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매임 데레사

Korean 103 Saints 103위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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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103 Saints

이매임 데레사

관리자 0 3462 0

 

신분 : 부인순교일 : 1839-07-20관련성지 : 서소문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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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에 과부가 되어 경기도 봉천(奉天)의 친정으로 돌아온 이매임은 한 동네에 사는 여교우의 전교로 천주교에 입교한 뒤 조카 이정희와 영희를 신앙의 길로 인도하였다. 이영희가 동정 생활을 결심하여 서울로 피신하자 함께 따라가 살며 신앙 생활을 하다가, 1839년 4월 초 이매임은 남명혁과 이광헌의 어린 자녀들이 혹형을 이겨 내고 신앙을 지켰다는 이야기에 감동하여 순교를 결심하였다. 마침내 4월 11일 자수하여 7월 20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순교하니, 그 때 나이 52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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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안드레아
관리자 0 0 0 8038 2017.01.16
신분 : 신부순교일 : 1846-09-16관련성지 : 새남터김대건은 1821년 충청도 솔뫼에서 천주교 신자 김제준 이냐시오와 고 우르술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굳센 성격과 진실한 신심을 보고 1836년 나 베드로(모방) 신부는 그를 신학생으로 뽑아 마카오로 유학 보냈다. 그는 6년 동안 신학 공부를 하고 1845년 8월 페레올 주교에게서 사제품을 받아 한국인 최초의 신부가 되었다.고국에 돌아온 김 신부는 서울과 용인 지방에서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1846년 음력 4월 주교의 명에 따라, 선교사들의 편지를 중국 배에 전하고 선교사들의 입국로를 개척하기 위하여, 황해도 지방으로 가게 되었다. 김 신부는 편지를 중국 배에 전하고 돌아오는 도중 순위도에서 관헌에게 체포되어 서울 좌포도청으로 이송되었다. 취조 중, 김 신부의 넓은 식견과 당당한 태도에 대관들은 그를 죽이기에는 국가적으로도 아깝다고 생각하였으나 후환을 입을 것이라는 영의정 권돈인의 주장대로 결국은 사형을 선고하였다. 김 신부의 처형은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의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다. 김 신부는 망나니들에게 `천주교인이 되어 내가 있을 곳에 오도록 하라.`는 말을 남기고 태연하게 칼을 받았다. 이 때 그의 나이 26세, 그의 목이 떨어지자 형장에는 큰 뇌성과 함께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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