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뇌 시므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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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103 Saints

베르뇌 시므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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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 : 제4대조선교구장주교순교일 : 1866-03-07관련성지 : 새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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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뇌’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장 시므온 주교는 조선교구 제4대 교구장이며 한국명은 장경일(張敬一)이다.

프랑스의 르망 교구 출신인 장 주교는 1837년에 사제가 되었고 동양의 선교 지역인 베트남으로 건너갔다가 2년 동안 옥살이를 치렀다. 그 뒤 만주 요동 지역에서 10여 년 동안 활동하였고, 조선교구 제4대 교구장으로 임명되어 1856년 3월에 서울에 도착하였다. 깊은 신심과 신학을 겸비한 장 주교는 이 땅에서 10년 동안 사목 활동을 하면서 배론에 한국 최초의 신학교를 설립하고 서울에 인쇄소 두 곳을 설립하는 업적을 남겼다. 또한 당뇨병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사목에 힘쓰면서 여러 지역의 교우들을 열심히 돌보았다. 1866년 2월 23일에 체포되어 감옥에서 앞무릎에 곤장 열 대를 맞고도 고통스러운 기색을 조금도 보이지 않았으며, 3월 7일 백 유스토, 서 루도비코, 김 헨리코 신부와 함께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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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안드레아
관리자 0 0 0 8035 2017.01.16
신분 : 신부순교일 : 1846-09-16관련성지 : 새남터김대건은 1821년 충청도 솔뫼에서 천주교 신자 김제준 이냐시오와 고 우르술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굳센 성격과 진실한 신심을 보고 1836년 나 베드로(모방) 신부는 그를 신학생으로 뽑아 마카오로 유학 보냈다. 그는 6년 동안 신학 공부를 하고 1845년 8월 페레올 주교에게서 사제품을 받아 한국인 최초의 신부가 되었다.고국에 돌아온 김 신부는 서울과 용인 지방에서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1846년 음력 4월 주교의 명에 따라, 선교사들의 편지를 중국 배에 전하고 선교사들의 입국로를 개척하기 위하여, 황해도 지방으로 가게 되었다. 김 신부는 편지를 중국 배에 전하고 돌아오는 도중 순위도에서 관헌에게 체포되어 서울 좌포도청으로 이송되었다. 취조 중, 김 신부의 넓은 식견과 당당한 태도에 대관들은 그를 죽이기에는 국가적으로도 아깝다고 생각하였으나 후환을 입을 것이라는 영의정 권돈인의 주장대로 결국은 사형을 선고하였다. 김 신부의 처형은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의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다. 김 신부는 망나니들에게 `천주교인이 되어 내가 있을 곳에 오도록 하라.`는 말을 남기고 태연하게 칼을 받았다. 이 때 그의 나이 26세, 그의 목이 떨어지자 형장에는 큰 뇌성과 함께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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