께 체포되었는데 포청의 형벌과 고문은 참아 냈으나 형조에서는 참아 내지 못하고 배교하였다. 그러나 석방되자마자 배교한 것을 뉘우치고 형조에 들어가 배교를 취소하며 다시 체포해 달라고 간청하였고, 그것이 거절당하자 5월 12일(음력 3월 그믐) 고문의 여독과 염병으로 들것에 실린 채 형조판서가 다니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형조판서에게 직접 자신을 체포해 줄 것을 요구, 그 날로 체포되어 5월 20일(음력 4월 7일) 포청에서 곤장 25대를 맞고 이튿날 새벽에 순교하였다. 그의 나이 41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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