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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일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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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회장순교일: 1867-01-21관련성지: 관덕정‘제헌’으로도 불렸던 이윤일은 충청도 홍주(洪州) 출신의 태중 교우로, 경상도 문경의 여호목골에 살며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의 여파가 경상도에 이르자 그 해 11월 가족, 마을 교우 30여 명과 함께 체포되었다. 문경 관아에서 사흘 동안 혹형과 고문을 받은 뒤 배교하지 않은 교우들과 함께 상주로 이송되었고, 상주에서 한 달에 세 번씩 석 달 동안 혹형과 고문을 받고 나서 대구 감영으로 이송되었다. 그는 대구 감영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여유롭고 기쁜 마음으로 기도하며 지내다가, 1867년 1월 21일 대구 남문 밖 관덕정에서 참수형을 받아 45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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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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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회장순교일: 1866-03-09관련성지: 서소문 밖일명 ‘치장’으로도 불리는 최형은 충청도 홍주(洪州)에서 태어나 14세 때 부모의 권면으로 입교하였는데, 그의 가족은 모두 열심한 신자였다. 1836년 마카오 유학길에 올랐던 신학생들 가운데 병사한 최방제(崔方濟)가 그의 동생이다.큰누이는 평생 동정이었으며 형 최수(崔燧)는 병인박해 때에 절두산에서 참수되었다. 이렇게 독실한 교우 가정에서 자란 최형은 1836년 나 신부의 복사로 교회 일에 헌신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체포되었다가 석방된 뒤 목수 일과 묵주 제작, 교회 서적 출판에 참여하였고, 장 주교가 입국한 뒤 교회 서적 출판의 책임자가 되어 큰 공로를 남겼다. 1866년 장 주교가 체포되면서 교회 서적들이 적발되자 전장운과 함께 체포되어 3월 9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53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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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우 안토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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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회장순교일: 1841-04-29관련성지: 옥사경기도 광주 구산(龜山)에서 부유한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난 김성우는 성품이 강직하고 도량이 넓어 모든 이에게 존경을 받았다. 천주교를 알게 되자 두 동생과 함께 곧 입교하였고, 열렬한 신앙으로 전교 활동을 펼쳐 자신이 사는 마을을 교우촌으로 만들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세례를 받고 서울로 이사한 뒤 자신의 집에 공소를 만들어 신부들을 도왔다.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천주교인으로 밀고되었으나 미리 피신하였고, 고향에 남아 있던 두 동생만 체포되었다. 그러나 김성우도 이듬해 1월 가족들과 함께 체포되었고, 감옥에서도 외교인 죄수들에게 전교하여 2명을 신앙의 길로 인도하였다. 옥살이 15개월 만인 1841년 4월 28일 치도곤 60대를 맞고 이튿날 교수형을 받아 47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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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순이 바르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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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부인순교일: 1839-12-29관련성지: 서소문 밖고순이는 1801년 신유박해로 순교한 고광성(高光晟)의 딸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18세 때 교우인 박종원(朴宗源)과 혼인하여 3남매를 두고, 모범 가정이라고 칭찬을 들으며 살았다. 또한 회장인 남편을 도와 무지한 이들을 가르치며 병약자를 간호하는 등 교회 일에도 적극적으로 봉사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10월 26일 남편이 먼저 체포되고, 그 이튿날 고순이도 체포됨으로써 포청에서 남편과 만나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순교를 준비하였다. 형조에서도 남편과 함께 고문을 당하였으나 굴복하지 않았다. 이렇게 남편과 함께 모든 혹형과 고문을 이겨 낸 고순이는 12월 29일 남편 박종원보다 한 달 먼저 6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42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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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협 아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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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궁녀순교일: 1839-09-26관련성지: 서소문 밖동정 순교자인 전경협은 서울의 외교인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대궐로 들어가 궁녀가 되었다. 그 뒤 평소 친교가 있던 궁녀 박희순(朴喜順)을 따라 입교하였으며, 박희순이 신앙 생활을 위하여 궁을 나오게 되자 그도 궁을 떠나 교우들의 집에 머물면서 신앙 생활에 전념하였다. 1839년 4월 15일, 포졸들의 습격으로 숨어 있던 박희순, 박 큰아기 등과 함께 체포된 전경협은 궁녀였다는 이유로 포청과 형조에서 더욱 가혹한 형벌과 고문을 당하였으나 참아 냈다. 이 때 조그만 관직을 잃을까 두려워한 오빠는 관리를 매수하여 누이를 독살시키려 하였으나 전경협은 독이 든 음식을 먹지 않았다. 5개월의 옥살이를 한 뒤, 9월 26일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53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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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루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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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동정녀순교일: 1839-07-20관련성지: 서소문 밖동정 순교자 김 루치아는 강원도 강촌(江村)에서 태어나 아홉 살 때 어머니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14세 때 동정을 지킬 것을 결심하였고, 부모를 여읜 뒤로는 자신을 받아 주는 교우들의 집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살았다. 1839년 기해박해 때 포졸들에게 자수한 뒤, 포청과 형조에서 천진한 태도와 한결 같은 신앙으로 모든 형벌과 고문과 유혹을 참아 냈고, 교리에 대한 심문 중에도 기막힌 비유와 논리정연한 대답으로 형관을 감동시켰다. 7월 20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22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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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사 아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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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6
신분 : 과부순교일 : 1839-05-24관련성지 : 서소문 밖이소사는 경기도 이천 출신으로 17세 때 결혼하였으나 남편을 여의고 친정으로 돌아와 살면서 어머니, 동생 이호영과 함께 입교하였다. 아버지가 대세를 받고 사망하자 동생을 따라 서울로 이사하였는데, 1835년 2월(음력 정월) 한강변 무쇠막에서 동생 이호영 베드로와 함께 체포되었다. 포청에서 여인으로는 차마 견디기 힘든 형벌과 고문을 참아 냈고 형조로 이송되어 동생과 함께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사형 집행이 연기되어 옥살이를 더 해야 했다. 고통스러운 옥중 생활 속에서도 동생과 함께 한날 한시에 순교하자고 위로하고 격려하며 인내와 극기로써 생활하였다. 동생을 먼저 순교의 영광을 입게 하고 자신은 동생이 옥사한 지 7개월 후인 1839년 5월 24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8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56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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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호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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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농부순교일: 1866-12-23관련성지: 숲정이아버지 조화서와 함께 순교한 조윤호는 충청도 신창에서 태중 교우로 태어났다. 1864년 아버지를 따라 전주 지역의 교우촌인 성지동으로 이사하여 교우 처녀인 이 루치아와 혼인하였다. 1866년 12월 5일 아버지 조화서, 정원지, 이명서 등과 함께 체포되어 전주 감영에서 심문과 형벌을 예닐곱 차례 받았지만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아버지가 순교한 지 열흘 지난 12월 23일 전주 숲정이에서 곤장 16대를 맞은 뒤 19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여, 할아버지 조 안드레아와 아버지 조화서 베드로에 이어 가문의 3대가 함께 순교하는 영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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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운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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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상인순교일: 1866-03-09관련성지: 서소문 밖‘승연’으로도 불렸던 전장운은 서울의 교우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려운 생활을 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체포되어 한 달 동안 옥살이를 하다가 혹형과 고문을 참지 못하여 배교하고 석방되었다. 그 뒤 어머니의 권면으로 배교한 것을 뉘우쳤지만, 사제가 없어 고해성사를 받을 수 없음을 한탄하였다. 1845년 김대건 신부가 입국하자 고해성사를 받고 열심한 신앙 생활로 교우들에게 모범을 보였고 혼인하여 3남매를 두었다. 1866년 초 장 주교의 명으로 교회 서적 출판에 참여하여 최형, 임치화를 도와 판각(板刻)을 마련하는 일을 맡았으나, 얼마 뒤 병인박해가 일어나 주교와 신부들이 체포되고 교회 서적들이 적발되는 바람에 전장운도 3월 1일에 체포되었다. 포청과 의금부에서 가혹한 형벌을 받은 뒤 3월 6일에 형조로 이송되었고, 3월 9일에 사형을 선고받아 그 날로 최형과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56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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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이 바르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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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부인순교일: 1840-02-01관련성지: 당고개서울에서 태어난 최영이는 어려서 아버지 최창흡과 어머니 손소벽의 모범을 따라 입교한 뒤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다가 20세 때 조신철과 혼인하여 아들 하나를 두었다.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친정에 피신해 있다가 6월에 친정 식구들과 함께 체포되었는데, 어린 아들을 생각하는 모정으로 배교할까 두려워 아들을 친척에게 맡겼다. 남편이 중국에서 가져온 교회 서적과 성물 때문에 포청에서 주리 두 차례, 태장 260대의 혹형을 당하였지만 조금도 굴복하지 않았고, 형조에서도 세 차례의 형문을 이겨 냈다. 1840년 2월 1일 홍영주, 이문우와 함께 당고개에서 22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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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혜 엘리사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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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동정녀순교일: 1839-12-29관련성지: 서소문 밖동정 순교자인 정정혜는 정약종(丁若鍾)의 딸로, 네 살 때 세례성사를 받았다. 1801년 신유박해로 전가족이 함께 체포되어, 아버지와 이복 오빠 정철상(丁哲祥)은 순교하였으나 정정혜는 어머니 유 체칠리아, 오빠 정하상(丁夏祥)과 함께 석방되었다. 그 뒤 마재의 삼촌 정약용(丁若鏞)의 집에서 살면서 길쌈과 바느질로 가족들의 생계를 꾸려 나갔다. 친척들의 구박과 냉대를 아름다운 덕행과 인내로 극복하고, 박대하던 몇몇 친척들까지 입교시켰다. 1839년 7월 11일 기해박해 때 정정혜는 서울에서 어머니, 오빠와 함께 체포되었다. 포청에서 7회의 신문을 받으면서 320대의 곤장을 맞았고, 형조에서도 6회의 신문과 함께 혹독한 고문을 받았으나 끝까지 신앙을 지킨 뒤에 12월 29일 6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그 때 나이 43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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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율리에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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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궁녀순교일: 1839-09-26관련성지: 서소문 밖동정 순교자인 김 율리에타는 시골에서 태중 교우로 태어났다. 부모와 함께 서울로 이사와 살면서, 17세 때 혼담이 있었으나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스스로 머리카락을 다 잘라 버렸다. 1801년 신유박해 때 부모는 냉담하여 낙향하였으나, 김 율리에타는 혼자 서울에 남아 있다가 궁녀로 뽑혀 10년 동안 궁에서 살았다. 그러나 궁에서는 신앙 생활을 할 수가 없어 궁을 떠나 교우들의 집에서 일을 해 주며 품삯을 모아 집을 마련하고, 혼자 살면서 신앙 생활을 하였다. 성품이 강직하고 또 늘 언행에 조심하였으며 그래서 교우들로부터 ‘절대로 나쁜 짓 하지 않을 여인’이라고 불렸다. 기해박해가 있던 1839년 7월에 체포되어, 혹형과 고문을 이겨 낸 끝에 9월 26일 8명의 교우와 함께 56세의 나이로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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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 막달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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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동정순교일: 1839-07-20관련성지: 서소문 밖동정 순교자 이영희는 경기도 봉천(奉天)에서 태어났다. 과부가 되어 친정에 돌아온 고모 이매임의 권면으로 어머니 허계임, 언니 이정희와 함께 어린 나이에 입교하였다. 성장하면서 동정을 지킬 것을 결심하여 혼기에 이르자 혼담을 피해 호랑이에게 물려간 것처럼 꾸미고 상경하여, 이매임과 함께 살며 신앙 생활을 하였다. 1839년 김성임, 김 루치아, 어머니, 언니와 함께 자수한 뒤, 포청과 형조에서 일곱 번 형문(刑問)을 받고 사형을 선고받아 7월 20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31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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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아기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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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6
신분 : 부인순교일 : 1839-05-24관련성지 : 서소문 밖 강원도 강촌 출신의 박아기는 서울의 한강변에 살면서 어머니와 함께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머리가 둔해 교리를 명확하게 알지는 못하였으나 진심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게 해 달라고 매일 기도하였다.18세 때 비교적 부유한 교우 태문행(太文行)과 결혼하여 2남 3녀를 두었고 또 정성껏 그들을 교육시켰다.기해박해 초인 1839년 4월 박아기는 남편, 큰아들 응천(應天)과 함께 체포되었는데 남편과 큰아들은 심한 고문으로 배교하고 석방되었으나 박아기만은 배교를 거부하고 모진 고문을 이겨 냈다.연일 계속되는 혹형으로 살이 터지고 뼈가 튀어 나왔으나 언제나 평온하였고 때때로 위문 오는 가족들에게도 권면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형조로 이송되어서도, 배교하고 가족들에게 돌아가라는 형관의 갖은 유혹과 고문에도 박아기는 끝까지 신앙을 지켜 1839년 5월 24일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그 때 나이는 57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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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지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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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농부순교일: 1866-12-13관련성지: 숲정이‘원조’로도 불리는 정원지는 충청도 진잠(鎭岑) 교우 집안에서 태어나 전주 부근의 수널마루에서 살다가 금구 지역으로 이사하였고, 1866년에는 전주 성지동 조화서의 집에 셋방을 얻어 노모, 형, 아내와 함께 살고 있었다. 조화서가 체포되던 1866년 12월 5일 정원지는 산에 피신해 있었는데, 동정을 살피러 내려온 사이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전주 감영 전면옥에 갇혔다. 지극한 효성으로 노모를 생각하며 여러 번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함께 체포된 성지동 교우들의 위로와 권면에 힘입어 끝까지 혹형과 고문을 참아 냈다. 마침내 12월 13일 가족에게 “우리는 천국에서 서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제 죽음을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라는 편지를 남기고,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5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21세의 젊은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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