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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배 마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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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회장순교일: 1866-03-11관련성지: 새남터서울 창동(倉洞)에서 태어난 정의배는 유학(儒學)을 공부하다가 1839년 기해박해 때 서양 선교사의 순교 장면을 목격하고 감동하여 곧 교리를 배우고 입교하였다. 1845년 제3대 조선교구장 고 주교가 입국한 뒤 서울 지역의 회장이 되어 20여 년 동안 헌신적으로 일하였고, 1854년에는 성영회를 맡아 고아들을 돌보기도 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2월 25일에 체포되었고, 3월 11일 푸르티에(Pourthié, 신요안(申妖安)) 신부, 프티니콜라 (Petitnicolas, 박덕노(朴德老)) 신부, 그리고 우세영(禹世英)과 함께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아 72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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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문 가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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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회장순교일: 1846-09-19관련성지: 새남터현석문은 서울 중인 계급의 독실한 교우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가족이 모두 순교자가 되었다. 1839년에 회장으로 임명된 현석문은 박해가 끝난 뒤 순교자들의 기록을 정리한 「기해일기」를 펴내었고, 포졸들에게 쫓기면서도 이름을 바꾸어 가며 각지에 흩어진 교우들을 찾아가 격려하였다. 한편 중국 교회에 밀사를 보내고, 1845년에는 김대건 신부와 함께 상해(上海)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1846년 김대건 신부가 체포된 뒤 김 신부의 집에 남아 있던 여교우들을 새로 마련한 집에 피신시키고 자신도 그 집에 숨어 있다가 7월 11일에 교우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체포된 뒤에도 함께 갇힌 교우들을 위로하고 권면하며 지내다가 마침내 9월 19일 50세의 나이로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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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덕 막달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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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동정녀순교일: 1839-12-29관련성지: 서소문 밖동정 순교자인 이영덕은 외교인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 외할머니의 권면으로 신앙을 갖게 되었다. 혼기에 이르러 아버지가 외교인과 혼인할 것을 강요하자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하고는 꾀병을 앓기도 하고,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써 보이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완고한 어버지의 고집을 꺾을 수 없어 범 라우렌시오 주교에게 가출할 수 있도록 청원하였다. 그러나 주교가 허락하지 않으므로 어머니, 동생과 함께 집을 나와 교우들의 집에서 숨어 살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주교는 처음에는 집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하였으나, 조선 풍습에 가출했던 부녀자가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절대 용서받을 수 없음을 알고는 세 모녀가 살 수 있도록 집 한 채를 마련해 주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순교를 각오하고, 주교가 체포되면 자수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자수할 틈도 없이 6월 어느 날 집에 있던 사람들과 함께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옥살이 끝에 12월 29일 6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28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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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신철 가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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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마부순교일: 1839-09-26관련성지: 서소문 밖‘덕철’(德喆)로도 불리던 조신철은 강원도 회양(淮陽)의 상민 집안에서 태어났다. 5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또 아버지가 얼마 안 되는 재산을 탕진하자 출가하여 한때 스님이 되었으나 23세 때 동지사(冬至使)의 마부가 되었으며, 30세 쯤에 유진길(劉進吉), 정하상(丁夏祥) 등과 알게 되어 입교하였다. 북경에서 세례, 견진, 고해, 성체성사를 받고 계속 동지사의 마부로 일하면서 북경 교회와 연락을 취하며 나 베드로(모방) 신부, 정 야고보(샤스탕) 신부, 범 라우렌시오(앵베르) 주교 등을 입국시키는 일을 도왔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조신철은 처가로 피신하였으나, 6월 어느날 처가를 습격한 포졸들이 어린 젖먹이까지 잡아가는 것을 보고, 포청까지 따라가 자수하였다. 신문 중 그는 처가에 숨긴 성물과 성서 때문에 매우 혹독한 형벌을 받아야 했고, 형리들은 주교와 신부들의 은신처를 대라며 그에게 더욱 가혹한 형벌을 내렸다. 9월 26일, 45세의 나이로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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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귀임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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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동정녀순교일: 1839-07-20관련성지: 서소문 밖동정 순교자 원귀임은 경기도 고양군 용머리(龍頭里)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여기저기를 떠돌며 살다가 아홉 살 때 서울의 친척집에서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려 나갔다. 이 때 동정으로 살아갈 것을 결심하고 언제나 모범적인 신앙 생활을 하였다. 1839년 3월 29일 원귀임이 있던 친척집이 포졸들의 습격을 받게 되자 재빨리 피신하였으나 길거리에서 원귀임을 아는 사람에게 들켜 체포되었다. 체포될 때 정신을 잃을 정도로 당황했던 원귀임은 정신을 가다듬고 포청으로 끌려갔다. 포청에서 배교를 강요하며 고문하는 형리에게 “내 영혼을 이미 하느님께 맡긴 지 오래니 더 이상 묻지 마십시오. 오직 죽을 뿐입니다." 하며 배교를 거부하니 형조로 이송되었다. 형조에서도 가혹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으나 원귀임은 굴하지 않았고 드디어 7월 20일 일곱 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 때 나이 22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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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업이 막달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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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6
신분 : 과부순교일 : 1839-05-24관련성지 : 서소문 밖김업이는 어려서부터 독실한 신앙 생활을 하며 동정을 지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어머니의 권유로 혼기에 이르러 교우 청년과 결혼하였다. 중년이 되어 남편과 자식을 모두 잃고는 친정으로 돌아와 노모와 함께 애고개(지금의 아현동)에서 망건을 만들어 팔며 살았다. 노모에게 순종하는 좋은 표양과 해박한 교리 지식으로 외교인들에게 전교하며, 순교할 결심으로 살아가던 김업이는 1836년 10월 김아기(金阿只), 한아기(韓阿只)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포청과 형조에서 천주교 서적을 숨긴 죄로 매우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으나 모두 참아 내고 형조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형집행이 유예되어 3년을 옥살이한 끝에 1839년 5월 24일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자신의 소원대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그 때 나이는 66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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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일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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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회장순교일: 1867-01-21관련성지: 관덕정‘제헌’으로도 불렸던 이윤일은 충청도 홍주(洪州) 출신의 태중 교우로, 경상도 문경의 여호목골에 살며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의 여파가 경상도에 이르자 그 해 11월 가족, 마을 교우 30여 명과 함께 체포되었다. 문경 관아에서 사흘 동안 혹형과 고문을 받은 뒤 배교하지 않은 교우들과 함께 상주로 이송되었고, 상주에서 한 달에 세 번씩 석 달 동안 혹형과 고문을 받고 나서 대구 감영으로 이송되었다. 그는 대구 감영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여유롭고 기쁜 마음으로 기도하며 지내다가, 1867년 1월 21일 대구 남문 밖 관덕정에서 참수형을 받아 45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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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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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회장순교일: 1866-03-09관련성지: 서소문 밖일명 ‘치장’으로도 불리는 최형은 충청도 홍주(洪州)에서 태어나 14세 때 부모의 권면으로 입교하였는데, 그의 가족은 모두 열심한 신자였다. 1836년 마카오 유학길에 올랐던 신학생들 가운데 병사한 최방제(崔方濟)가 그의 동생이다.큰누이는 평생 동정이었으며 형 최수(崔燧)는 병인박해 때에 절두산에서 참수되었다. 이렇게 독실한 교우 가정에서 자란 최형은 1836년 나 신부의 복사로 교회 일에 헌신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체포되었다가 석방된 뒤 목수 일과 묵주 제작, 교회 서적 출판에 참여하였고, 장 주교가 입국한 뒤 교회 서적 출판의 책임자가 되어 큰 공로를 남겼다. 1866년 장 주교가 체포되면서 교회 서적들이 적발되자 전장운과 함께 체포되어 3월 9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53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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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우 안토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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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회장순교일: 1841-04-29관련성지: 옥사경기도 광주 구산(龜山)에서 부유한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난 김성우는 성품이 강직하고 도량이 넓어 모든 이에게 존경을 받았다. 천주교를 알게 되자 두 동생과 함께 곧 입교하였고, 열렬한 신앙으로 전교 활동을 펼쳐 자신이 사는 마을을 교우촌으로 만들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세례를 받고 서울로 이사한 뒤 자신의 집에 공소를 만들어 신부들을 도왔다.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천주교인으로 밀고되었으나 미리 피신하였고, 고향에 남아 있던 두 동생만 체포되었다. 그러나 김성우도 이듬해 1월 가족들과 함께 체포되었고, 감옥에서도 외교인 죄수들에게 전교하여 2명을 신앙의 길로 인도하였다. 옥살이 15개월 만인 1841년 4월 28일 치도곤 60대를 맞고 이튿날 교수형을 받아 47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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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순이 바르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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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부인순교일: 1839-12-29관련성지: 서소문 밖고순이는 1801년 신유박해로 순교한 고광성(高光晟)의 딸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18세 때 교우인 박종원(朴宗源)과 혼인하여 3남매를 두고, 모범 가정이라고 칭찬을 들으며 살았다. 또한 회장인 남편을 도와 무지한 이들을 가르치며 병약자를 간호하는 등 교회 일에도 적극적으로 봉사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10월 26일 남편이 먼저 체포되고, 그 이튿날 고순이도 체포됨으로써 포청에서 남편과 만나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순교를 준비하였다. 형조에서도 남편과 함께 고문을 당하였으나 굴복하지 않았다. 이렇게 남편과 함께 모든 혹형과 고문을 이겨 낸 고순이는 12월 29일 남편 박종원보다 한 달 먼저 6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42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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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협 아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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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궁녀순교일: 1839-09-26관련성지: 서소문 밖동정 순교자인 전경협은 서울의 외교인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대궐로 들어가 궁녀가 되었다. 그 뒤 평소 친교가 있던 궁녀 박희순(朴喜順)을 따라 입교하였으며, 박희순이 신앙 생활을 위하여 궁을 나오게 되자 그도 궁을 떠나 교우들의 집에 머물면서 신앙 생활에 전념하였다. 1839년 4월 15일, 포졸들의 습격으로 숨어 있던 박희순, 박 큰아기 등과 함께 체포된 전경협은 궁녀였다는 이유로 포청과 형조에서 더욱 가혹한 형벌과 고문을 당하였으나 참아 냈다. 이 때 조그만 관직을 잃을까 두려워한 오빠는 관리를 매수하여 누이를 독살시키려 하였으나 전경협은 독이 든 음식을 먹지 않았다. 5개월의 옥살이를 한 뒤, 9월 26일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53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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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루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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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동정녀순교일: 1839-07-20관련성지: 서소문 밖동정 순교자 김 루치아는 강원도 강촌(江村)에서 태어나 아홉 살 때 어머니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14세 때 동정을 지킬 것을 결심하였고, 부모를 여읜 뒤로는 자신을 받아 주는 교우들의 집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살았다. 1839년 기해박해 때 포졸들에게 자수한 뒤, 포청과 형조에서 천진한 태도와 한결 같은 신앙으로 모든 형벌과 고문과 유혹을 참아 냈고, 교리에 대한 심문 중에도 기막힌 비유와 논리정연한 대답으로 형관을 감동시켰다. 7월 20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22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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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사 아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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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6
신분 : 과부순교일 : 1839-05-24관련성지 : 서소문 밖이소사는 경기도 이천 출신으로 17세 때 결혼하였으나 남편을 여의고 친정으로 돌아와 살면서 어머니, 동생 이호영과 함께 입교하였다. 아버지가 대세를 받고 사망하자 동생을 따라 서울로 이사하였는데, 1835년 2월(음력 정월) 한강변 무쇠막에서 동생 이호영 베드로와 함께 체포되었다. 포청에서 여인으로는 차마 견디기 힘든 형벌과 고문을 참아 냈고 형조로 이송되어 동생과 함께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사형 집행이 연기되어 옥살이를 더 해야 했다. 고통스러운 옥중 생활 속에서도 동생과 함께 한날 한시에 순교하자고 위로하고 격려하며 인내와 극기로써 생활하였다. 동생을 먼저 순교의 영광을 입게 하고 자신은 동생이 옥사한 지 7개월 후인 1839년 5월 24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8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56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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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호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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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농부순교일: 1866-12-23관련성지: 숲정이아버지 조화서와 함께 순교한 조윤호는 충청도 신창에서 태중 교우로 태어났다. 1864년 아버지를 따라 전주 지역의 교우촌인 성지동으로 이사하여 교우 처녀인 이 루치아와 혼인하였다. 1866년 12월 5일 아버지 조화서, 정원지, 이명서 등과 함께 체포되어 전주 감영에서 심문과 형벌을 예닐곱 차례 받았지만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아버지가 순교한 지 열흘 지난 12월 23일 전주 숲정이에서 곤장 16대를 맞은 뒤 19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여, 할아버지 조 안드레아와 아버지 조화서 베드로에 이어 가문의 3대가 함께 순교하는 영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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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운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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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상인순교일: 1866-03-09관련성지: 서소문 밖‘승연’으로도 불렸던 전장운은 서울의 교우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려운 생활을 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체포되어 한 달 동안 옥살이를 하다가 혹형과 고문을 참지 못하여 배교하고 석방되었다. 그 뒤 어머니의 권면으로 배교한 것을 뉘우쳤지만, 사제가 없어 고해성사를 받을 수 없음을 한탄하였다. 1845년 김대건 신부가 입국하자 고해성사를 받고 열심한 신앙 생활로 교우들에게 모범을 보였고 혼인하여 3남매를 두었다. 1866년 초 장 주교의 명으로 교회 서적 출판에 참여하여 최형, 임치화를 도와 판각(板刻)을 마련하는 일을 맡았으나, 얼마 뒤 병인박해가 일어나 주교와 신부들이 체포되고 교회 서적들이 적발되는 바람에 전장운도 3월 1일에 체포되었다. 포청과 의금부에서 가혹한 형벌을 받은 뒤 3월 6일에 형조로 이송되었고, 3월 9일에 사형을 선고받아 그 날로 최형과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56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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