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경 안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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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103 Saints

정화경 안드레아

관리자 0 3308 0
신분 : 회장순교일 : 1840-01-23관련성지 : 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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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정산(定山)의 부유한 교우 가정에서 태어난 정화경은 어려서부터 열심한 신앙 생활을 하였고, 장성해서는 더욱 자유로운 신앙 생활을 하고자 고향을 떠나 수원 근처로 이사해 살았다. 이 곳에서 회장을 맡아 보며 자기 집을 공소로 내놓았고 또 서울을 왕래하며 힘 자라는 데까지 교회 일을 도왔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정화경은 매일같이 교우들을 찾아 위로하고 격려하며 순교의 마음을 북돋아 주었고, 박해를 피해 내려온 범 라우렌시오 주교에게 은신처를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그해 8월 주교를 찾고 있던 밀고자 김순성(金順性, 일명 여상)에게 속아 주교의 은신처를 알려 주었다. 서양 신부를 잡으려던 김순성 일당은 정화경을 이용하여 신부들을 체포하려고 하였으나 그들의 계략을 눈치챈 정화경은 도망하여 신부를 찾아가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치고 고해성사를 보았다. 9월에 체포된 정화경은 혹형과 고문을 이겨 내고 이듬해 1월 23일 33세의 나이로 포청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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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삼 요한
관리자 0 0 0 3333 2017.01.17
신분: 승지순교일: 1866-03-07관련성지: 서소문 밖남종삼은 충청도 충주(忠州)에서 태어나 남상교(南尙敎)의 양자가 되었다. 1843년 문과에 급제하고 1846년 경상도 영해 군수가 된 남종삼은 항상 재물과 부녀자를 멀리하고 청백리(淸白吏)로서 의덕과 겸손의 청빈한 생활을 하여 모든 이들에게 존경을 받았으나 동료 관리들에게는 시기와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관직에 따르는 미신행위로 인해 한때 교회를 떠난 적도 있었으나 다시 교회로 돌아와서는 신앙생활에만 전념했다.프랑스인 선교사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고, 1863년 대원군의 명으로 정3품 승지(承旨)가 되어 왕족 자제의 교육을 맡았다. 그러던 중 1866년 러시아인들이 국경을 넘어와 통상을 요구하자 조정에서 문제거리로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때 남종삼은 홍봉주(洪鳳周), 이유일(李惟一)등과 논의 하여 영불(英佛) 동맹을 맺어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자는 소위 방아책(防俄策)을 대원군에게 건의했다. 대원군과 장 (베르뇌) 주교와의 면담이 이루어지는 듯 했으나 척신들의 압력, 장 주교와의 연락 지연, 중국에서의 천주교 박해 소문 등으로 실패했을 뿐더러 태도가 돌변한 대원군에 의해 병인 대박해가 일어나게 되었다.1866년 2월 고향인 제천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남종삼은 중도에서 자신의 수배령이 내려졌다는 소식을 듣고 경기도 고양군 축베더리로 피신했으나 2월 25일 주교의 하인 이선이(李先伊…
정국보 프로타시오
관리자 0 0 0 21884 2017.01.16
신분 : 공인순교일 : 1839-05-20관련성지 : 포청옥정국보는 원래 개성(開城)의 유명한 양반 가문에서 출생하였으나 벼슬을 하던 조부가 죄를 짓자 부친과 함께 상민으로 신분을 감추고 상경하여 선공감(線工監)에서 일하며 미천하게 살았다. 30세쯤 천주교를 알게 되자 곧 입교하여 유방제 신부에게 세례성사를 받았고, 그 후로는 홍살문 근처에서 성사를 받으러 상경하는 시골 교우들을 돌보았는데 가난과 병에 시달리면서도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인내와 극기의 신앙 자세를 잃지 않아 모든 교우의 귀감이 되었다. 기해박해가 일어난 1839년 4월(음력 3월)에 밀고되어 아내와 함께 체포되었는데 포청의 형벌과 고문은 참아 냈으나 형조에서는 참아 내지 못하고 배교하였다. 그러나 석방되자마자 배교한 것을 뉘우치고 형조에 들어가 배교를 취소하며 다시 체포해 달라고 간청하였고, 그것이 거절당하자 5월 12일(음력 3월 그믐) 고문의 여독과 염병으로 들것에 실린 채 형조판서가 다니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형조판서에게 직접 자신을 체포해 줄 것을 요구, 그 날로 체포되어 5월 20일(음력 4월 7일) 포청에서 곤장 25대를 맞고 이튿날 새벽에 순교하였다. 그의 나이 41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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