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원 아우구스티노

Korean 103 Saints 103위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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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103 Saints

박종원 아우구스티노

관리자 0 3668 0
신분 : 회장순교일 : 1840-01-31관련성지 : 당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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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인 집안에서 태어난 박종원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매우 궁핍하게 살면서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다.

범(앵베르) 라우렌시오 주교가 입국한 뒤 회장직을 맡아 보며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교회 일에 헌신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피신해 있던 그는 체포의 위험을 무릅쓰고 옥에 갇힌 교우들과 연락하여 그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는 피신한 지 8개월 만인 10월 26일에 체포되었고, 이튿날 그의 아내 고순이(高順伊)도 체포되어 같은 옥에 갇히게 되었다. 박종원은 포청에서 아내와 함께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순교를 준비하였고 또 아내와 함께 혹형과 고문을 견디어 냈다. 1840년 1월 31일 5명의 교우와 함께 당고개에서 48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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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안드레아
관리자 0 0 0 8020 2017.01.16
신분 : 신부순교일 : 1846-09-16관련성지 : 새남터김대건은 1821년 충청도 솔뫼에서 천주교 신자 김제준 이냐시오와 고 우르술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굳센 성격과 진실한 신심을 보고 1836년 나 베드로(모방) 신부는 그를 신학생으로 뽑아 마카오로 유학 보냈다. 그는 6년 동안 신학 공부를 하고 1845년 8월 페레올 주교에게서 사제품을 받아 한국인 최초의 신부가 되었다.고국에 돌아온 김 신부는 서울과 용인 지방에서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1846년 음력 4월 주교의 명에 따라, 선교사들의 편지를 중국 배에 전하고 선교사들의 입국로를 개척하기 위하여, 황해도 지방으로 가게 되었다. 김 신부는 편지를 중국 배에 전하고 돌아오는 도중 순위도에서 관헌에게 체포되어 서울 좌포도청으로 이송되었다. 취조 중, 김 신부의 넓은 식견과 당당한 태도에 대관들은 그를 죽이기에는 국가적으로도 아깝다고 생각하였으나 후환을 입을 것이라는 영의정 권돈인의 주장대로 결국은 사형을 선고하였다. 김 신부의 처형은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의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다. 김 신부는 망나니들에게 `천주교인이 되어 내가 있을 곳에 오도록 하라.`는 말을 남기고 태연하게 칼을 받았다. 이 때 그의 나이 26세, 그의 목이 떨어지자 형장에는 큰 뇌성과 함께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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