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바르바라

Korean 103 Saints 103위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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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103 Saints

이정희 바르바라

관리자 0 3402 0
신분 : 과부순교일 : 1839-09-03관련성지 : 서소문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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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봉천(奉天)에서 태어난 이정희는 과부가 되어 돌아온 고모 이매임(李梅任)의 권면으로 어려서 어머니 허계임(許季任), 동생 영희(英喜)와 함께 입교하였다. 그 뒤 열심한 신앙 생활을 하며 동정으로 살아갈 것을 결심하였다.

혼기에 이르러 아버지가 외교인 청년과 결혼시키려 하자 병을 핑계삼아 3년을 버틴 뒤 교우 청년과 결혼하였다.

그러나 결혼한 지 2년 만에 남편을 잃고 잠시 친정에 있다가 신앙 생활을 위하여 집을 떠나 서울에 있는 고모 이매임의 집에 와서 살았다.

  1839년 기해박해 시초에 남명혁과 이광헌의 어린 자녀들이 혹형과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켰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감동하여 당시 이매임의 집에 머물던 김성임(金成任), 김 루치아 그리고 어머니, 동생, 고모 등과 함께 순교를 결심하고 4월 11일 남명혁의 집을 지키고 있던 포졸에게 묵주를 내보이며 천주교인임을 밝혔다. 9월 3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다섯 명의 교우와 함께 순교하였다. 그 때 나이는 41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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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혁 다미아노
관리자 0 0 0 3517 2017.01.16
신분 : 회장순교일 : 1839-05-24관련성지 : 서소문 밖서울에서 태어난 남명혁은 젊어서 무뢰배들과 어울리며 매우 난폭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였으나 30세경 입교한 뒤로 모든 세속의 나쁜 일과 손을 끊고 오직 신앙 생활에만 전념하였다. 유방제(劉方濟)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더욱 열심히 살아 이광헌과 함께 회장으로 임명되어 예비신자를 모아 가르치고 병약자들을 방문하였으며 또 ‘성의회`(聖衣會)라는 신심 단체에 가입하여 신부를 도와 교회 일을 열심히 하였다. 그는 1839년 기해박해 초 한 예비신자의 밀고로 4월 7일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체포되었는데 이 때 그의 집에서 제의류(祭衣類), 경본(經本), 주교관(主敎冠) 등이 발견되어 포청과 형조의 관원들에게 매우 혹독한 형벌을 당했다. 그러나 남명혁은 모든 고통을 참아 냈고, 함께 체포된 아내에게 “이 세상은 잠시 머무는 곳이고 우리의 본향은 천국이니 주님을 위하여 죽어서 광명한 곳에서 영원히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고 격려의 편지를 써 보낸 뒤 5월 24일 이광헌 등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평소 ‘성의회의 치명자 남 다미아노’로 불리기를 바랐던 남명혁은 한창나이인 38세에 자신의 뜻대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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