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관 세바스티아노

Korean 103 Saints 103위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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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103 Saints

남이관 세바스티아노

관리자 0 2985 0
신분 : 회장순교일 : 1839-09-26관련성지 : 서소문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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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양반 교우 가정에서 태어난 남이관은 18세 때 교우인 조증이(趙曾伊)와 혼인하였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아버지와 함께 체포된 그는 경상도 단성(丹城)으로 귀양갔다가 30년 만인 1832년에 풀려 나와 이천(利川)에 있는 처가에서 살았다. 그 뒤 상경하여 처가의 인척인 정하상(丁夏祥)의 신부 영입 운동을 도와 1833년 중국인 유방제(劉方濟) 신부를 입국시키고, 그에게서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받은 뒤 회장으로 임명되어 열심히 교회 일을 도왔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다시 처가가 있는 이천으로 내려가 숨었으나 9월 16일에 체포되었다. 김제준과 함께 국사범으로 간주되어 의금부로 이송되었고, 여기에서 유진길(劉進吉), 정하상과 함께 신문을 받고, 다시 형조로 이송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 9월 26일 남이관은 8명의 교우와 함께 60세의 나이로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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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안드레아
관리자 0 0 0 8023 2017.01.16
신분 : 신부순교일 : 1846-09-16관련성지 : 새남터김대건은 1821년 충청도 솔뫼에서 천주교 신자 김제준 이냐시오와 고 우르술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굳센 성격과 진실한 신심을 보고 1836년 나 베드로(모방) 신부는 그를 신학생으로 뽑아 마카오로 유학 보냈다. 그는 6년 동안 신학 공부를 하고 1845년 8월 페레올 주교에게서 사제품을 받아 한국인 최초의 신부가 되었다.고국에 돌아온 김 신부는 서울과 용인 지방에서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1846년 음력 4월 주교의 명에 따라, 선교사들의 편지를 중국 배에 전하고 선교사들의 입국로를 개척하기 위하여, 황해도 지방으로 가게 되었다. 김 신부는 편지를 중국 배에 전하고 돌아오는 도중 순위도에서 관헌에게 체포되어 서울 좌포도청으로 이송되었다. 취조 중, 김 신부의 넓은 식견과 당당한 태도에 대관들은 그를 죽이기에는 국가적으로도 아깝다고 생각하였으나 후환을 입을 것이라는 영의정 권돈인의 주장대로 결국은 사형을 선고하였다. 김 신부의 처형은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의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다. 김 신부는 망나니들에게 `천주교인이 되어 내가 있을 곳에 오도록 하라.`는 말을 남기고 태연하게 칼을 받았다. 이 때 그의 나이 26세, 그의 목이 떨어지자 형장에는 큰 뇌성과 함께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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