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우 요한

Korean 103 Saints 103위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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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103 Saints

이문우 요한

관리자 0 3633 0
신분 : 복사순교일 : 1840-02-01관련성지 : 당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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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천’으로도 불렸던 이문우는 경기도 이천(利川)의 양반 교우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5세 부모를 여의고 서울의 오 바르바라라는 여교우에게 입양되어 성장하였다. 독신으로 살아가고자 하였으나 양모의 뜻에 순종하여 혼인하였고, 몇 년 뒤 아내와 두 자녀가 세상을 떠나자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범 라우렌시오(앵베르) 주교에게 회장으로 임명되어 전교에 힘쓰고 범 주교를 도와 지방을 순회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로 많은 교우들이 체포되자 사방에서 희사를 모아 옥에 갇힌 교우들을 돕고 박해 상황을 주교와 신부들에게 보고하던 중 11월 11일에 체포되었다. (성인은 교우들을 데리고 새남터 형장으로 가서 성 앵베르 주교, 성 모방 신부, 성 샤스탕 신부의 시신을 모셔다 노고산에 안장하였고, 그 후 성인도 체포되었다.) 이 때에 “주님께서 특별한 은총으로 나를 부르시니 어찌 그분의 부르심에 대답하지 않을 수 있는가?" 하며 오히려 당황하는 포졸들을 재촉하여 포청으로 갔다. 포청과 형조에서 모진 고문을 참아 낸 끝에 1840년 2월 1일 당고개에서 2명의 교우와 함께 31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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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집 요셉
관리자 0 0 0 3666 2017.01.16
신분 : 환부순교일 : 1839-05-26관련성지 : 포청옥서울에서 태어나 한강변 서강(西江)에서 살았던 장성집은 30세경에 교리를 배우고 예비신자로 열심히 생활하였다.그러나 점차 교리에 회의를 품어 신앙 생활을 중지하고 세속 향락과 재산 모으는 일에 몰두하였다.교우들의 권면과 가르침으로 회개한 뒤로는 자신의 죄를 보속하고 세속의 유혹을 피하기 위하여 방에 틀어박혀 추위와 굶주림을 무릅쓰고 기도와 성서 연구에만 전념하였다. 이러한 태도에 집안 어른들이 “예전처럼 자유롭게 드나들며 생활하는 것이 너의 신앙 생활에 무슨 방해가 되느냐?" 하고 만류하자 장성집은 “제가 전에 지은 죄는 모두 욕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다시 그런 죄를 짓는 것보다는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는 편이 더 낫습니다." 하며 자신의 뜻이 변할 수 없음을 밝혔고, 마침내 1838년 4월 세례와 견진 성사를 받았다. 굳은 결심으로 신앙에 귀의한 장성집은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순교할 목적으로 자수를 결심하였다가 대부의 만류로 자수하지 않았지만 며칠 뒤인 4월 6일 체포되었다.중병이 들어 포졸들이 가마에 태우려 하였으나 장성집은 포청까지 걸어서 갔다. 포청에서도 신문하는 형관에게 맑은 정신으로 교리를 자세히 설명하고 혹형과 고문을 참아 냈다. 그 뒤 장성집은 5월 26일 마지막으로 치도곤 25대를 맞고 옥사함으로써 순교하였다. 그 때 그의 나이 54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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