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길 아우구스티노

Korean 103 Saints 103위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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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103 Saints

유진길 아우구스티노

관리자 0 3219 0
신분 : 회장, 역관순교일 : 1839-09-22관련성지 : 서소문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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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 당시 정3품 당상 역관(當上譯官)의 높은 벼슬에 있었던 유진길은 서울의 유명한 역관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고 특히 철학과 종교 문제에 관심을 갖고 10년 동안 불교와 도교를 깊이 연구하였으나 진리를 찾지 못하여 방황하고 있던 중, 1823년 우연히 「천주실의」의 일부분을 구해 읽고는 사방에 수소문한 끝에 천주교 진리를 터득하고 곧 입교하였다. 1824년 동지사(冬至使)의 수석 역관으로 북경에 가서 세례성사를 받았다. 그 뒤 유진길은 북경 교회와 연락을 담당하며 8차례에 걸쳐 북경을 왕래하면서 정하상, 조신철과 함께 성직자 영입 운동을 전개하였다. 마침내는 교황에게 성직자의 파견을 간청하는 편지를 북경 주교에게 전달하였고 그 결과 유방제(劉方濟) 신부, 나(모방) 신부, 정(샤스탕) 신부, 범(앵베르) 주교 등이 입국하게 되었다. 그는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7월 17일 체포되었다. 포청에서 주교와 신부들의 은신처를 대라며 매우 가혹한 형벌을 받았으나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9월 22일 정하상과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49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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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안드레아
관리자 0 0 0 8040 2017.01.16
신분 : 신부순교일 : 1846-09-16관련성지 : 새남터김대건은 1821년 충청도 솔뫼에서 천주교 신자 김제준 이냐시오와 고 우르술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굳센 성격과 진실한 신심을 보고 1836년 나 베드로(모방) 신부는 그를 신학생으로 뽑아 마카오로 유학 보냈다. 그는 6년 동안 신학 공부를 하고 1845년 8월 페레올 주교에게서 사제품을 받아 한국인 최초의 신부가 되었다.고국에 돌아온 김 신부는 서울과 용인 지방에서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1846년 음력 4월 주교의 명에 따라, 선교사들의 편지를 중국 배에 전하고 선교사들의 입국로를 개척하기 위하여, 황해도 지방으로 가게 되었다. 김 신부는 편지를 중국 배에 전하고 돌아오는 도중 순위도에서 관헌에게 체포되어 서울 좌포도청으로 이송되었다. 취조 중, 김 신부의 넓은 식견과 당당한 태도에 대관들은 그를 죽이기에는 국가적으로도 아깝다고 생각하였으나 후환을 입을 것이라는 영의정 권돈인의 주장대로 결국은 사형을 선고하였다. 김 신부의 처형은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의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다. 김 신부는 망나니들에게 `천주교인이 되어 내가 있을 곳에 오도록 하라.`는 말을 남기고 태연하게 칼을 받았다. 이 때 그의 나이 26세, 그의 목이 떨어지자 형장에는 큰 뇌성과 함께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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