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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지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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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농부순교일: 1866-12-13관련성지: 숲정이‘원조’로도 불리는 정원지는 충청도 진잠(鎭岑) 교우 집안에서 태어나 전주 부근의 수널마루에서 살다가 금구 지역으로 이사하였고, 1866년에는 전주 성지동 조화서의 집에 셋방을 얻어 노모, 형, 아내와 함께 살고 있었다. 조화서가 체포되던 1866년 12월 5일 정원지는 산에 피신해 있었는데, 동정을 살피러 내려온 사이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전주 감영 전면옥에 갇혔다. 지극한 효성으로 노모를 생각하며 여러 번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함께 체포된 성지동 교우들의 위로와 권면에 힘입어 끝까지 혹형과 고문을 참아 냈다. 마침내 12월 13일 가족에게 “우리는 천국에서 서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제 죽음을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라는 편지를 남기고,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5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21세의 젊은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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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삼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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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승지순교일: 1866-03-07관련성지: 서소문 밖남종삼은 충청도 충주(忠州)에서 태어나 남상교(南尙敎)의 양자가 되었다. 1843년 문과에 급제하고 1846년 경상도 영해 군수가 된 남종삼은 항상 재물과 부녀자를 멀리하고 청백리(淸白吏)로서 의덕과 겸손의 청빈한 생활을 하여 모든 이들에게 존경을 받았으나 동료 관리들에게는 시기와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관직에 따르는 미신행위로 인해 한때 교회를 떠난 적도 있었으나 다시 교회로 돌아와서는 신앙생활에만 전념했다.프랑스인 선교사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고, 1863년 대원군의 명으로 정3품 승지(承旨)가 되어 왕족 자제의 교육을 맡았다. 그러던 중 1866년 러시아인들이 국경을 넘어와 통상을 요구하자 조정에서 문제거리로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때 남종삼은 홍봉주(洪鳳周), 이유일(李惟一)등과 논의 하여 영불(英佛) 동맹을 맺어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자는 소위 방아책(防俄策)을 대원군에게 건의했다. 대원군과 장 (베르뇌) 주교와의 면담이 이루어지는 듯 했으나 척신들의 압력, 장 주교와의 연락 지연, 중국에서의 천주교 박해 소문 등으로 실패했을 뿐더러 태도가 돌변한 대원군에 의해 병인 대박해가 일어나게 되었다.1866년 2월 고향인 제천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남종삼은 중도에서 자신의 수배령이 내려졌다는 소식을 듣고 경기도 고양군 축베더리로 피신했으나 2월 25일 주교의 하인 이선이(李先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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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우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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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복사순교일: 1840-02-01관련성지: 당고개‘경천’으로도 불렸던 이문우는 경기도 이천(利川)의 양반 교우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5세 부모를 여의고 서울의 오 바르바라라는 여교우에게 입양되어 성장하였다. 독신으로 살아가고자 하였으나 양모의 뜻에 순종하여 혼인하였고, 몇 년 뒤 아내와 두 자녀가 세상을 떠나자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범 라우렌시오(앵베르) 주교에게 회장으로 임명되어 전교에 힘쓰고 범 주교를 도와 지방을 순회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로 많은 교우들이 체포되자 사방에서 희사를 모아 옥에 갇힌 교우들을 돕고 박해 상황을 주교와 신부들에게 보고하던 중 11월 11일에 체포되었다. (성인은 교우들을 데리고 새남터 형장으로 가서 성 앵베르 주교, 성 모방 신부, 성 샤스탕 신부의 시신을 모셔다 노고산에 안장하였고, 그 후 성인도 체포되었다.) 이 때에 “주님께서 특별한 은총으로 나를 부르시니 어찌 그분의 부르심에 대답하지 않을 수 있는가?" 하며 오히려 당황하는 포졸들을 재촉하여 포청으로 갔다. 포청과 형조에서 모진 고문을 참아 낸 끝에 1840년 2월 1일 당고개에서 2명의 교우와 함께 31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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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경련 베네딕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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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여회장순교일: 1839-12-29관련성지: 서소문 밖서울의 역관(譯官) 집안에서 태어난 현경련은 어려서 세례성사를 받았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아버지 현계흠(玄啓欽)이 황사영(黃嗣永)의 백서(帛書) 사건과 관련되어 순교한 뒤 어머니를 따라 자주 이사다니며 살았다. 17세 때 최창현(崔昌顯)의 아들과 혼인하였으나 3년 만에 남편을 여의고는 친정으로 돌아와 살았다. 규칙적인 독서와 기도 생활을 하였고, 여회장직을 맡아 보며 교회 일에 적극 헌신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현경련은 잠시 피신했었으나 6월에 체포되었다. 포청에서 주교의 피신처를 알아 내려는 형리들로부터 동생 현석문(玄錫文)과 함께 혹형을 당하였으나 모두 참아 냈다. 옥중에서 동생에게 신망애(信望愛) 삼덕에 관한 편지를 써 보내 교우들을 감동시켰다. 12월 29일 현경련은 6명의 교우와 함께 46세의 나이로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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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관 세바스티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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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회장순교일: 1839-09-26관련성지: 서소문 밖서울의 양반 교우 가정에서 태어난 남이관은 18세 때 교우인 조증이(趙曾伊)와 혼인하였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아버지와 함께 체포된 그는 경상도 단성(丹城)으로 귀양갔다가 30년 만인 1832년에 풀려 나와 이천(利川)에 있는 처가에서 살았다. 그 뒤 상경하여 처가의 인척인 정하상(丁夏祥)의 신부 영입 운동을 도와 1833년 중국인 유방제(劉方濟) 신부를 입국시키고, 그에게서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받은 뒤 회장으로 임명되어 열심히 교회 일을 도왔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다시 처가가 있는 이천으로 내려가 숨었으나 9월 16일에 체포되었다. 김제준과 함께 국사범으로 간주되어 의금부로 이송되었고, 여기에서 유진길(劉進吉), 정하상과 함께 신문을 받고, 다시 형조로 이송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 9월 26일 남이관은 8명의 교우와 함께 60세의 나이로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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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렬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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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공인순교일: 1839-07-20관련성지: 서소문 밖‘경삼’으로도 불렸던 이광렬은 명문 양반인 광주 이씨의 후예로 태어났다. 22세쯤 형 이광헌과 함께 입교한 뒤 헌신적으로 교회 일에 참여하였으며, 정하상(丁夏祥), 조신철(趙信喆), 유진길(劉進吉) 등과 함께 북경을 왕래하며 나 베드로(모방) 신부, 정 야고보(샤스탕) 신부 등을 맞아들였다. 북경에서 세례성사를 받고 귀국한 뒤로는 육식을 끊고, 극기와 인내로 동정을 지키며 생활하였다. 1839년 4월 7일 체포되어 혹형과 고문을 받았으나 모두 이겨 내고, 7월 20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45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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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기 아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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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6
신분 : 과부순교일 : 1839-05-24관련성지 : 서소문 밖김아기는 외교인 가정에서 태어나 전혀 신앙을 모르고 살다가 뒤늦게 천주교를 알게 되어 교리를 배웠다. 기억력이 나빠 12단(十二端)도 제대로 외우지 못하였지만 하느님을 알고 믿고자 하는 열의는 대단하였다. 이렇게 열과 성을 다하여 교리를 배우던 중 1836년 10월 김업이(金業伊), 한아기(韓阿只) 등과 함께 천주교 서적을 숨긴 죄로 체포되었다. 포청에서 김아기는 “나는 오직 예수, 마리아밖에 모릅니다." 하며 항구하게 신앙을 고백하였고, 혹형과 고문을 이겨 낸 다음 형조로 이송되었다. 형조에 갇혀 있던 교우들은 예수, 마리아 밖에 모르는 김아기가 왔다고 반갑게 맞아 주었다.그 후 형조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김아기는 형집행의 유예로 3년을 옥살이한 끝에 옥중에서 대세를 받고 1839년 5월 24일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그 때 나이는 53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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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권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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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회장순교일: 1866-12-13관련성지: 숲정이한때 ‘원서’라고도 알려졌던 한재권은 충청도 진잠(鎭岑)의 교우 집안에서 태어나 부모를 본받아 독실한 신앙 생활을 하였고 진잠 지역 회장이 되었다. 박해를 피해 전주 대성동으로 이사한 다음에는 직책 없이 교회 일을 하였다. 1866년 12월 5일 손선지, 정문호 등과 함께 체포되자 그의 아버지는 친구를 통해 아들이 석방되도록 교섭하는 한편 감옥을 찾아와 배교하라고 간청하였지만, 한재권은 끝내 아버지의 간청을 거절하고 12월 13일 숲정이에서 31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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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외 루도비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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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신부순교일: 1866-03-07관련성지: 새남터‘볼리외’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서 루도비코 신부의 한국명은 서몰례(徐沒禮)이다. 서 신부는 1840년 프랑스 보르도 교구에서 태어나 1864년에 사제품을 받고, 이듬해에 백, 김, 민 신부와 함께 충청도 내포 지역으로 들어왔다. 그는 고해성사를 줄 만큼 한국말을 배운 뒤 공주 지방의 전교를 맡았지만, 임지에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할 겨를도 없이 박해를 맞았다. 서 신부는 장 주교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경기도 광주 근처의 교우 집에 숨어 있었지만 1866년 2월 27일에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 그는 모진 고문을 잘 참아 내었고 여러 질문에도 한국말이 서투르다는 핑계를 대며 대답을 회피하였다. 마침내 그 해 3월 7일에 동료 신부들과 함께 새남터에서 참수되니 그의 나이 26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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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주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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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회장순교일: 1840-02-01관련성지: 당고개명문 양반의 후예로 서울에서 태어난 홍영주는 충청도 내포(內浦) 지방의 여사울에서 자랐다. 대대로 이어온 신앙을 이어받아 독실한 신앙 생활을 하였고, 형 홍병주(洪秉周)와 함께 충청도 내포 지방의 회장으로 교회 일에 헌신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고 서양 신부들이 체포된 뒤 9월 말에 이르러 홍영주는 형과 함께 서양 신부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죄로 체포되었다. 1840년 2월 1일, 하루 먼저 순교한 형의 뒤를 따라 2명의 교우와 함께 당고개에서 39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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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이 막달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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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과부순교일: 1839-12-29관련성지: 서소문 밖외교인 가정에서 태어난 한영이는 혼기에 이르러 권 진사(進士)라는 양반의 후처로 들어가 딸 권진이(權珍伊)를 두었고, 남편이 대세를 받고 죽으면서 천주교를 믿으라는 유언을 남기자 딸과 함께 입교하였다. 그 뒤 신앙 생활을 하고자 딸과 함께 집을 나와 교우들 집에 몸붙여 살다가 1839년 7월 17일 딸과 딸의 친구인 이경이(李瓊伊)와 함께 체포되었다. 12월 29일 6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그의 나이 56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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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계임 막달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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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부인순교일: 1839-09-26관련성지: 서소문 밖경기도 용인(龍仁)에서 태어난 허계임은 시누이 이매임(李梅任)을 통하여 천주교를 알게 되어 이정희(李貞喜)와 영희(英喜) 두 딸과 함께 입교하였다. 1839년 3월, 남명혁(南明赫)과 이광헌(李光獻)의 어린 자녀들이 혹형과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켰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시누이와 두 딸 그리고 김성임(金成任), 김 루치아 등과 순교를 결심하고 4월 11일 남명혁의 집을 지키던 포졸에게 묵주를 내보이며 자수하였다. 허계임은 포청과 형조에서 배교를 강요하는 여러 차례의 형문을 당하였으나 다 이겨 내고, 9월 26일 67세의 나이로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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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금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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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6
신분 : 과부순교일 : 1839-07-20관련성지 : 서소문 밖서울에서 태중 교우로 태어난 김장금은 어려서부터 독실한 신앙 생활을 하였고, 중년에 이르러 과부가 되자 노모와 함께 이광렬과 친하게 지냈다.두 집은 사이가 좋고 화목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김장금은 1839년 4월 이광렬, 이광헌 일가와 함께 체포되어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당하였으나 끝까지 신앙을 지켰고, 마침내 7월 20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51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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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보 프로타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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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6
신분 : 공인순교일 : 1839-05-20관련성지 : 포청옥정국보는 원래 개성(開城)의 유명한 양반 가문에서 출생하였으나 벼슬을 하던 조부가 죄를 짓자 부친과 함께 상민으로 신분을 감추고 상경하여 선공감(線工監)에서 일하며 미천하게 살았다. 30세쯤 천주교를 알게 되자 곧 입교하여 유방제 신부에게 세례성사를 받았고, 그 후로는 홍살문 근처에서 성사를 받으러 상경하는 시골 교우들을 돌보았는데 가난과 병에 시달리면서도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인내와 극기의 신앙 자세를 잃지 않아 모든 교우의 귀감이 되었다. 기해박해가 일어난 1839년 4월(음력 3월)에 밀고되어 아내와 함께 체포되었는데 포청의 형벌과 고문은 참아 냈으나 형조에서는 참아 내지 못하고 배교하였다. 그러나 석방되자마자 배교한 것을 뉘우치고 형조에 들어가 배교를 취소하며 다시 체포해 달라고 간청하였고, 그것이 거절당하자 5월 12일(음력 3월 그믐) 고문의 여독과 염병으로 들것에 실린 채 형조판서가 다니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형조판서에게 직접 자신을 체포해 줄 것을 요구, 그 날로 체포되어 5월 20일(음력 4월 7일) 포청에서 곤장 25대를 맞고 이튿날 새벽에 순교하였다. 그의 나이 41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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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서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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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농부순교일: 1866-12-13관련성지: 숲정이‘재덕’으로도 불렸던 이명서는 충청도 출신으로, 박해를 피해 여러 곳을 유랑하다가 병인 박해가 일어나기 몇 해 전부터 전주 성지동에 정착하였다. 1866년 12월 5일 포졸들이 성지동을 습격하자 이명서는 조화서의 피신 권유를 뿌리치고 병든 몸으로 체포되어 전주 감영으로 끌려갔다. 관장은 병자인 이명서를 배교시키기 쉬울 것으로 생각하여 가장 먼저 신문하고 혹형과 고문으로 강요하였지만, 그는 배교를 거부하고 함께 체포된 교우들과 열심히 기도하며 순교를 준비하였다. 12월 13일 5명의 교우와 함께 숲정이에서 46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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