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극가 스테파노

Korean 103 Saints 103위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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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103 Saints

민극가 스테파노

관리자 0 3296 0
신분 : 회장순교일 : 1840-01-30관련성지 : 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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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극가는 인천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

가족이 모두 외교인이었으나 어머니가 사망한 뒤 아버지가 중년에 이르렀을 때 온 가족이 함께 입교하였다.

그는 20세 때 아내를 잃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재혼하여 딸 하나를 두었으나 6, 7년 뒤 재혼한 아내와 딸마저 잃게 되었다.

그리하여 민극가는 집을 나와 서울 경기 지역을 전전하며 교리 서적을 팔아 생활하였다. 또 어디서나 외교인들에게 교리를 가르쳐 입교시키고 또 자선 사업에도 많은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 회장에 임명되었다. 1839년 기해박해로 주교와 신부들이 체포되자 서울과 지방의 교우들을 찾아 위로하고 격려하며 회장의 직무를 열심히 이행하던 중, 그 해 12월 서울 근교에서 체포되었다. 포청에서 온갖 수단으로 배교를 강요당하였으나 민극가는 모든 위협과 유혹을 물리쳤다. 또 옥에서 배교하였거나 마음이 약해진 교우들에게 신앙을 권면함으로써 배교자 중 여럿이 다시 신앙을 찾게 되었다. 이렇게 옥 생활에서도 회장의 본분을 다하던 민극가는 1840년 1월 30일 포청에서 교수형을 받고 53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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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헌 아우구스티노
관리자 0 0 0 3748 2017.01.16
신분 : 회장순교일 : 1839-05-24관련성지 : 서소문 밖이광헌은 1801년 신유박해 때 여러 순교자를 낸 광주(廣州) 이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청년 시절에는 매우 방탕한 생활을 하였으나 30세경 입교한 뒤로는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여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거듭되는 박해로 가산을 전부 잃고 순교할 때까지 10여 년을 궁핍하게 살면서도 회장직에 충실하고 또 냉담자를 권면하고 병약자를 위로하며 외교인에게 전교하였다. 그리고 범 라우렌시오(앵베르) 주교와 신부들을 자신의 집에 맞아들여 교우들을 미사에 참여하게 하고 강론을 듣게 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 초 어떤 예비신자가, 체포된 자기의 아내를 석방시키는 조건으로 이광헌을 포함한 53명의 교우 명단을 포졸에게 건네 주어 이광헌은 4월 7일 전가족과 함께 체포되어 포청으로 끌려갔다. 포청에서 형문(刑問)을 마친 후 4월 18일 형조로 이송된 그는 배교하면 가족들과 함께 석방시켜 주겠다는 형관의 유혹을 뿌리치고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받아 온 몸이 피범벅이 되었으나 끝까지 신앙을 지켜 냈다. 형조에서 혹형과 고문을 이겨 낸 뒤 5월 24일 남명혁(南明赫) 등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53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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