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스탕 야고보

Korean 103 Saints 103위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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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103 Saints

샤스탕 야고보

관리자 0 3228 0
신분 : 신부순교일 : 1839-09-21관련성지 : 새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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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이름은 정 아각백(鄭牙各伯), 두 번째로 조선에 입국한 서양인 선교사이다.

1827년 1월 파리 외방 전교회 사제가 된 정(샤스탕) 신부는 1836년 12월 조선 입국에 성공하여 곧 한국말을 배우는 한편 나 신부와 함께 각 지방에 퍼져 있는 교우들을 찾아 성사를 거행하였다. 당시의 서양인 성직자들은 상제 옷으로 변장하고 험한 산길을 헤매야 했고, 소금에 절인 야채 따위로 주린 배를 채워야 했으며, 밤새도록 고해성사를 주고 미사를 드린 다음 날 새벽에는 또 다른 마을로 길을 재촉해야만 했다. 그들은 이러한 고난을 감수해 가며 오직 복음 전파에만 힘썼던 것이다. 1839년에 일어난 기해박해는 이 땅을 수많은 천주교인들의 피로 물들였고 정 신부도 범 주교, 나 신부와 함께 그 해 9월 새남터에서 순교의 월계관을 쓰게 되었다. 그의 나이는 35세, 이 땅에 들어온 지 2년 9개월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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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혁 다미아노
관리자 0 0 0 3535 2017.01.16
신분 : 회장순교일 : 1839-05-24관련성지 : 서소문 밖서울에서 태어난 남명혁은 젊어서 무뢰배들과 어울리며 매우 난폭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였으나 30세경 입교한 뒤로 모든 세속의 나쁜 일과 손을 끊고 오직 신앙 생활에만 전념하였다. 유방제(劉方濟)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더욱 열심히 살아 이광헌과 함께 회장으로 임명되어 예비신자를 모아 가르치고 병약자들을 방문하였으며 또 ‘성의회`(聖衣會)라는 신심 단체에 가입하여 신부를 도와 교회 일을 열심히 하였다. 그는 1839년 기해박해 초 한 예비신자의 밀고로 4월 7일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체포되었는데 이 때 그의 집에서 제의류(祭衣類), 경본(經本), 주교관(主敎冠) 등이 발견되어 포청과 형조의 관원들에게 매우 혹독한 형벌을 당했다. 그러나 남명혁은 모든 고통을 참아 냈고, 함께 체포된 아내에게 “이 세상은 잠시 머무는 곳이고 우리의 본향은 천국이니 주님을 위하여 죽어서 광명한 곳에서 영원히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고 격려의 편지를 써 보낸 뒤 5월 24일 이광헌 등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평소 ‘성의회의 치명자 남 다미아노’로 불리기를 바랐던 남명혁은 한창나이인 38세에 자신의 뜻대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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