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아기 바르바라

Korean 103 Saints 103위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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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103 Saints

한아기 바르바라

관리자 0 3482 0

 

신분 : 과부순교일 : 1839-05-24관련성지 : 서소문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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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기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에게 교리를 배웠으나 성장하면서 세속의 일에 마음이 빠져 어머니의 모범과 권면을 무시하고 외교인과 혼인하였다. 그러나 우연히 친정에서 만난 김업이(金業伊)에게 교리를 다시 배우게 되었고, 30세에 남편과 세 자녀를 모두 여의고 친정으로 돌아와 신앙 생활에 전념하였다. 그러던 중 1836년 10월 김아기, 김업이 등과 함께 천주교 서적을 숨긴 죄로 체포되었다. 포청과 형조에서 혹형과 고문을 당하면서도 형관에게 천주 십계를 강론하고 의연히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형집행의 유예로 3년을 옥살이한 후 1839년 5월 24일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그 때 나이 48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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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보 프로타시오
관리자 0 0 0 21883 2017.01.16
신분 : 공인순교일 : 1839-05-20관련성지 : 포청옥정국보는 원래 개성(開城)의 유명한 양반 가문에서 출생하였으나 벼슬을 하던 조부가 죄를 짓자 부친과 함께 상민으로 신분을 감추고 상경하여 선공감(線工監)에서 일하며 미천하게 살았다. 30세쯤 천주교를 알게 되자 곧 입교하여 유방제 신부에게 세례성사를 받았고, 그 후로는 홍살문 근처에서 성사를 받으러 상경하는 시골 교우들을 돌보았는데 가난과 병에 시달리면서도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인내와 극기의 신앙 자세를 잃지 않아 모든 교우의 귀감이 되었다. 기해박해가 일어난 1839년 4월(음력 3월)에 밀고되어 아내와 함께 체포되었는데 포청의 형벌과 고문은 참아 냈으나 형조에서는 참아 내지 못하고 배교하였다. 그러나 석방되자마자 배교한 것을 뉘우치고 형조에 들어가 배교를 취소하며 다시 체포해 달라고 간청하였고, 그것이 거절당하자 5월 12일(음력 3월 그믐) 고문의 여독과 염병으로 들것에 실린 채 형조판서가 다니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형조판서에게 직접 자신을 체포해 줄 것을 요구, 그 날로 체포되어 5월 20일(음력 4월 7일) 포청에서 곤장 25대를 맞고 이튿날 새벽에 순교하였다. 그의 나이 41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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