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임 마르타

Korean 103 Saints 103위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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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103 Saints

김성임 마르타

관리자 0 3572 0

 

신분 : 과부순교일 : 1839-07-20관련성지 : 서소문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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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부평(富平)에서 태어난 김성임은 혼인에 실패한 뒤 서울에서 앞을 보지 못하는 점쟁이와 재혼하였다. 이 때부터 교리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남편이 죽은 뒤 교우들의 집을 전전하며 신앙 생활을 하였다. 천한 일을 하면서도 항상 밝은 얼굴로 생활하던 김성임은 1839년 4월 11일 자신이 몸붙이고 있던 이매임의 집에서 이매임, 허계임, 이정희와 영희 자매, 김 루치아 등과 순교를 결심한 뒤 이미 체포된 남명혁의 집을 지키던 포졸들에게 자수하였다. 포청과 형조의 혹형과 고문을 이겨 내고 7월 20일 7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50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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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삼 요한
관리자 0 0 0 3373 2017.01.17
신분: 승지순교일: 1866-03-07관련성지: 서소문 밖남종삼은 충청도 충주(忠州)에서 태어나 남상교(南尙敎)의 양자가 되었다. 1843년 문과에 급제하고 1846년 경상도 영해 군수가 된 남종삼은 항상 재물과 부녀자를 멀리하고 청백리(淸白吏)로서 의덕과 겸손의 청빈한 생활을 하여 모든 이들에게 존경을 받았으나 동료 관리들에게는 시기와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관직에 따르는 미신행위로 인해 한때 교회를 떠난 적도 있었으나 다시 교회로 돌아와서는 신앙생활에만 전념했다.프랑스인 선교사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고, 1863년 대원군의 명으로 정3품 승지(承旨)가 되어 왕족 자제의 교육을 맡았다. 그러던 중 1866년 러시아인들이 국경을 넘어와 통상을 요구하자 조정에서 문제거리로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때 남종삼은 홍봉주(洪鳳周), 이유일(李惟一)등과 논의 하여 영불(英佛) 동맹을 맺어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자는 소위 방아책(防俄策)을 대원군에게 건의했다. 대원군과 장 (베르뇌) 주교와의 면담이 이루어지는 듯 했으나 척신들의 압력, 장 주교와의 연락 지연, 중국에서의 천주교 박해 소문 등으로 실패했을 뿐더러 태도가 돌변한 대원군에 의해 병인 대박해가 일어나게 되었다.1866년 2월 고향인 제천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남종삼은 중도에서 자신의 수배령이 내려졌다는 소식을 듣고 경기도 고양군 축베더리로 피신했으나 2월 25일 주교의 하인 이선이(李先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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