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루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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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103 Saints

김 루치아

관리자 0 2988 0
신분 : 과부순교일 : 1839-07-20관련성지 : 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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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루치아는 서울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태어날 때부터 몸이 불구였다. 그래서 ‘꼽추 루치아’로 불렸다.

1801년 신유박해 이전부터 천주교를 믿었으나 남편과 가족들이 모두 외교인이라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결국 집을 나와 교우들의 집에 얹혀 살면서 병자들을 돌보며 천한 일도 마다하지 않고 열성을 다하였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체포되어 포도청으로 끌려갔다. 나이가 많아(71세) 형벌은 받지 않았으나 온갖 교활한 신문을 받았다. 그러나 김 루치아는 한결같이 배교를 거부하고, 마침내 9월 어느 날 포도청에서 기력이 다해 옥에서 죽음으로써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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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안드레아
관리자 0 0 0 8019 2017.01.16
신분 : 신부순교일 : 1846-09-16관련성지 : 새남터김대건은 1821년 충청도 솔뫼에서 천주교 신자 김제준 이냐시오와 고 우르술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굳센 성격과 진실한 신심을 보고 1836년 나 베드로(모방) 신부는 그를 신학생으로 뽑아 마카오로 유학 보냈다. 그는 6년 동안 신학 공부를 하고 1845년 8월 페레올 주교에게서 사제품을 받아 한국인 최초의 신부가 되었다.고국에 돌아온 김 신부는 서울과 용인 지방에서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1846년 음력 4월 주교의 명에 따라, 선교사들의 편지를 중국 배에 전하고 선교사들의 입국로를 개척하기 위하여, 황해도 지방으로 가게 되었다. 김 신부는 편지를 중국 배에 전하고 돌아오는 도중 순위도에서 관헌에게 체포되어 서울 좌포도청으로 이송되었다. 취조 중, 김 신부의 넓은 식견과 당당한 태도에 대관들은 그를 죽이기에는 국가적으로도 아깝다고 생각하였으나 후환을 입을 것이라는 영의정 권돈인의 주장대로 결국은 사형을 선고하였다. 김 신부의 처형은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의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다. 김 신부는 망나니들에게 `천주교인이 되어 내가 있을 곳에 오도록 하라.`는 말을 남기고 태연하게 칼을 받았다. 이 때 그의 나이 26세, 그의 목이 떨어지자 형장에는 큰 뇌성과 함께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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