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율리에타

Korean 103 Saints 103위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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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103 Saints

김 율리에타

관리자 0 3374 0
신분 : 궁녀순교일 : 1839-09-26관련성지 : 서소문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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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 순교자인 김 율리에타는 시골에서 태중 교우로 태어났다.

부모와 함께 서울로 이사와 살면서, 17세 때 혼담이 있었으나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스스로 머리카락을 다 잘라 버렸다.

1801년 신유박해 때 부모는 냉담하여 낙향하였으나, 김 율리에타는 혼자 서울에 남아 있다가 궁녀로 뽑혀 10년 동안 궁에서 살았다.

그러나 궁에서는 신앙 생활을 할 수가 없어 궁을 떠나 교우들의 집에서 일을 해 주며 품삯을 모아 집을 마련하고, 혼자 살면서 신앙 생활을 하였다. 성품이 강직하고 또 늘 언행에 조심하였으며 그래서 교우들로부터 ‘절대로 나쁜 짓 하지 않을 여인’이라고 불렸다. 기해박해가 있던 1839년 7월에 체포되어, 혹형과 고문을 이겨 낸 끝에 9월 26일 8명의 교우와 함께 56세의 나이로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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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집 요셉
관리자 0 0 0 3645 2017.01.16
신분 : 환부순교일 : 1839-05-26관련성지 : 포청옥서울에서 태어나 한강변 서강(西江)에서 살았던 장성집은 30세경에 교리를 배우고 예비신자로 열심히 생활하였다.그러나 점차 교리에 회의를 품어 신앙 생활을 중지하고 세속 향락과 재산 모으는 일에 몰두하였다.교우들의 권면과 가르침으로 회개한 뒤로는 자신의 죄를 보속하고 세속의 유혹을 피하기 위하여 방에 틀어박혀 추위와 굶주림을 무릅쓰고 기도와 성서 연구에만 전념하였다. 이러한 태도에 집안 어른들이 “예전처럼 자유롭게 드나들며 생활하는 것이 너의 신앙 생활에 무슨 방해가 되느냐?" 하고 만류하자 장성집은 “제가 전에 지은 죄는 모두 욕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다시 그런 죄를 짓는 것보다는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는 편이 더 낫습니다." 하며 자신의 뜻이 변할 수 없음을 밝혔고, 마침내 1838년 4월 세례와 견진 성사를 받았다. 굳은 결심으로 신앙에 귀의한 장성집은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순교할 목적으로 자수를 결심하였다가 대부의 만류로 자수하지 않았지만 며칠 뒤인 4월 6일 체포되었다.중병이 들어 포졸들이 가마에 태우려 하였으나 장성집은 포청까지 걸어서 갔다. 포청에서도 신문하는 형관에게 맑은 정신으로 교리를 자세히 설명하고 혹형과 고문을 참아 냈다. 그 뒤 장성집은 5월 26일 마지막으로 치도곤 25대를 맞고 옥사함으로써 순교하였다. 그 때 그의 나이 54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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