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우 요한

Korean 103 Saints 103위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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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103 Saints

이문우 요한

관리자 0 3597 0
신분 : 복사순교일 : 1840-02-01관련성지 : 당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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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천’으로도 불렸던 이문우는 경기도 이천(利川)의 양반 교우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5세 부모를 여의고 서울의 오 바르바라라는 여교우에게 입양되어 성장하였다. 독신으로 살아가고자 하였으나 양모의 뜻에 순종하여 혼인하였고, 몇 년 뒤 아내와 두 자녀가 세상을 떠나자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범 라우렌시오(앵베르) 주교에게 회장으로 임명되어 전교에 힘쓰고 범 주교를 도와 지방을 순회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로 많은 교우들이 체포되자 사방에서 희사를 모아 옥에 갇힌 교우들을 돕고 박해 상황을 주교와 신부들에게 보고하던 중 11월 11일에 체포되었다. (성인은 교우들을 데리고 새남터 형장으로 가서 성 앵베르 주교, 성 모방 신부, 성 샤스탕 신부의 시신을 모셔다 노고산에 안장하였고, 그 후 성인도 체포되었다.) 이 때에 “주님께서 특별한 은총으로 나를 부르시니 어찌 그분의 부르심에 대답하지 않을 수 있는가?" 하며 오히려 당황하는 포졸들을 재촉하여 포청으로 갔다. 포청과 형조에서 모진 고문을 참아 낸 끝에 1840년 2월 1일 당고개에서 2명의 교우와 함께 31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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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삼 요한
관리자 0 0 0 3367 2017.01.17
신분: 승지순교일: 1866-03-07관련성지: 서소문 밖남종삼은 충청도 충주(忠州)에서 태어나 남상교(南尙敎)의 양자가 되었다. 1843년 문과에 급제하고 1846년 경상도 영해 군수가 된 남종삼은 항상 재물과 부녀자를 멀리하고 청백리(淸白吏)로서 의덕과 겸손의 청빈한 생활을 하여 모든 이들에게 존경을 받았으나 동료 관리들에게는 시기와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관직에 따르는 미신행위로 인해 한때 교회를 떠난 적도 있었으나 다시 교회로 돌아와서는 신앙생활에만 전념했다.프랑스인 선교사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고, 1863년 대원군의 명으로 정3품 승지(承旨)가 되어 왕족 자제의 교육을 맡았다. 그러던 중 1866년 러시아인들이 국경을 넘어와 통상을 요구하자 조정에서 문제거리로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때 남종삼은 홍봉주(洪鳳周), 이유일(李惟一)등과 논의 하여 영불(英佛) 동맹을 맺어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자는 소위 방아책(防俄策)을 대원군에게 건의했다. 대원군과 장 (베르뇌) 주교와의 면담이 이루어지는 듯 했으나 척신들의 압력, 장 주교와의 연락 지연, 중국에서의 천주교 박해 소문 등으로 실패했을 뿐더러 태도가 돌변한 대원군에 의해 병인 대박해가 일어나게 되었다.1866년 2월 고향인 제천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남종삼은 중도에서 자신의 수배령이 내려졌다는 소식을 듣고 경기도 고양군 축베더리로 피신했으나 2월 25일 주교의 하인 이선이(李先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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