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관 세바스티아노

Korean 103 Saints 103위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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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103 Saints

남이관 세바스티아노

관리자 0 2982 0
신분 : 회장순교일 : 1839-09-26관련성지 : 서소문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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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양반 교우 가정에서 태어난 남이관은 18세 때 교우인 조증이(趙曾伊)와 혼인하였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아버지와 함께 체포된 그는 경상도 단성(丹城)으로 귀양갔다가 30년 만인 1832년에 풀려 나와 이천(利川)에 있는 처가에서 살았다. 그 뒤 상경하여 처가의 인척인 정하상(丁夏祥)의 신부 영입 운동을 도와 1833년 중국인 유방제(劉方濟) 신부를 입국시키고, 그에게서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받은 뒤 회장으로 임명되어 열심히 교회 일을 도왔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다시 처가가 있는 이천으로 내려가 숨었으나 9월 16일에 체포되었다. 김제준과 함께 국사범으로 간주되어 의금부로 이송되었고, 여기에서 유진길(劉進吉), 정하상과 함께 신문을 받고, 다시 형조로 이송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 9월 26일 남이관은 8명의 교우와 함께 60세의 나이로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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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헌 아우구스티노
관리자 0 0 0 3750 2017.01.16
신분 : 회장순교일 : 1839-05-24관련성지 : 서소문 밖이광헌은 1801년 신유박해 때 여러 순교자를 낸 광주(廣州) 이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청년 시절에는 매우 방탕한 생활을 하였으나 30세경 입교한 뒤로는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여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거듭되는 박해로 가산을 전부 잃고 순교할 때까지 10여 년을 궁핍하게 살면서도 회장직에 충실하고 또 냉담자를 권면하고 병약자를 위로하며 외교인에게 전교하였다. 그리고 범 라우렌시오(앵베르) 주교와 신부들을 자신의 집에 맞아들여 교우들을 미사에 참여하게 하고 강론을 듣게 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 초 어떤 예비신자가, 체포된 자기의 아내를 석방시키는 조건으로 이광헌을 포함한 53명의 교우 명단을 포졸에게 건네 주어 이광헌은 4월 7일 전가족과 함께 체포되어 포청으로 끌려갔다. 포청에서 형문(刑問)을 마친 후 4월 18일 형조로 이송된 그는 배교하면 가족들과 함께 석방시켜 주겠다는 형관의 유혹을 뿌리치고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받아 온 몸이 피범벅이 되었으나 끝까지 신앙을 지켜 냈다. 형조에서 혹형과 고문을 이겨 낸 뒤 5월 24일 남명혁(南明赫) 등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53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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