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바르바라

Korean 103 Saints 103위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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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103 Saints

김 바르바라

관리자 0 3195 0

 

신분 : 과부순교일 : 1839-05-27관련성지 : 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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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김 바르바라는 13세경 서울로 올라와 교우 황 마리아의 집에서 식모로 생활하며 교리를 배워 신앙 생활을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동정으로 살고자 결심하였으나 혼기가 차자 부모의 강요를 이기지 못하고 외교인과 혼인하여 남매를 두었다. 혼인한 지 15년 만에 남편이 사망하자 딸 하나만을 데리고 신앙 생활에만 전념하였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3월 김 바르바라는 몸붙여 살던 집에서 집주인과 함께 체포되어 포청으로 끌려가 심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으나 용감히 신앙을 고백하였다. 3개월 옥살이 끝에 5월 27일 굶주림, 기갈, 염병 등으로 옥사함으로써 순교하였다. 그 때 나이는 35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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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안드레아
관리자 0 0 0 8035 2017.01.16
신분 : 신부순교일 : 1846-09-16관련성지 : 새남터김대건은 1821년 충청도 솔뫼에서 천주교 신자 김제준 이냐시오와 고 우르술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굳센 성격과 진실한 신심을 보고 1836년 나 베드로(모방) 신부는 그를 신학생으로 뽑아 마카오로 유학 보냈다. 그는 6년 동안 신학 공부를 하고 1845년 8월 페레올 주교에게서 사제품을 받아 한국인 최초의 신부가 되었다.고국에 돌아온 김 신부는 서울과 용인 지방에서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1846년 음력 4월 주교의 명에 따라, 선교사들의 편지를 중국 배에 전하고 선교사들의 입국로를 개척하기 위하여, 황해도 지방으로 가게 되었다. 김 신부는 편지를 중국 배에 전하고 돌아오는 도중 순위도에서 관헌에게 체포되어 서울 좌포도청으로 이송되었다. 취조 중, 김 신부의 넓은 식견과 당당한 태도에 대관들은 그를 죽이기에는 국가적으로도 아깝다고 생각하였으나 후환을 입을 것이라는 영의정 권돈인의 주장대로 결국은 사형을 선고하였다. 김 신부의 처형은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의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다. 김 신부는 망나니들에게 `천주교인이 되어 내가 있을 곳에 오도록 하라.`는 말을 남기고 태연하게 칼을 받았다. 이 때 그의 나이 26세, 그의 목이 떨어지자 형장에는 큰 뇌성과 함께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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