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임이 데레사

Korean 103 Saints 103위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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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103 Saints

김임이 데레사

관리자 0 3345 0
신분 : 동정녀순교일 : 1846-09-20관련성지 : 포청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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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 순교자 김임이는 서울의 교우 가정에서 태어나 7세 때 이미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한 뒤 신앙 생활에 전념하였다.

20세 때 아버지를 여읜 뒤 오빠와 함께 친척들의 집을 전전하였고,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난 뒤 이문우의 양모 오 바르바라의 집에서 5년 동안 살다가 1845년 김대건 신부의 집에 하녀로 들어갔다. 이듬해 5월 김 신부가 체포되자 당시 회장이었던 현석문은 김 신부의 집에 남아 있던 여교우들을 새 집으로 피신시켰는데, 7월 11일에 포졸들이 새 집에 들이닥쳤다. 그리하여 현석문, 이 아가타, 정철염 등과 함께 체포된 그는 9월 20일, 매를 심하게 맞아 거의 반죽음이 된 상태로 포청에서 6명의 교우와 함께 교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그의 나이 36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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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안드레아
관리자 0 0 0 7938 2017.01.16
신분 : 신부순교일 : 1846-09-16관련성지 : 새남터김대건은 1821년 충청도 솔뫼에서 천주교 신자 김제준 이냐시오와 고 우르술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굳센 성격과 진실한 신심을 보고 1836년 나 베드로(모방) 신부는 그를 신학생으로 뽑아 마카오로 유학 보냈다. 그는 6년 동안 신학 공부를 하고 1845년 8월 페레올 주교에게서 사제품을 받아 한국인 최초의 신부가 되었다.고국에 돌아온 김 신부는 서울과 용인 지방에서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1846년 음력 4월 주교의 명에 따라, 선교사들의 편지를 중국 배에 전하고 선교사들의 입국로를 개척하기 위하여, 황해도 지방으로 가게 되었다. 김 신부는 편지를 중국 배에 전하고 돌아오는 도중 순위도에서 관헌에게 체포되어 서울 좌포도청으로 이송되었다. 취조 중, 김 신부의 넓은 식견과 당당한 태도에 대관들은 그를 죽이기에는 국가적으로도 아깝다고 생각하였으나 후환을 입을 것이라는 영의정 권돈인의 주장대로 결국은 사형을 선고하였다. 김 신부의 처형은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의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다. 김 신부는 망나니들에게 `천주교인이 되어 내가 있을 곳에 오도록 하라.`는 말을 남기고 태연하게 칼을 받았다. 이 때 그의 나이 26세, 그의 목이 떨어지자 형장에는 큰 뇌성과 함께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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