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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103 Saints

김효임 골룸바

관리자 0 3354 0
신분 : 동정녀순교일 : 1839-09-26관련성지 : 서소문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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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 순교자 김효임은 서울 근교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를 여읜 뒤 전 가족이 입교하고 유방제(劉方濟) 신부에게 세례성사를 받았다.

김효임은 두 여동생과 함께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독실한 신앙 생활을 하던 중, 1839년 4월 경기도 고양군 용머리에서 동생 김효주와 함께 체포되었다. 두 자매는 포청에서 이른바 학춤이라는 혹형 외에도 달군 쇠붙이로 열세 군데나 지져대는 혹형을 받았고, 또 옷 벗긴 채 남자 죄수 방에 넣어졌으나 갑자기 두 자매의 몸에 신비스런 힘이 생겨 남자 죄수들이 두 자매를 범할 수 없었다.

김효임은 형조판서의 신문에 영리하고 겸손하게 대답하여 형조판서를 감동시켰다. 그 뒤 5개월 동안 옥에서 병과 싸우며 지내던 김효임은 9월 26일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26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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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안드레아
관리자 0 0 0 8020 2017.01.16
신분 : 신부순교일 : 1846-09-16관련성지 : 새남터김대건은 1821년 충청도 솔뫼에서 천주교 신자 김제준 이냐시오와 고 우르술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굳센 성격과 진실한 신심을 보고 1836년 나 베드로(모방) 신부는 그를 신학생으로 뽑아 마카오로 유학 보냈다. 그는 6년 동안 신학 공부를 하고 1845년 8월 페레올 주교에게서 사제품을 받아 한국인 최초의 신부가 되었다.고국에 돌아온 김 신부는 서울과 용인 지방에서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1846년 음력 4월 주교의 명에 따라, 선교사들의 편지를 중국 배에 전하고 선교사들의 입국로를 개척하기 위하여, 황해도 지방으로 가게 되었다. 김 신부는 편지를 중국 배에 전하고 돌아오는 도중 순위도에서 관헌에게 체포되어 서울 좌포도청으로 이송되었다. 취조 중, 김 신부의 넓은 식견과 당당한 태도에 대관들은 그를 죽이기에는 국가적으로도 아깝다고 생각하였으나 후환을 입을 것이라는 영의정 권돈인의 주장대로 결국은 사형을 선고하였다. 김 신부의 처형은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의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다. 김 신부는 망나니들에게 `천주교인이 되어 내가 있을 곳에 오도록 하라.`는 말을 남기고 태연하게 칼을 받았다. 이 때 그의 나이 26세, 그의 목이 떨어지자 형장에는 큰 뇌성과 함께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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